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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이, 이제 고생 끝났심더.” 1984년 LA올림픽 유도 금메달이 확정되고 나서 하형주 선수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한 말이다. 모든 올림픽이 그렇지만 LA올림픽은 특히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대회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전에 열리는 대회인데다 미국 등 서방국가가 보이콧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이후 우리나라도 실질적으로 8년 만에 맞는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LA올림픽에서 한국은 역대 최고성적을 거뒀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2킬로그램급에서 김원기 선수가 대회 첫 금메달을 딴 후 메달이 쏟아졌다. 최종적으로는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를 따며 사상 처음으로 종합 10위권 안에 들었다. 하형주 선수의 경기는 경기마다 화제를 낳았다. 일본 선수 미하라와 대결할 때는 씨름의 ‘들배지기’ 기술을 써 국민을 통쾌하게 했고, 서독 선수 노이로이터와의 준결승전에서는 경기 종료 35초 전 공격에 들어가 역전승을 거뒀다. 국민들은 감격하고 열광했다. 하 선수의 경기 중계를 보다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28년이 흐른 지금 하형주 선수는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8년에 선수생활을 은퇴한 이후 쭉 교단을 지켰다.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매와 억센 경상도 사투리는 지금도 여전했다. 동아대학교 내 연구실 한쪽은 그의 전공인 스포츠심리학 관련 도서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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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을 때 국민들의 반응이 대단했죠.
“그랬지요. 귀국 후 김포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하는데 대단합디다. 운동선수로서 아마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는 사실 LA올림픽 금메달 따고 운동 안 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의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습니다. 제 젊음의 한계에 도전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아는 게 저의 목표였습니다. 운동을 해서 올림픽 금메달을 땄으니까 그 후엔 못다 한 공부를 하는 게 꿈이었어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은퇴를 하셨죠.
“88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니까 운동을 더 하라는 요구가 많았어요. 한 번 더 금메달을 따주길 국민들이 원했고, 당시 대통령까지 ‘결혼 늦게 하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제 나이가 만으로 23세였습니다. 84년 올림픽 직후 은퇴 안 한 걸 후회합니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고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교수’가 되는 걸 제 목표로 잡았어요.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고요. 사실 얼마나 훈련해야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건지 몰랐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결과가 금메달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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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심리학을 공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선수생활 할 때는 지도자들이 심리적인 부분에서 막무가내로 지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가르치면 더 빨리 이해할 텐데’, ‘이렇게 훈련하면 더 효과적일 텐데’ 십몇 년 동안 운동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노트에 적었어요. 사실 스포츠심리학은 메달의 색깔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스포츠심리학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죠.”
‘금메달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흔히 대진표가 좋니 나쁘니 하지만, 금메달의 조건은 결국 철두철미한 노력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죠?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 최선에 최선을 다해 훈련한 결과가 메달입니다. 그 시간들이 경기 순간 저도 모르게 나오는 거죠.”
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유도는 나의 종교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도는 자기수양입니다. 자기 호신이고 자기를 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누가 더 센지, 훈련을 얼마나 했는지 가늠하기 위해 경기를 하는 것이지, 원래는 ‘도(道)’입니다. 자기를 정화하는 과정입니다. 동양철학사상에 근간을 둔 스포츠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젊었을 때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만들어준 것도 유도였습니다.”
유도 종목의 얘기는 아니지만, 일부 종목의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스포츠의 생명은 정정당당함이지요. 정정당당함이 없으면 아무도 스포츠로 인정 안 합니다. 그런 일이 다 가치관 부재, 철학 빈곤에서 오는 겁니다. 운동선수들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그저 기능적으로 메달만 따면 그 후에 순간적으로 다른 길로 빠지기 쉽죠. 올림픽 금메달 따고 나서도 뭘 어떻게 하면서 살아야 할지 잘 모릅니다. 기술자를 만들면 안 됩니다. 운동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도자들이 가르쳐줘야 합니다.”
런던올림픽이 약 2주가량 남았습니다. 이번 올림픽을 대비해 런던에 현지 캠프를 차리고 훈련 파트너를 동행하는 게 화제가 됐습니다.
“ ‘스포츠 G7’ 국가는 다 하는 일입니다. 늦게나마 현지 캠프가 차려지는 게 참 고맙습니다. 훈련파트너를 데려가는 것도 사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안됐거든요. 또 한가지 지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선수들의 마음에는 독기가 서려 있습니다. 눈빛만 봐도 무서울 정도일 거예요. 성격도 오전엔 좋았다가 오후에 컨디션이 별로면 급격히 변하고 그럽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이해해야 합니다. 성격이 갑자기 변하고 이러는 것을 안아주는 게 지금부터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무엇보다 자기 확신, 자기 암시가 중요합니다. 메달을 따고 귀국해 환영받는 모습,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모습, 환호하는 부모·친구의 모습, 이런 것들을 자꾸 상상해야 합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죠. 연습장면이든 시합장면이든 과거에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자기 암시, 자기 확신을 다져놔야 합니다. 충분한 훈련 위에 자기 확신을 착실히 쌓아놓은 상대를 이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글·하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