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2일 개관한 뉴 뭉크미술관 전경 ©PavelBedna?ík(WMCZ)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963년 5월 29일 개관한 구(舊) 뭉크미술관 ©Frode Inge Helland
북유럽의 노르웨이인은 바이킹의 후예들이다. 바이킹은 9~11세기 스칸디나비아반도 서쪽의 노르웨이와 동쪽의 스웨덴을 근거지로 바다를 통해 유럽과 러시아 일대를 약탈하며 세력을 확장한 노르만족을 말한다. 노르웨이는 또 빙하의 침식으로 생긴 U자형 골짜기에 바닷물이 유입돼 만들어진 좁고 긴 만(灣)인 피오르의 나라이기도 하다.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는 길이 204k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피오르로 유명하다. 송네 피오르의 최대 수심은 1307m이며 피오르를 둘러싼 절벽의 높이가 평균 1000m를 넘어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한때 바이킹 세력이 위세를 떨쳤던 것도 빙하의 발달과 침식으로 생성된 피오르라는 독특한 지형의 영향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16만 개가 넘는 호수가 산재해 있는 산악국가로 남북이 1753km, 동서가 430km인 길고 좁은 국토를 형성하고 있다. 인구 546만 명의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7배에 달한다. 위도상 알래스카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고 영토의 30%가 북극권이다.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와 국경이 접해 있다. 수도는 오슬로. 11세기 중후반 바이킹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으며 1905년 독립 국가가 됐다.
▶노르웨이 사진가 안데르스 비어 윌스가 찍은 58세 때 뭉크의 모습 ©Anders Beer Wilse│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노르웨이의 자랑 아문센, 입센, 뭉크
노르웨이는 북극 인접 국가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일찍이 탐험가들의 로망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인물이 바로 노르웨이 출신 로알 아문센(1872~1928)이다. 아문센은 마흔 살을 코앞에 둔 1911년 12월 14일 개 썰매를 이용해 남극점에 안착했다.
아문센은 1926년 북극점도 정복했다. 북극점은 1909년 미국의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1856~1920)가 처음으로 밟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6년 발견된 피어리의 일지 기록 분석 결과 북극점에서 40km 떨어진 지점까지만 접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써 아문센은 남, 북극점을 모두 개척한 선구자로 기록됐다.
<인형의 집>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도 노르웨이 오슬로 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입센이 자신보다 35세 연하인 까마득한 고향 후배로 훗날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한 에드바르 뭉크(1863~1944)와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이다. 뭉크는 입센의 작품 속 삽화를 그리는가 하면 입센의 희곡 실연을 돕기 위해 무대장치를 기꺼이 설계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절규’를 그린 화가 뭉크를 기리는 미술관이 바로 오슬로에 있는 뭉크미술관이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판지에 템페라, 83×66cm, 1910
어머니·누나 잃고 우울증 앓던 뭉크
죽음이라는 단어는 뭉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오슬로의 옛 지명 크리스티아니아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뭉크는 다섯 살 때 결핵을 앓던 어머니를 여의었다. 열네 살 때에는 누나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계속됐다. 26세 때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32세 때에는 여동생마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뭉크 자신도 결핵과 류머티즘, 정신병과 만성 천식을 달고 살았다. 죽음의 그림자는 평생 뭉크를 옥죄었다.
뭉크의 그림 전반에 절망과 불안감, 공포심이 뿌리내린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뭉크의 성장 과정과 인생역정에서 잉태되고 가슴 깊숙이 패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대표작 ‘절규’에 충격적인 형상으로 농축돼 있다.
뭉크는 ‘절규’를 모두 4가지 버전으로 그렸다. 1893년 판지에 유화, 템페라, 파스텔로 그린 버전이 첫 번째 ‘절규’ 그림인데 현재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1892년 뭉크는 일기에서 ‘절규’를 그리게 된 동기가 자신의 끔찍한 체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해 질 무렵 친구 둘과 길을 걸어가던 중 우울한 기분이 들면서 별안간 하늘이 붉은 핏빛으로 물드는 게 아닌가. 순간 숨이 멎어 죽을 것만 같았고 자연을 가로지르는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1893년 뭉크는 판지에 파스텔로 그린 ‘절규’ 버전도 남겼는데 1910년에 판지에 템페라로 작업한 ‘절규’ 버전과 함께 뭉크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절규’의 나머지 한 작품은 1895년 판지에 파스텔로 그린 것으로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개인소장 버전은 2012년 5월 2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2만 2600달러에 낙찰돼 당시 회화 경매 사상 최고가 신기록을 세웠다.
