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매장 한 곳에 미용실과 네일 아트숍이 공존하는 ‘한지붕 두가족’ 창업이 가능해진다. 푸드트럭 등 창의적인 음식업이 창업지원대상에 포함되고, 2억1000만원 미만 물품의 정부조달에는 ‘최저가 입찰제도’가 폐지된다. 이와 같은 내용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주재로 2016년 12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규제 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결정됐다. 중소상공인들을 괴롭혔던 숨은 규제들을 대폭 정비함으로써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한 것이다.
▶ 2016년 12월 28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규제개혁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황 권한대행은 규제 개혁 장관회의에서 “규제개혁과 관련해서 정부는 결코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며 “민생 전반에 깊숙이 박혀 있는 규제의 뿌리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욱 비상한 각오로 규제개혁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개혁 회의는 미국 금리 인상, 가계부채, 기업 구조조정 등 국내외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찾기 위해 열렸다. 회의에서 하루하루가 절박한 중소상공인과 서민들의 민생경제 규제 사항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이 공감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등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신사업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산업지형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국무조정실은 ‘중소상공인 판로 확대를 위한 조달규제 정비’, 중소기업청은 ‘소상공인 및 청년창업 현장규제 애로 개선’, 행정자치부는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한 맞춤형 규제 완화’, 금융위원회는 ‘금융소비자 편의 제고를 위한 자율규제 합리화’를 결정했다.
정부는 ‘규제 개혁이 민생이다’라는 생각으로 회의에 일반 국민, 소상공인, 창업기업인, 유관관계자를 초청해 경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발표 대책에 대해서도 정부 관계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 과정을 거쳤다.
조달규제 정비와 관련해 정부는 2015년 중앙 및 지방공기업이 맺은 5만 6000여 건의 조달계약서 전체를 전수조사하고,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을 조문 단위로 비교하여 불일치한 점에 대해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
창업규제와 관련해서는 ‘중소기업 옴부즈만’을 통해 기술창업기업 3만 5000개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응답한 3575개 기업 중 업종별 대표 400개 사에 대해서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창업 관련 규제를 속속히 찾았다.
금융규제와 관련해서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신협중앙회 등 금융권 7개 민간단체와 한국거래소가 운영하는 자율규제 총 245건을 모두 개선 대상으로 삼아 이 중 99건을 개선하였다.
입찰 자격 낮춰 규제 장벽 완화
구체적인 규제 개혁 내용으로 국무조정실은 ▲물품·용역 입찰 시 2억 1000만 원 미만 계약의 경우 ‘실적에 의한 참여 제한’ 폐지 ▲2억 1000만 원 미만 물품공급 입찰에 ‘최저가 입찰제도’ 폐지 ▲고리의 지체상금률(연 36.5%) 절반 경감을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아웃도어 단체복 입찰에 10곳 이상 백화점 납품실적 등 지나친 실적을 요구해 중소기업에 진입장벽이 되는 현실을 감안해 마련했다. 발표 내용 중 최저가 입찰 제도를 폐지한 것도 의미가 있다. 정부가 2015년 공공조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37개 공기관의 총 141개 사업이 예정 가격의 50% 미만으로 과도하게 깎이는 부작용이 있었다. 중소기업 간 과다 출혈경쟁이 원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정부는 2억 1000만 원 미만 물품 공급을 입찰할 때 최저가 입찰 제도를 폐지했다. 또 계약을 제때 이행하지 않으면 부과하는 지체상금이 연 36.5%으로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감안해 지체상금을 국제 관행에 맞게 1/2로 축소했다.
▶ 2016년 10월 27일 행정자치부가 주최 제4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장 앞에서 푸드트럭이 영업을 하고 있다. ⓒ연합
푸드트럭 등 창의적 창업 지원
중소기업청은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을 낮추고 청년들의 도전적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2명 이상의 미용업자가 1개의 공동사업장 사용 허용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음식점을 창업 지원 대상에 포함 ▲폐업 후 동일 업종으로 재창업하는 경우에도 창업기업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조치로 푸드트럭 등 창의적인 음식업의 창업 지원을 확대하고, 비록 한번 실패하더라도 재창업이 쉬워질 전망이다. 정부는 규제 장벽을 낮추면서 푸드트럭의 옥외광고를 허용해 다양한 광고 수익 창출을 가능하게 했다. 또 현재는 폐업한 기업이 동일 업종으로 재창업하는 경우 창업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제도를 정비해 동일 업종으로 재창업하는 기업도 지원 대상에 포함시켜 패자 부활이 가능해졌다.
보육시설, 청소년수련원 규제 완화
행정자치부는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맞춤형 규제 완화 ▲공공업무시설에 국공립어린이집 설치 시 1층뿐만 아니라 2~5층에도 허용 ▲청소년수련원에 일반인들의 개별 숙박 허용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시 폐기물 보관시설 기준을 10일분에서 1일분으로 완화했다.
현재 음식물 쓰레기를 당일에 재활용 가능하더라도 ‘10일분 이상’ 보관시설을 강제해 관련 산업 발전을 막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보육시설의 경우, 건물 1층에만 허용한 것을 2~5층으로 규제를 완화해 지역주민의 부담을 낮췄다. 또 청소년수련원에 일반인 숙박까지 허용해 숙박 이용 활성화가 예상된다.
금융위원회는 중소상공인과 일반 서민 생활 속 금융거래 불편 해소 ▲대출계약 시 2주 이내 중도상환 수수료 없이 철회 가능한 ‘대출계약 철회권’ 신설 ▲일시적 유동성 부족을 겪는 주택담보대출 소비자의 원금상환 유예 확대 ▲저축은행 프리워크아웃 대상을 개인·개인사업자에서 중소기업으로 확대했다.
현행 규정은 대출계약 이후 즉시 상환을 하더라도 중도상환 수수료를 부담하는 불합리가 있었다. 주택금융공사가 운영하는 정책모기지 상품만 원금상환을 연기해주던 규정을 은행이 운영하는 안심전환 대출까지 확대해 서민들의 대출 부담을 낮췄다. 1~3개월 단기 연체자의 채무를 신용회복위원회와 채권금융회사 간 협의를 거쳐 조정해주는 ‘프리워크아웃’도 중소기업까지 확대해 일시적 자금 부족에 쓰러지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