관혼상제나 명절 차례 상에서 마주하던 전통주가 트렌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변화의 시작은 서울 인사동에 있던 ‘전통주갤러리’가 강남역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유행과 변화의 상징인 강남에서 젊은이들을 사로잡겠다는 포석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협업해 운영하는 전통주갤러리는 클래식과 트렌디함을 모두 추구하는 시음 공간이다. 이 두 가지 명제는 우리 전통주에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가 찾아줘야 우리 전통주가 발전하고 명맥을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위스키나 맥주처럼 우리 전통주도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곳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남선희 관장)
한옥풍으로 꾸며진 전통주갤러리 내부는 갤러리답게 탁주, 약주, 과실주, 증류주 등 다양한 전통주들이 보기 좋게 전시돼 있다. 감각적인 포장과 이름 덕분에 전통주도 세련되고 트렌디할 수 있다는 걸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갤러리 중앙에 있는 스탠드 시음 데스크는 우물을 형상화한 것인데 술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물을 표현한 것이다. 단체 시음을 할 수 있는 테이블 위에 장식된 모빌은 효모를 형상화한 것으로 전통주갤러리의 모든 것은 술로 통한다. 이곳에서는 전국 각 지역의 특색이 담긴 전통주를 상설 전시·홍보하고, 시음 프로그램과 전문가 초청 세미나, 갤러리 숍 등을 운영한다. 정규 시음 프로그램에서는 매월 새로운 주제로 4~5종의 지역 전통주를 선정해 시음하고 맛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칵테일 하이볼도 위스키라는 고도주를 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어요. 나중에는 인기가 높아져 위스키가 모자랄 정도였죠. 우리 전통주에도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설픈 퓨전은 설익은 맛을 내지만 탄탄한 내공을 가진 전통주는 다양한 변주에도 맛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전통주는 양조장 2세대의 참여로 달라지고 있다. 양조장 1세대가 외골수로 전통주 명맥을 잇는 데 평생을 바쳤다면 2세대들은 전통주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이다. 2세대들은 전통주의 병과 포장부터 네이밍까지 젊게 바꾸었다. SNS를 통한 홍보도 남다르다. 우리 전통주가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그럼에도 홍보 부족이 전통주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이슈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든가, 행사의 건배주로 사용된다거나 유명 인사가 좋아하는 술이라는 식으로 알려지면 판매가 급증하거든요. 홍보가 판매로 직결되기 때문에 전통주를 활용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7월부터 ‘주류 고시 및 주세사무처리규정 개정안’의 시행으로 전통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전통주를 즐길 수 있는 범주도 늘어났다.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각 지역의 전통주를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막걸리, 고급 증류주, 과실주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음료처럼 부담 없이 주류를 마시는 라이프 스타일에 착안해 막걸리를 캔에 담아 즐길 수 있도록 제품화하기도 했다. 전통주의 지형은 이처럼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남선희 관장은 이 모든 변화를 품어야 진정한 전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말한다. 알려지지 않은 전통주는 아직도 많다. 전통주갤러리의 역할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우리 전통주의 명맥을 잇고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 스탠드 시음 데스크에서 전통주 소믈리에와 함께 이달의 전통주를 시음하는 사람들 ⓒC영상미디어
전통주갤러리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5길 51-20
