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미술관 앞 야외 정원│©Vyacheslav Argenberg / www.vascoplanet.com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로마시를 가로지르는 테베레강 건너 서쪽 언덕에서 예언자로 살던 고대 로마제국의 신탁(神託) 시인을 뜻하는 라틴어 바테스(vates)가 어원이다. 신탁 시인들의 거주지이자 활동 무대였던 언덕, 즉 바티칸 언덕은 원래 로마인들에게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으나 로마제국 제5대 네로 황제(37~68, 재위 54~68) 때 검투사들의 투기장인 원형 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살육의 현장으로 성격이 돌변했다.
네로 황제 재위 11년 차인 서기 64년 7월 19일 기름공장에서 발생한 불이 로마시 전역으로 번진 로마 대화재 사건 당시 주범으로 낙인찍힌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가 십자가형에 처해 진 장소도 이곳으로 전해지는데 베드로의 무덤이 원형 경기장 근처에서 발굴됐기 때문이다.
옛 베드로 대성당은 바로 이 베드로의 무덤 위에 4세기 때 건축됐으며 16세기 때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됐다. 바티칸이 가톨릭교회의 성지인 이유다. 바티칸시국은 바로 이 바티칸에 세워진 도시 국가로 가톨릭교회의 본산인 교황청도 이곳에 있다.
▶바티칸 미술관 내 천장 벽화│©Ank Kumar·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바티칸시국과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시국은 로마시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여의도(2.9km2)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0.44km2의 면적에 800여 명의 인구를 지닌 내륙 독립국이다. 교황의 세속적 통치 영역인 교황령 시절(756~1870)에는 영토가 이탈리아 중부 지역 전체에 걸쳐 있었으나 1870년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된 뒤 1929년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주권국으로 독립하면서 현재의 바티칸시국이 됐다.
총 길이 406km로 로마제국의 젖줄이었던 테베레강 서쪽 기슭에 자리한 바티칸시국은 로마 북서부의 바티칸 언덕과 근처의 성 베드로 대성당, 시스티나 경당, 교황의 거처인 사도 궁전, 바티칸 미술관으로 통칭하는 유서 깊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으로 이뤄져 있다. 성 베드로 광장 방향을 제외하고는 나라 전체가 국경 구실을 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총 6개의 출입구가 있다.
콘클라베로 불리는 추기경단 비밀회의에서 선출되는 교황은 바티칸시국의 국가원수로 입법, 행정, 사법 3권을 모두 행사한다. 선출 방식은 선거지만 임기가 정해지지 않은 비 세습 절대 군주 신분이다. 시민은 교황청에서 근무하는 성직자와 스위스 근위대, 평신도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 경제 재원은 전 세계 가톨릭 교구에서 보내오는 봉헌금과 기념품 판매, 미술관 입장료 등이다. 1984년 나라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도시 국가 바티칸시국에는 지구촌 최대 규모의 거대한 성당이 있다. 바티칸시국 남동쪽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서기 67년에 순교한 로마의 초대 주교 성 베드로가 대성전 제대 아래에 묻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가톨릭교회를 상징하는 종교적인 의미와 17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성, 당대 예술계 최고의 별들이 건축과 조각상, 벽화를 장식한 예술적 가치 등으로 가장 유명한 성지순례 장소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교황이 집전하는 가톨릭의 주요 의식도 이곳에서 열린다. 베드로의 무덤이 있는 성소(聖所)라는 상징성을 계승해 선종한 교황의 시신도 성 베드로 대성당 제대 아래에 안치하고 있다.
최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272~337, 재위 306~337)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서기 326년~333년 사이에 건설됐으며 1200년이 지난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1443~1513, 재위 1503~1513) 때 옛 성당을 헐고 새 성당을 짓기 시작해 120년간의 긴 공사 끝에 1626년 완성됐다.
정통 돔 양식인 성 베드로 대성당은 6만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으며 400여 개의 조각상과 1300개에 이르는 모자이크 벽화 등이 장식돼 있다.