▶2004년 무장 강도에 의해 강탈당했다가 2년 뒤 되찾은 뭉크의 ‘마돈나’. 캔버스에 유화, 90×68cm, 1894
노르웨이 국민의 자긍심 깃든 곳
1963년은 뭉크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던 해였다. 이 해에 오슬로에서 개관한 뭉크미술관은 뭉크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노르웨이 국민의 자긍심이 깃든 곳이었다.
뭉크미술관의 설립에는 뭉크 본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0년 독일이 노르웨이를 점령했을 때 뭉크는 77세 노인이었다. 뭉크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신 소유의 회화와 판화, 소묘 등 전 작품을 고향 오슬로시에 기증한다는 내용과 함께 작품을 영구 보관, 관리할 미술관 설립을 바란다는 희망이 적혀 있었다.
1944년 1월 뭉크가 사망한 뒤 뭉크의 작품을 기증받은 오슬로시는 뭉크 탄생 100주기가 되는 1963년을 미술관 개관 D-데이로 잡고 오슬로 퇴옌 지역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철제 콘크리트 건물을 짓기로 확정했다.
뭉크미술관의 컬렉션은 회화 1200점, 판화 1만 8000점, 소묘 4500점 외 조각, 서적 등으로 구성됐다. 1994년 뭉크 사망 50주년이자 개관 31주년을 맞아 뭉크미술관은 전면적인 보수·확장 공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관람객 수용과 작품관리 및 전시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새 미술관을 건축하기로 하고 2021년 10월 오슬로 중심가 수변구역인 비요르비카에 13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을 완공했다.
대표작으로는 파스텔 버전 ‘절규’(1893)와 템페라 버전 ‘절규’(1910)를 비롯해 ‘마돈나’, ‘근심’(이상 1894), ‘아픈 아이’(1927) 등이 있다.
2021년 10월 22일 오슬로시 비요르비카에 자리한 오페라 하우스 옆에 반투명 알루미늄 셀로 외관을 두른 13층짜리 초현대식 건물이 들어섰다. 1963년 오슬로 퇴옌 지역에서 개관한 구 뭉크미술관이 58년간의 임무를 다하고 새 뭉크미술관 시대가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총 3억 12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된 새 미술관의 면적은 약 2만 1367㎡(약 6463평)로 옛 뭉크미술관의 전시면적보다 다섯 배나 넓다. 한 화가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뭉크미술관답게 총 전시 공간의 절반 이상을 뭉크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 건축가 후안 헤레로스가 이끄는 건축 회사(Estudio Herreros)가 설계를 맡은 새 뭉크미술관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공법으로 건축됐다. 미술관 위치가 수변지역이라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일품이다.
설계 공모 후 재정난 때문에 한때 건립계획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2013년 5월 오슬로 시 의회가 원래 계획안을 최종 승인함에 따라 2015년 9월 착공에 들어갔다.
2021년 여름 총 2만 8000여 점의 컬렉션이 새 뭉크미술관으로 이전을 완료하고 이해 10월 22일 하랄 5세 국왕의 참석 하에 개관식이 개최됐다.
▶에드바르 뭉크, ‘근심’, 캔버스에 유화, 94×74cm, 1894
▶에드바르 뭉크, ‘아픈 아이’, 캔버스에 유화, 1927│©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죽음의 공포 시달리는 남자 모습 담은 ‘절규’
대표 소장품인 ‘절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공포심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걸작 중의 걸작이다.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은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 없는데 뭉크는 이 그림을 통해 두 감정의 시각적 포착에 성공했다. 그리다 만 듯한 거친 붓질과 차갑고 어두운 색, 심하게 뒤틀린 형상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다리 난간 옆에 선 한 남자. 해골 같기도 하고 유령 같기도 한 기이한 몰골이다. 두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린 채 귀를 틀어막고 괴성을 지르고 있다. 몹시 불안하고 공포에 질린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적황색으로 칠해진 구름, 그 아래 긴 머릿결처럼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물결, 심하게 기울어진 사선으로 표현한 다리 난간에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남자의 절망적인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표현주의의 거장 뭉크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이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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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