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은 9월 12일까지 국립생태원(충남 서천군) 내 에코리움에서 열린다.
국립생태원 가보니
호랑이는 전 세계적으로 야생에서 매우 높은 절멸 위기에 직면한 상태인 ‘위기’ 등급에 처해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적색목록 등급은 멸종위기종(취약-위기-위급)에 이어 지역 절멸-야생 절멸-멸종으로 단계를 구분하는데 백두산호랑이는 지역 내 야생 상태에서 사라진 지역 절멸 상태다.
그중에서도 한국표범은 지구상에 극소수만 살아 있을 정도로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꼽힌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충남 서천군)이 ‘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4월 26일~9월 12일)을 국립생태원 내 에코리움에서 열고 있다. 4월 26일 기획전 첫날 장항선 기차를 타고 장항역에 내려 5분가량 걸으니 국립생태원 서문매표소에 도착했다.
에코리움 내부에 들어서면 바로 로비에 전시된 서울대공원 아무르호랑이(강산이·2005년 서울대공원에서 백두와 한울이 사이에서 태어난 암컷 호랑이) 박제가 관람객을 전시회장으로 안내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고려왕릉의 석호(石虎·돌 호랑이) 실물 2점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왕릉에 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세워놓는 석물이다.
옆으로는 조선왕릉뿐만 아니라 개성에 있는 고려왕릉까지 남북한 왕릉에 있는 석호 사진들이 빼곡히 벽면을 장식한다. 가회민화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까치호랑이(작호도·까치와 호랑이가 함께 있는 그림) 4점이 눈길을 끈다. 호랑이의 뼈, 어금니, 발톱, 수염 등으로 만든 각종 생활 용구(모자 장식, 장신구, 조이개, 투각, 도장)도 볼 수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까치호랑이 그림과 호랑이의 뼈, 어금니, 발톱, 수염 등으로 만든각종 생활 용구도 볼 수 있다.│국립생태원
한반도 범의 생태계 보호와 공존 주제로 구성
‘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 공간은 ▲범 내려온다 ▲범 다가온다 ▲범 찾아간다 ▲범 타러 가세 ▲범 몰고 가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립생태원은 “한반도 범의 생태계 보호와 공존을 주제로 호랑이 관련 민화, 목인(상여 장식품), 석호 등 다양한 유물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우리가 범에 대해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범 다가온다’ 구역은 한반도의 범(한국호랑이, 한국표범, 스라소니)을 소개하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호랑이를 박제로 볼 수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의 범 기록을 찾아보면서 범이 한반도에서 절멸한 까닭을 알려준다. ‘범 찾아간다’ 구역은 범이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 균형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국립생태원이 수행하고 있는 표범 복원 연구도 소개한다. ‘범 타러 가세’, ‘범 몰고 가세’ 구역은 관람객이 범을 탄 목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호랑이 그림을 색칠해보는 등 범을 주제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전시장 규모는 240㎡로 그리 넓지 않지만 유물 작품과 영상·그래픽, 체험 공간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흥미롭게 짜여 있다.
목인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범을 탄 ‘목인’ 대여섯 점을 보면서 사후 세계로 영혼을 기리고 인도하는 호랑이를 느껴볼 수도 있다. 민화에서는 귀신과 재앙을 쫓고 행운을 지켜주는 호랑이를 그린 여러 그림 유물(김홍도·강세황 합작 ‘송하맹호도’ 등)을 만날 수 있다. 흥미를 자극하는 열어보기 패널과 회전 패널로 연출한 장치를 이용해 한반도의 범인 아무르호랑이, 아무르표범, 스라소니의 특징을 비교·이해하도록 꾸몄다.
▶국립생태원의 ‘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 모습
다양한 생태계 기후대별로 보여주는 ‘작은 지구’
근대 이후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호랑이와 표범은 물론 조류에 이르기까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각종 맹수·맹금류를 해로운 짐승으로 보고 이를 제거하는 해수구제 정책을 시행했다. ‘사라진 범’ 주제 구역에서는 인포그래픽으로는 <조선왕조실록>의 범 기록과 해수구제 당시 포획된 범 기록을 수치로 비교해 보여준다. 그 옆으로 호랑이가 먹이사슬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물 다양성 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소개하는 그래픽과 영상이 이어진다.
국립생태원은 “호랑이는 과거엔 한반도 전역과 중국, 러시아에서 서식했지만 이젠 북한, 중국, 러시아 국경지대에 120마리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국립생태원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한국표범 서식지를 조사·연구하는 등 복원 프로젝트(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기획전은 러시아 등에서 야생의 범 생태를 라이브로 촬영한 <표범의 땅> 영상과 국립백두대간수목원(경북 봉화군)의 호랑이숲에 살고 있는 몇 마리 호랑이의 생태 영상을 보는 것으로 끝난다.
