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 모아 미래산업 위한 협력체계 구축

2022.06.12 최신호 보기


▶김선영 사이즈코리아센터장이 3차원(3D) 전신 스캐너 안에서 기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휴먼 빅데이터’ 지원 사이즈코리아센터 가보니
무거운 자재를 운반해야 하는 건설 현장은 작업자의 부상 우려가 크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산업재해 현황을 보면 재해 부위의 60% 이상이 물건 운반에 의한 허리 질환이다. 그 대안으로 무거운 자재를 쉽게 들고 운반할 수 있는 착용형(웨어러블) 로봇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전원으로 작동하는 능동형(액티브) 로봇은 중량이 무겁고 입고 벗기 까다로워 현장에서 꺼린다. 동작 시간이 2시간 정도로 짧은 것도 문제다. 웨어러블 로봇기업 헥사휴먼케어는 최근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수동형(패시브) 허리 근력 지원 로봇인 ‘헥토르(L20P)’를 개발했다. 자체 중량 2.4kg으로 가벼우면서도 작업 조끼처럼 입고 벗기 간편한 것이 장점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사이즈코리아센터’에서 헥토르를 직접 입어봤다.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니 10여 초 만에 착용할 수 있었다. 몸에 맞게 어깨와 가슴 끈만 조절하면 되는 구조여서 숙달되면 혼자서도 착용하기 쉬워 보였다. 헥토르를 착용한 상태여서 20㎏짜리 공구를 들자 무게가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이 뒤에서 잡고 같이 올려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동철 헥사휴먼케어 차장은 “허리 좌·우측 구동부 안에 스프링과 탄성체가 들어가 있다. 몸을 숙일 때 감긴 스프링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풀리면서 가슴팍을 밀어주는 원리”라며 “서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2~3㎏ 정도 허리를 지지하고 실제 물건을 들었을 때 16㎏까지 허리를 지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이즈코리아센터’에서 현동철 헥사휴먼케어 차장이 수동형 허리 근력 지원 로봇 ‘헥토르’를 시연하고 있다.

▶20~60대 남녀별 두상 표준 모형 

한국인 체형에 웨어러블 로봇 최적화
헥사휴먼케어는 헥토르를 개발하면서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하는 고가의 착용형 로봇과 달리 여섯 가지 치수로 대량생산을 해 한 대당 120만~160만 원이라는 가격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이었다. 대신 치수가 키와 가슴·허벅지 둘레 등에 맞아 작업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헥토르를 착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동철 차장은 “헥토르의 가슴과 허벅지 프레임(틀)이 몸에 너무 붙으면 움직일 때 간섭이 일어나고 너무 떨어지면 손에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최적치를 찾아야 했다”며 “개발 과정에서 사이즈코리아센터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이즈코리아센터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20년 이상 축적한 한국인 인체치수 대량자료(빅데이터) 보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운영하는 곳이다. 인체치수 전문가와 데이터 전문가가 상주하며 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의 산학연 보급과 활용 확산을 지원하고 있다.
헥사휴먼케어 연구진은 사이즈코리아센터의 자문과 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를 지원받아 대·중·소 세 가지 크기의 목업(실물 형태의 모형)을 제작했다. 건설회사, 철도회사 등 실제 작업 현장에서 시험한 결과 작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여섯 가지 크기로 다변화해 곧 양산할 계획이다.
헥사휴먼케어는 능동형 착용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보행을 보조하는 재활훈령용 로봇으로 위화감 없이 달라붙어 자신의 몸처럼 느껴야 하므로 신체에 맞는 개인화가 수동형보다 더 중요하다. 개인마다 몸에 딱 맞는 맞춤 제작을 위해 연구진은 사이즈코리아센터에 있는 장비를 이용해 직접 자기 몸을 스캐닝해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계하고 있다. 3차원(3D) 전신 스캐너와 손과 발 등에 특화된 부분 스캐너 등 고가의 인체 측정 장비와 데이터 분석·가공에 필요한 특수 소프트웨어를 사이즈코리아센터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한국형 이동 검사소(워크스루)