▶바티칸시국 내 바티칸 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유서 깊은 건물들. 맨 아래 가운데에 보이는 직사각형 건물이 시스티나 경당이다.│ ©Suicasmo·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9개 개별 미술관과 다섯 개 갤러리로 구성
바티칸 미술관은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 안에 있는 종합 미술관으로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역대 교황들과 추기경들의 컬렉션과 당대의 예술계 거목들이 바티칸 내 궁전과 성당에서 직접 작업한 조각과 벽화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로마, 이집트 시대를 비롯해 중세 및 근세를 망라한 다양한 미술품들을 보유하고 있다.
단일 건물이 아니라 바티칸시국 안의 궁전과 성당 등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는 상설 전시 공간을 하나로 통일해 바티칸 미술관으로 부르고 있다.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 개축 공사가 시작된 해인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선대 교황들과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들을 바티칸 궁전 내에 전시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한 것을 바티칸 미술관 역사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기원이 되는 작품으로는 1506년 1월 14일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근처 포도밭에서 발견된 조각상 ‘라오콘(Laocoon)’ 상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천지창조’,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 학당’ 등 인류 예술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걸작을 보유한 바티칸 미술관은 모두 9개의 개별 미술관과 다섯 개의 갤러리로 구성돼 있다. 바티칸 미술관의 대표적인 건물을 소개한다.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은 바티칸 미술관의 시초가 되는 미술관이다. 1771년 교황 클레멘스 14세(1705~1774, 재위 1769~1774)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품을 컬렉션으로 설립한 미술관이 토대. 후임 비오 6세(1717~1799, 재위 1775~1799)가 선대 교황의 수집품을 증대하고 미술관 건물을 증축하면서 두 교황의 이름을 따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으로 불리게 됐다. 바티칸 궁의 전신인 벨베데레 궁 안에 54개의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바티칸 미술관 역사의 기원인 라오쿤 군상│©Ank Kumar·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프레스코화, 500×700cm, 1509~1510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중 아담의 창조’, 프레스코화, 280×570cm, 1508~1512│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회화 전용 미술관 피나코테카와 라파엘로의 방
피나코테카는 교황 비오 11세(1857~1939, 재위 1922~1939)의 의뢰에 따라 건축가 겸 건축사학자 루카 벨트라미(1854~1933)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해 1932년에 개관한 회화 전용 미술관이다. 12세기~19세기 미술사의 흐름을 시대순으로 조망할 수 있는 460여 점의 미술품이 18개 전시실에 상설 전시돼 있다. 프라 안젤리코(1400~1455),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티치아노(1488~1576), 카라바조(1571~1610)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의 관저인 사도 궁전 안에 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 회의인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이자 미켈란젤로 불후의 역작 ‘천지창조’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가 있는 곳이다. 바티칸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시스티나 경당은 교황 식스토 4세(1414~1484, 재위 1471~1484)가 1473년에서 1481년에 걸쳐 옛 소성당을 증축 복원한 예배소다.
20.7m의 높이에 길이 40.9m, 너비 13.4m의 직사각형 벽돌 건물인 경당의 벽과 천장에는 미켈란젤로 외에 페루지노(1450~1523), 보티첼리(1444~1510), 기를란다요(1448~1494) 등 르네상스 거장들의 프레스코화가 장식돼 있다.
라파엘로의 방은 교황 율리오 2세가 사도 궁전 내 개인 서재를 장식하기 위해 라파엘로에게 벽화와 천장화를 주문해 만든 4개의 방을 말한다. 서명의 방 벽화인 ‘아테네 학당’이 가장 유명하다. 라파엘로가 1509~1510년에 세로 500cm, 가로 700cm의 압도적인 크기로 그린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등 54명의 내로라하는 위인들이 학당에 모여 토론을 하는 장면을 상상력을 동원해 그린 대작이다.
플라톤(B.C. 428 또는 427~B.C. 348 또는 347),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 소크라테스(B.C. 470·469년경~B.C. 399), 피타고라스(B.C. 580년경~B.C. 500년경)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시대 학자들 모습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당대의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내세워 그린 것이다. 라파엘로 자신도 모델로 등장한다.
이밖에 고흐(1853~1890), 고갱(1848~1903), 로댕(1840~1917), 달리(1904~1989), 피카소(1881~1973) 등 현대미술을 빛낸 대가들이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 800여 점이 55개 전시실에서 관객을 맞고 있는 현대 종교미술 컬렉션과 그레고리오 이교도 미술관, 그레고리오 에트루리아 미술관, 그레고리오 이집트 미술관 등이 있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