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행복은 거창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주위 사람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 된다. 인적 드문 시골에 홀로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 행복은 그런 것이다.
2013년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는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맞춤형 민원·복지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일반인의 손길이 자주 닿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도와드리자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다.
전국 농어촌 지역 지자체와 우체국이 업무협약을 맺어 집배원들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행복배달 집배원의 눈에 띄어 소중한 생명을 건진 이들이 지난해에만 17명에 이를 만큼 이 사업은 가치 있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04년경 이천우체국의 상시 계약 집배원으로 근무하기 시작했어요. 일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고, 집배원 경력직 경쟁 채용시험을 거쳐 2010년부터는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죠. 특히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도울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때마다 이 일을 하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경기 이천시 신둔면 일대에서 행복을 배달하는 조수천(41) 집배원은 올해로 13년째 우편물 배달 일을 하고 있다. 매일 오전 8시 출근 도장을 찍으면 당일 도착한 소포나 우편물을 구분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 대문까지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시는 할머니께 우편물을 전달하는 조수천 집배원.
취약계층·홀몸노인 일상을 보살펴
지난해 17명 소중한 생명 건지는 성과
"우편물 정리를 마치고 9시 30분이 되면 신둔면 일대로 배달을 나가요. 우체국으로 복귀하는 오후 5~6시까지 하루 종일 배달을 하죠. 몇 년 전 정부의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이 시작된 뒤로 홀몸노인이나 생활고를 겪는 분들을 위한 우편물 배달에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그전에는 우편물을 전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그들의 일상을 살피고 불편함을 듣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드리는 것까지 책임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조 집배원에게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1년 전쯤 일이에요. 외딴 시골에 사는 어르신께 등기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방문했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더군요. 아무도 안 계신 줄 알고 그냥 돌아가려다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어봤죠. 그런데 어르신 홀로 의식 없이 누워계셨어요."
조 집배원의 즉각적인 119 구조대 호출로 할머니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미 사망한 뒤였다. 조 집배원은 "조금만 더 일찍 할머니 댁을 방문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 오늘도 행복을 배달하는 집배원의 모습.
우편물도 배달하고 불편함 해소
맞춤형 민원 · 복지 서비스
하지만 빨간 자전거 사업의 목적은 '행복배달'인 만큼 안타까운 순간보다 기쁘고 보람된 순간이 훨씬 많다.
"제가 담당하는 지역만 해도 글자를 모르거나 시력이 좋지 않아 우편물이 와도 읽지 못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답답해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읽어드리고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곤 하죠. 그럼 내 배로 낳은 자식보다 더 든든하고 믿음직스럽다며 따뜻한 커피나 찐 고구마를 대접해주기도 하세요. 대한민국 집배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인데, 그토록 고마워하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조 집배원은 취약계층,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실 처음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이 시행됐을 때는 우편물 배달하기도 벅찬데 맞춤형 민원 · 복지 서비스까지 하라는 말에 내심 불만도 있었어요. 그런데 홀로 사시는 어르신, 글자를 몰라 답답해하시는 어르신들을 도와드리고 나면 저도 모르게 흐뭇해지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삶의 보람이 느껴지죠. 이제는 계셔야 할 어르신이 안 계시면 이웃에 거취를 확인해야 안심이 될 만큼 제 일에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어요. 퇴근 후에도 홀몸노인,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 뭘까 고민하며 밤잠을 설친답니다."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그가 마저 남은 우편물을 배달하러 나섰다. 오늘도 빨간 자전거 집배원들은 그렇게 전국 곳곳에 행복을 배달한다.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은?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은 행정자치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우정사업본부가 2013년 9월 시작한 맞춤형 민원·복지 서비스 사업이다. 공주시와 공주우체국 간 협약 체결을 시작으로 전국 145개 농어촌지역 지자체와 우체국이 업무협약을 맺어 각 지역에 빨간 자전거를 탄 집배원들을 파견하고 있다. 집배원들은 일반인의 손이 닿지 않는 홀몸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을 주기적으로 살피며 그들의 불편·위험사항 등을 지자체에 제보한다.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의 주요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취약계층의 생활 상태를 제보하는 것. 집배원은 홀몸노인 등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자체에서 발송한 우편물을 배달하며 이들의 생활 상태를 파악하고 위험 상황이 있으면 지자체에 알린다.
둘째, 주민의 불편·위험사항을 신고한다. 집배원은 가로등이 고장 나거나 도로가 파손되는 등의 주민 불편사항이나 산불, 폭설로 인한 고립 등 위험사항을 발견해 지자체에서 즉각적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셋째,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민원서류를 배달한다. 장애인, 노인 등 거동이 불편한 민원인이 지자체에 전화로 민원서류 신청을 하면, 지자체에서 민원서류를 발급해 등기로 발송하고 집배원이 배달한다.
2015년 행복배달 빨간 자전거 사업 분석 결과 ▶ 취약계층(홀몸노인, 장애인) 생활 실태 제보 23건 ▶ 주민 불편·위험사항 신고 63건 ▶ 거동 불편인 민원서류 배달 272건 등 총 358건의 맞춤형 민원·복지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글 · 김가영 (위클리 공감 객원기자) 2016.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