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8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는 6월 말 한미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다자외교에 데뷔한 무대로서 그동안 단절됐던 정상외교를 다자 차원에서 복원했다는 점에서 외교적 의미가 크다. 이번 회의를 통해 문 대통령은 주요 참가국들과 활발한 다자·양자 차원의 외교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기반을 넓히고, 국제사회가 당면한 주요 현안 해결에 대한 우리나라의 참여 의지를 밝히는 등 우리의 다자외교 기반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호 연결된 세계의 구축’이라는 주제 하에 개최된 이번 G20 정상회의는 국제경제 및 금융 분야의 최고위 정상 포럼으로서 무역, 기후변화, 금융안전망, 개발, 디지털경제 등의 경제 이슈뿐만 아니라 테러리즘, 난민, 보건, 양성평등 등 국제사회가 당면한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쟁점은 자유무역과 기후변화에 대한 G20 차원의 합의 도출이었고, 그 걸림돌은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가장 적극적으로 이 의제를 옹호해왔던 미국이었다. 의장국인 독일 메르켈 총리는 핵심 의제로서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고 다자무역 체제를 지지한다는 점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리협정의 성실한 이행을 위한 G20 회원국의 강력한 의지를 공동선언문에 담고자 했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필요하다면 WTO 다자무역 체제도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표방해온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으로 말미암아 자유무역에 관한 G20 정상 공동선언문은 표현의 수위가 약화되는 등 그 빛이 많이 바래게 됐다. 특히 지난달 파리협정 탈퇴 결정을 선언한 미국의 강한 반대로 미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19개국만 참여한 채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정상 공동선언문이 도출되는 등 G20 차원의 국제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개국 정상들은 파리협정 합의 2주년을 기념해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G20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개최하여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사회의 대응 의지를 다시 한 번 결집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G20 정상회의 참석의 가장 큰 성과는 그동안 오랜 공백에 마침표를 찍고 다자외교 무대에서 우리의 정상외교를 복원시켰다는 점이다. G20과 같은 다자 정상회의는 각 국가 정상들 간 공식회의로서 외교 현안에 대해 최고 수준의 정치적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현대 외교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주요 7개국 정상회의(G7)와 같은 제도화된 다자 정상회의의 개최가 빈번해지고 그 숫자가 확대됨에 따라 다자 정상회의는 현대 외교의 주요한 새로운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G20과 같은 다자 정상회의는 수 명에서 수십 명에 이르는 각 국가의 정상들이 임의적이고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매년 주기적이고 반복적인 공식 회담을 갖는다. 정상회의를 전후하여 의제 조율과 후속조치 등의 과정을 각국의 관련 관료기구들이 조직적으로 담당함으로써 다자 정상회의는 현대 외교에서 표준적인 주요 외교 양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자 정상회의가 해마다 한 번 개최되기 때문에 일회적인 ‘이벤트’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다자 정상회의를 위해서는 실무자 및 관련 분야의 각료급 회의 등 다양한 외교채널이 정상회의를 전후로 하여 연중 상시적으로 가동된다. 이에 따라 G20과 같은 다자 정상회의는 참가국 간의 다양한 외교채널이 연중 상시적으로 가동되는 현대 외교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새로운 국제협력 프로세스로서 기능한다. 또한 주로 국제적 현안을 주제로 개최되는 다자 정상회의 계기에 개최되는 다양한 양자 및 소다자 회의를 통해 참가국들이 주요 양자 외교 안보 현안이나 경제협력 사안 등을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등 다자 정상회의는 다자·양자 외교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전개되는 현대 외교의 중심 무대로서 기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번 G20 정상회의 참가를 계기로 독일과 양자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 만찬, 9개국 정상과 별도 정상 및 약식회담, 유엔 등 3개 국제기구 수장과의 회담 등 짧은 기간 동안 매우 다양한 외교 일정을 소화했다는 사실은 다자외교 무대에서의 정상외교가 가지는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문 대통령은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자유무역, 테러리즘, 난민, 개발, 양성평등 등 국제사회의 현안 채결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우리나라의 기여 의지를 밝혔을 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의 증진을 위한 다자무역 체제에 대한 지지 및 파리협정의 충실한 이행에 대한 입장을 강조함으로써 이번 G20 정상회의 의제에 대한 합의 도출 및 국제 공조 강화에도 이바지했다. 특히 ‘일자리 주도 성장, 공정경제 및 혁신 성장’을 3대 축으로 하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참가국들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향후 주요국과 우리나라의 경제 분야의 국제 공조 기반을 확보한 것도 의미가 있다.
또한 우리가 당면한 최대 안보 현안인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주요국의 이해와 지지를 확보한 점도 매우 큰 외교적 성과라 할 수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아베 일본 총리,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양자회담에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함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에 대한 공감대를 확보한 것은 향후 한국 주도의 대북정책을 펴나가겠다는 새 정부의 외교적 지지기반을 넓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울러 한미일 3국 정상 만찬회담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한 3국 공동성명이 사상 처음으로 발표됐는데, 이는 지난주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의 모멘텀을 바탕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에 필수적인 한미일 3국 간 공동대응 의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미일 3국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점을 강력 규탄하고, 북한의 점증하는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포함한 새로운 안보리 결의를 조속히 채택할 것에 합의했다. 또한 3국이 전략적 이해를 공유하고 있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CVID)’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위해 3국이 긴밀히 협력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번 회의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성과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G20 정상 차원의 공동대응 의지를 보여줄 필요성을 역설한 데 대해 대다수의 G20 정상들이 공감함으로써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기반을 한미일 3국을 넘어 G20 차원으로 보다 확대했다는 점이다. G20 정상회의는 주로 경제·금융 이슈를 의제로 다루는 회의로서 북핵 문제와 같은 안보 이슈를 정식 의제로 다루지는 않지만 G20 회의를 계기로 우리의 최대 안보 현안에 대해 주요국 정상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확보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외교적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의 의장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폐회식 기자회견 구두성명을 통해 북한의 최근 미사일 도발에 대해 언급하면서 G20 차원의 대응 필요성을 강조한 점도 G20이라는 다자외교 무대를 활용해 우리의 외교적 입장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외에도 이번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프랑스, 캐나다, 인도, 호주, 러시아, 베트남 등 우리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요국들과 양자회담 통해 양자협력 기반을 다지고 다자외교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었다는 점도 외교적 의미가 적지 않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이번 독일 방문 시 문 대통령이 발표한 새 정부의 ‘신 한반도 평화비전’ 구상에서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추진을 한러 간 극동지역 및 유라시아 경협 확대를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인도 모디 총리 및 베트남 푹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인도 및 아세안 지역과의 외교 안보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경제협력의 내실화와 확대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향후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4강 외교를 넘어 보다 확대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번 문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참여를 계기로 복원된 다자 정상외교 채널을 더욱 활성화하여 향후 우리 외교의 다변화와 외교 지평을 넓히는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
최원기 |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