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무덤 속 강인한 생명력

2022.05.23 최신호 보기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 굄돌 위에 덮개돌을 올려 무덤방이 지상에 있다.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의 칼럼으로 화제를 모은 김영민 서울대 교수가 저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서문에 쓴 글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그 끝을 알기에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바로 지금 이 시각의 소중함을 알기도 한다. 그래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의 햇살 아래 오늘은 죽음과 관련된 문화재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 보유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은? 바로 고인돌이다. 전북 고창군과 전남 화순군, 인천 강화군의 고인돌이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올랐다. 이들 지역의 고인돌은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거석기념물이다. 고인돌 문화 형성 과정은 물론 우리 민족 청동기시대 사회상과 동북아시아 선사시대 문화 교류를 연구할 때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여러 기의 고인돌이 일정 거리를 두고 분포돼 있다.│ 고창군 누리집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의 무덤
무덤의 일종인 고인돌은 ‘고이다(괴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고이다’는 ‘기울어지거나 쓰러지지 않도록 아래를 받쳐 안정시킨다’는 뜻인데 작은 돌로 큰 돌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고인돌로 부른 것이다.
고인돌 아래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의 뼈, 돌화살, 돌칼, 청동검 같은 생활용품이 발견됐다. 그래서 고인돌은 마을을 다스리고 제사의식을 주관하는 족장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1~2㎞ 범위 안에 한 기만 설치해 족장의 위엄을 과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십에서 수백 기가 한 지역에 밀집해 있기도 하다. 전북 고창군 매산마을의 고인돌들이 이와 유사한데 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족장과 그의 가족이 공동묘지로 사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고인돌을 유심히 살펴 보면 바위를 쪼개 인공적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를 바위 홈에 박아 물을 부은 뒤 팽창하는 힘으로 거석을 쪼개는 등의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은 전남 화순에 있는 핑매바위다. 가로 길이가 7.3m, 높이 4m, 무게가 무려 280톤에 이른다. 70㎏ 성인 남성 4000명이 올라선 무게다. 그 옛날 이처럼 무거운 돌을 어떻게 실어 날랐을까? 일반적으로 나무를 지렛대 삼거나 바퀴로 활용해 돌을 옮기고 돌 위에 흙을 경사지게 쌓아 큰 돌을 올려 놓은 뒤 다시 흙은 파내는 방식 등이 사용됐다.
고인돌들은 언뜻 전부 비슷해 보이지만 모양이 여러 가지다. 우선 탁자 모양을 닮은 탁자식 고인돌이 있는데 죽은 사람을 두는 무덤방을 땅 위에 두는 구조다. 평평한 돌을 ‘ㄷ’자 모양으로 3개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뒤 ‘ㄷ’자 돌 모양의 비어 있는 면을 막음돌로 막는다. 여기서 ‘ㄷ’자를 세운 돌들을 굄돌, 빈 곳을 막은 돌을 막음돌 그리고 상판에 얹은 돌을 덮개돌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 거쳐 꿋굿하게 자리 지켜
바둑판식 고인돌도 있다. 이는 무덤방을 땅 아래 파서 만들고 그 위를 뚜껑 돌로 덮은 뒤 사각형 모서리에 납작한 굄돌을 놓고 커다란 덮개돌을 올린 구조다. 이 유형은 무덤방이 땅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굄돌의 존재로 덮개돌과 땅 사이에 작은 공간이 형성돼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서 노숙인들이 머무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개석식 고인돌이 있다. 바둑판식 고인돌과 모양이 유사하지만 땅과 덮개돌 사이에 공간이 없는 유형이다. 즉, 덮개돌이 무덤방을 바로 덮고 있다. 이 유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이다. 고인돌은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 등 전 세계에 6만 기 이상 분포돼 있다. 눈여겨 볼 대목은 한반도에 약 3만 8000기(남한 2만 4000기, 북한 1만 4000기)가 있다는 점이다. 주로 서남해안 일대나 큰 하천 유역에 집중돼 있는데 고창과 화순 등 전라도에 2만여 기가, 황해도에 1만여 기가 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지형 변화와 자연재해에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인돌의 존재는 설명 불가하다. 바위 사이에 끼어 있는 이끼만큼 기나긴 사연을 품고 있는 바위 무덤 고인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게 된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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