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에서 나와서 혹은 가는 길에 들르기 좋은 함덕해수욕장│우희덕
여행의 이유를 생각한다. 제주에서 시작한다. 도시를 떠나 제주 시골 마을에 오기까지 서른 번 이상 제주를 여행했다.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찾은 이유를 떠올린다. 또 무엇 때문에 제주에서 기한 없는 여행을 시작한 것인지 자문한다.
여행지로써 제주를 하나의 관점으로 조망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적한 도로를 따라 하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과 에메랄드 빛 바다를 보면 제주는 낙원에 가깝고 강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돼 하염없이 공항에 갇혀 있다 보면 제주는 고립과 단절의 섬이다. 물가를 생각하면 잠시 머물 만한 관광지에 불과하고 거듭해서 제주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걸 감안하면 단순한 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상반된 측면이 존재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그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제주 부분은 복잡다단하다. 혹자는 내가 전원에 사는 것을 낭만과 감성의 차원에서 바라보는데 현실은 엄혹하다. 이른 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잡초들과 시골 냄새,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벌레들을 보면 다가올 여름이 무척 기대된다.
여행의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고 하나의 틀로 규정할 수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자연에 동화되는 것,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거나 맛집을 탐방하는 것, 생각을 비우며 걷는 것, 많은 사진을 남기는 것, 숙소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그 무엇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내게는 사람이다. 한없이 추상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 사람이 여행의 이유다. 그것은 단순히 커플 여행이나 단체 관광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여행도 결국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마주하며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천혜의 자연으로 유명한 섬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인종 차별에 가까운 불친절을 경험하며 대자연의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안 좋은 기억만 뇌리에 남았다. 반대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도리어 여행이 고양되고 삶의 태도가 크게 전환되기도 했다.
제주를 그렇게 여행한 이유가, 아직 제주인 이유가 선명해지고 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고 끝까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의 속성이듯 서울에서보다 제주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단지 내가 제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인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행에 나라는 존재가 크고 작은 이유가 되고 있다. 여행 도중에 잠시 들르거나 아예 내가 사는 곳을 거점으로 여행을 오기도 한다. 십수 년간 연락이 끊겼던 동기도 제주에서 재회했다. 먼 곳까지 찾아와 나를 응원해주는 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발견한다. 다시금 여행의 이유를 재확인한다.
나는 기꺼이 지인들의 제주 여행 가이드가 된다.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에서 여행 온 친구와 함덕해수욕장을 찾았다. 몇 년 전 그때처럼 백사장을 함께 거닐었다. 친구는 여전히 이곳의 풍경이 좋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너와 함께 있어서 더 좋다는 말은 빼고 말했다.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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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