한반도의 범 전시장이 끝나는 곳에는 왼쪽으로 곧바로 <잎꾼개미의 버섯농장> 전시가 이어진다. 남미의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온 수백·수천 마리의 잎꾼개미가 5m 길이의 덩굴나무 가지 위를 타고 일제히 이동하면서 나뭇잎을 나르는 행렬이 볼수록 신기하다. 이 나뭇잎으로 키우는 버섯이 잎꾼개미의 먹이라고 한다.
100만㎡에 이르는 부지에 조성된 국립생태원은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대 지역과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해 2013년 말에 개관했다. 우리나라의 숲과 습지뿐만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생태계를 기후대별로 보여주는 ‘작은 지구’다.
▶국립생태원의 ‘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 모습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실내외 전시 정상 운영
국립생태원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일상 속 실천방역 체계’로 전환된 후 4월 19일부터 실내외 전시·시설 공간 모두 정상 운영에 들어갔다. 어린이를 위한 숲놀이터·물놀이터로 구성된 하다람놀이터도 이제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어린이도 올라갈 만한 나무와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 그리고 바위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맞았다.
4월 26일은 평일인데도 많은 관람객이 국립생태원을 찾았다. 가지가 길게 늘어진 나무 그늘 밑에서 얘기를 나누는 관람객, 국립생태원 안내 지도를 손에 들고 수생식물원 연못길을 걸으면서 깔깔대고 웃는 고등학생들…. 연못 수면에 봄바람이 잔잔하게 불었다. 생태 해설 프로그램도 정상 운영되고 에코리움 안의 식당과 음료 가게, 방문자센터에 있는 찻집 등 식음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국립생태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설은 상징물 격인 에코리움이다. 살아 있는 거대한 실내 온실 생태공간으로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에 걸쳐 식물 1900여 종과 동물 280여 종이 2만 1000㎡가 넘는 공간에 함께 전시돼 있다.
높은 습도가 후끈하게 느껴지는 열대관에 들어서면 커튼 담쟁이라고 불리는 식물인 치서스의 뿌리가 커튼처럼 공중에 드리워져 있다. 열대식물 약 700종에 동물사 13곳, 수족관 19곳이 들어서 어류 130여 종, 양서·파충류 12종 등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다채로운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
사막관은 아프리카의 척박한 땅 마다가스카르사막과 나미브사막, 북미 소노라사막, 미국 서부 모하비사막, 남미 아타카마사막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사막여우, 방울뱀, 독도뱀 등 다양한 동물을 비롯해 300여 종의 선인장과 다육식물을 만날 수 있다. 지중해관에서는 허브 식물, 올리브나무, 유칼립투스 향기 속에서 불도롱뇽, 화이트청개구리를 포함한 다양한 양서류를 관찰할 수 있다.
온대관에는 특히 한반도의 대표 온대림인 제주 곶자왈 지형과 연못을 조성하고 곶자왈의 식물과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양서·파충류 7종, 어류 40여 종을 전시하고 있다. 실내와 연결된 야외 온대 공간에서는 한반도의 산악 지역과 계곡 지역을 재현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 검독수리 등 온대기후의 동물을 관찰할 수 있다.
생태 주제로 다양한 전시와 교육·체험 프로그램
이날 부모의 손을 잡고 국립생태원을 찾은 어린이 대부분은 에코리움 안 극지관에 모여 있었다. 극지관은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을 시작으로 침엽수림이 발달한 타이가 숲, 툰드라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빙설기후가 나타나는 남극과 북극에 서식하는 식물 10여 종과 남극 펭귄 2종이 전시돼 있다.
실내뿐만 아니라 곳곳의 드넓은 야외 전시장(습지생태원, 한반도숲, 암석생태원, 고대륙구역, 나저어못, 용화실못, 금구리못 등)과 산들길·바람길·소로우길·제인구달길·찰스다윈길·그랜트 부부길 등 숲속을 오르내리는 산책길에서 야생의 생태를 만날 수 있다.
전국에 수목원, 식물원, 동물원 등이 꽤 있지만 국립생태원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따로 없다. 식물과 동물이 실내외 전시 공간 어디에서나 어우러져 사는 자연 생태 그대로 조성돼 있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시기에 국립생태원은 생태를 주제로 다양한 전시와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번 ‘한반도의 범과 생태계’ 기획전도 그중 하나다.
국립생태원에서 1.5km가량 떨어진 금강하구둑에 가면 제방 갈대 습지로 날아드는 철새 도래지를 걸을 수 있다. 겨울에 날아오는 철새뿐만 아니라 도요새, 물떼새 등 봄·여름·가을에 금강을 찾아오는 수만 마리 철새의 군무 장관도 볼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국립생태원 휴관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생태원 누리집(www.nie.re.kr)에서 확인하거나 전시기획부 담당자(041-950-5846)에게 문의하면 된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