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칼라’와 ‘퍼플칼라’가 뜬다

2022.07.03 최신호 보기


▶한상근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터뷰

우리나라에는 약 1만 6000가지 직업이 있다. 그 직업들에 최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 직업이 분화하고 전문화하는가 하면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고 있다.
국무총리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한상근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직업 세계에서 일어나는 거대물결(메가트렌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을 추동하는 힘은 디지털전환”이라고 분석했다. 인공지능(AI), 지능형 로봇, 사물인터넷, 확장 가상세계(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직업 세계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직업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디지털전환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대단히 많아요. 디지털전환 때문에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고 디지털전환 때문에 기존의 직무가 바뀌며 디지털전환 때문에 여러 가지 직업으로 분화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죠.”

MZ세대 직업 열쇳말: 개성, 재미, 도전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많이 선택하는 ‘배달 라이더’도 디지털전환과 관련이 깊은 직업이다. 디지털전환으로 모바일 등 네트워크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재화를 거래하는 플랫폼 경제가 발전했다. 대표적 사례가 식당과 손님의 주문을 중개하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이다. 플랫폼 경제의 필수적 업무를 맡은 배달 라이더는 디지털전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디지털전환과 함께 육체노동(블루칼라)과 정신노동(화이트칼라)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직업도 많아졌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 서울 북촌 거리를 달렸던 청년 인력거꾼이 대표적이다.
한상근 선임연구위원은 “인력거는 일제강점기 등 옛날에도 있었다. 그때는 육체노동이었지만 청년들은 여기에 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산물을 덧붙여 외국인 관광객들한테 홍보했다”고 말했다. ‘서울’이라는 브랜드와 ‘인력거’라는 전통문화를 결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든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육체노동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한 제3의 직업을 ‘브라운칼라’라고 부른다.
“요즘 MZ세대가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을 꺼린다고 뭐라 하는데 기성세대도 하지 않는 일을 그대로 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가치와 시장성이 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지만 기성세대가 놓쳤던 것에 MZ세대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기술을 결합하면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선임연구위원은 MZ세대만의 직업적 특성을 개성, 재미, 도전 등 세 가지 열쇳말로 설명했다. “MZ세대는 직업을 가진 가장 젊은 세대라 그런지 몰라도 개성을 기꺼이 드러내고 재미를 추구하며 굉장히 도전적인 생각을 많이 해요. MZ세대를 분석하는 이들도 용어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개성을 드러내길 주저하고 ‘재미가 밥 먹여주냐’며 도전을 마다했던 기성세대와는 직업에서도 추구하는 가치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MZ세대 안에서도 ‘괜찮은 일자리(디센트 잡)’를 차지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 일자리 자체가 안정적이고 임금이 상당히 높은 일자리를 말한다. 한 선임연구위원은 “대다수 MZ세대는 기존의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서기를 하고 있다”며 “한정된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경쟁은 실익 없는 경쟁(제로섬게임; 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제로가 되는 게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가 ‘한 줄 세우기’라는 말을 쓰잖습니까? 대학만 해도 서열화가 딱 돼 있고 취업할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거든요. MZ세대라고 해도 대부분은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줄 서기를 하는 반면에 개성 넘치고 재기 발랄한 직업 세계에 대한 도전도 있는 거죠. 대세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회의 고질적 한 줄 세우기 문화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도심 관광지의 인력거꾼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직업이다. 서울 북촌의 청년 인력거꾼│문화체육관광부

앞으로 직업 세계의 주역이 될 MZ세대
브라운칼라에 이어 일과 가정이 공존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퍼플칼라’도 주목받고 있다. 한 선임연구위원은 “퍼플칼라는 MZ세대뿐만 아니라 전 계층에 걸친 변화로 양성평등과 관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일과 가정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도입한 시간제근무제, 근무시간선택제, 재택근무제, 집중근무제 등 다양한 유연근무제가 대표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출산과 육아의 부담으로 우수한 여성 인력의 이탈을 막을 수 있고 비용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젊은 세대든 기성세대든 일과 가정에서 균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여성이 일하기 힘들잖아요. 저출생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아이를 낳아도 기르기 힘들다는 거죠. 보육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과 가정의 균형은 남성과도 관련이 있어요. 그런 점에서 퍼플칼라는 중요한 변화이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양성평등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일터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 연구소에도 젊은 세대가 많이 들어오는데 확실히 좀 달라요.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문화에 굉장히 익숙한 사람들이죠. 저는 디지털문화를 수평적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MZ세대는 ‘님’이라 부르며 수평적 위치에서 대화하는데 사실 기존 직장은 그렇지 않죠. 직급 간 위계를 강조하는 데서 오는 충돌이랄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구구조상 MZ세대는 앞으로 직업 세계의 주역이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 10년 뒤에는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기성세대는 MZ세대의 독특한 문화를 이질적이라 생각할 게 아니라 환영하고 수용해야 하죠. 아니, MZ세대의 변화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회사도 MZ세대가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든 직급 간 위계를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바꿔야지 생산성이 높아지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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