운영 오전 10시~오후 8시(월요일 휴무)
문의 02-555-2283
예약 네이버 ‘전통주갤러리’ 검색 후 ‘네이버 예약’. 10인 이상 단체 및 유료 시음 프로그램은 메일(soolshop@naver.com)로 신청
알고보면 더 맛있는 우리 전통주
산머루농원(www.seowoosuk.com)
산머루농원은 우리 포도인 산머루로 와인을 만드는 토종 와이너리다. 사계절 내내 섭씨 15도 안팎의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와인 터널이 이곳의 자랑이다. 가공시설과 발효실, 지하 오크통 숙성 터널 등을 견학하고, 머루 와인 시음, 산머루 와인 담그기, 나만의 와인 만들기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주소 경기 파주시 적성면 윗배우니길 441-25
문의 031-958-4558
예산사과와인(www.chusawine.com)
은성농원은 2만 평(6만 6115㎡) 사과밭에 6000그루 사과나무가 있는 대규모 사과농장이다. 사과농장 안에는 레스토랑, 펜션 등의 숙소를 갖춘 유럽 스타일의 농장 와이너리다. 이곳은 와이너리 투어 및 사과와인 양조 체험은 물론 사과파이 만들기, 사과잼 만들기 등 다양한 사과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소 충남 예산군 고덕면 대몽로 107-25
문의 041-337-9584
한산소곡주(www.sogokju.co.kr)
충남의 무형문화재 우희열 명인이 빚는 한산소곡주는 감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오직 쌀 발효를 통해 특유의 깊은 풍미와 담백함을 자아내는 전통주다. 과거를 보러 가던 양반이 과거시험을 잊은 채 계속 앉아서 소곡주를 마셨다고 해 앉은뱅이 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직접 소곡주 빚기 체험과 함께 양조장 내부에서 100일 이상 숙성 중인 소곡주 항아리도 관람할 수 있다.
주소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120
문의 041-951-0290
해창주조장(haechangjujo.modoo.at)
막걸리는 쌀과 누룩과 물을 섞어 빚은 한민족 고유의 술이다. 막 걸러내서 막걸리인 것인데, 금방 걸러냈다는 뜻과 성글게 걸러냈다는 뜻이 함께 담겨 있다. 전라남도 땅끝마을 해남에서 빚어지는 해창막걸리는 은근하면서 투박하다. 막걸리의 원형에 가까운 맛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해창주조장의 막걸리다. ‘물, 쌀, 누룩’만을 사용해 달지 않고 재료의 고유한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소 전남 해남군 화산면 해창길1
문의 061-532-5152
예술(www, ye-sul.com)
예술에서 만드는 술은 느리다. 최소 5개월은 기다려야 예술에서 만든 술을 맛볼 수 있다. 누룩 만드는 데 최소 2개월, 여기에 탁주·약주 만드는 데 또 3개월이 걸린다. 누룩까지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숙성실에서는 과일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 ‘좋은 쌀에서 나는 과일 향’이다. 양조장 예술에서는 양조 체험, 누룩 만들기, 술 시음장 등 다양한 체험교실은 물론 게스트하우스에서 특별한 하룻밤을 선사한다.
주소 강원 홍천군 내촌면 동창복골길 259-9
문의 033-435-1120
명인 안동소주(www.adsoju.com)
대한민국 제6호 식품 명인인 박재서 명인이 빚는 안동소주는 오로지 쌀과 누룩, 물로만 빚는 증류식 소주로 45도의 높은 도수이지만 감칠맛과 향취가 깔끔하다. 술덧에서 원액을 증류하는 정통 방식을 이어온 덕분이다. 안동소주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채택될 정도로 맛과 정통성을 자랑하는 전통주이다. 하회마을 인근에 있어 관광과 함께 안동소주 시음과 구매가 가능하다.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산업단지6길 6
문의 054-856-6903
제주샘주(www.jejusaemju.co.kr)
제주샘주는 제주 청정 지하수를 사용해 제주의 전통주인 오메기술을 만드는 곳이다. 오메기술은 동그란 모양에 팥알이 붙은 ‘오메기떡’으로 만든 제주 전통술인데, 제주샘주의 오메기술은 ‘구멍떡’에 누룩을 으깨 넣고 발효시켜 특별한 맛을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오메기떡 체험, 쉰다리 체험, 칵테일 만들기 체험 등이 가능하며, 오메기술을 직접 맛보고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살펴볼 수 있다.
주소 제주 제주시 애월읍 애원로 283
문의 064-799-4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