안마의자·마스크 등 사이즈코리아 활용
헥토르 말고도 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를 반영한 휠체어, 자전거 등 다양한 제품이 사이즈코리아센터에 전시돼 있다.
한국인 체형에 최적화한 안마의자도 있다. 김선영 사이즈코리아센터장은 “예전에는 안마의자를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일본인, 특히 고령자의 작은 체형에 맞춘 제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젊은 사람도 혼수품으로 안마의자를 살 정도라 한국인 체형에 맞는 안마의자의 수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안마의자는 한국인 체형에 맞게 인체공학적 프레임을 설계해 편안한 착석감을 주며 마사지 효율성을 높인 덕분에 매출액이 전년 대비 277.9% 성장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한국형 이동 검사소(워크스루)’도 있다. 의료진이 방호복 없이 부스 안에서 장갑을 끼고 부스 밖의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하는 형태다. 김선영 센터장은 “의료진이 부스 안에서 진료할 때 어깨와 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어깨높이 등 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를 반영했다”고 했다.
한국인 인체치수 데이터를 반영한 두상 모형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쓰임새가 늘어났다. 김 센터장은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면서 마스크 제조업체들이 연령·남녀별 표준 두상을 제품 개발에 많이 활용하고 있다”며 “업체 대표들이 지금까지는 마스크를 개발하면서 본인 얼굴에 맞췄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사이즈코리아센터는 20대부터 60대까지 남녀별로 10개의 두상 표준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3D 프린터를 갖춘 업체는 표준 두상을 직접 출력해 이용할 수 있도록 3차원 형상 데이터도 무료로 제공한다.


▶한국인 체형에 최적화한 안마의자

책부터 전문가 상담까지 무료 제공
제품들 옆에는 <디자인 가이드라인> 책 10여 권이 전시돼 있다. ▲마스크팩, 고글, 헬멧, 모자 등 머리 관련 제품 ▲배낭, 전동 침대, 허리띠 등 몸통 관련 제품 ▲등산 지팡이, 헤어드라이어, 통컵(텀블러), 전자책 단말기, 펜치, 장갑, 스마트 밴드 등 손 관련 제품 ▲건식 족욕기, 다리 보호대, 공기압 안마기, 종아리 안마기 등 다리 관련 제품 등으로 나눠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김 센터장은 “사이즈코리아센터의 데이터 가운데 어떤 것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 소개하는 책”이라며 “만약 안마의자를 디자인할 때 30대의 엉덩이너비는 어느 정도 되니까 좌판(앉는 부분)은 이렇게 적용하라는 식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사이즈코리아센터 누리집(sizekorea.kr)에서도 자유롭게 내려받아 이용할 수 있다.
김 센터장은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주도해 인체치수 데이터를 계속 모으는 나라도 많지 않지만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데이터를 활용하면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류학 박사인 그는 의류업체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의류업체들은 맵시 도우미(피팅 모델)에 맞는 본(샘플)을 만든 뒤 치수를 벌려 나갔다. 어느 정도 벌려야 하는지도 명확한 기준 없이 판매율을 보면서 조금씩 고치는 식으로 치수를 정했다는 것이다.
사이즈코리아센터에서는 내부 연구원들에게 자문한 뒤 전문가 상담(컨설팅)이 더 필요한 업체엔 인간공학 등 관련 전문가를 연결해주고 상담 비용까지 지원한다. 2021년에는 15개 업체가 전문가 상담을 무료로 받았다. 김 센터장은 “사이즈코리아센터는 기업이 제품을 개발할 때 우리나라 사람의 몸에 잘 맞는 제품을 만들어 국민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라며 “사이즈코리아센터를 많이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사이즈코리아센터 누리집

국가 주도 ‘휴먼 빅데이터’ 수집·보급
정부는 1979년 실시한 ‘제1차 국민 표준체위 조사’ 이후 약 5년마다 우리나라 사람의 인체 대량자료(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2003년 제5차 조사부터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사이즈코리아)’로 명칭을 변경했다.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는 의류, 생활용품 등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민의 인체치수, 형상 데이터를 수집·보급하는 국가 주도 데이터 사업이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제8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 결과를 3월 3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발표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 키는 남성 172.5㎝, 여성 159.6㎝로 1979년 1차 조사 때보다 남성은 6.4㎝, 여성은 5.3㎝ 각각 커졌다.
제8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는 2020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만 20∼69세 한국인 6839명을 대상으로 직접 측정 137개, 3차원 측정 293개 등 모두 430개 항목을 측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국가 주도의 데이터 사업으로 40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에는 격동의 시대를 거친 우리나라 사람의 인체 변천사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가기술표준원은 이날 육군본부, 한국스마트의료기기산업진흥재단, 단국대 웨어러블 제조데이터 플랫폼센터, 대한인간공학회, 한국의류학회와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 데이터 활용·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우리나라 사람의 체형 변화와 인체치수 조사 결과를 산업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하고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신규 데이터 수요 발굴과 데이터 활용 확산을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관련기사

페이지 맨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