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뚝심

2022.05.02 최신호 보기

▶원더걸스 미국공연 영상│유튜브

8인조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의 정상을 차지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4월 2일자 빌보드 차트에서 미니앨범 <오디너리>로 1위를 차지했다. K-팝 아티스트가 ‘빌보드 200’ 1위에 오른 것은 방탄소년단(BTS)과 슈퍼엠(Super M)에 이은 사상 세 번째다. ‘빌보드 200’은 미국에서 팔린 앨범 판매량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는 차트다. 음반 판매량과 디지털 음원 내려받기 횟수와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횟수를 앨범 판매량으로 환산한다.
스트레이 키즈의 음반은 선주문이 130만 장에 달했고 국내 발매 첫 주에 85만 3000여 장이 팔려나갔다. 빌보드 발표에 따르면 미국 시장에서 발매 이후 일주일 동안 10만 3000장이 팔렸다.
스트레이 키즈는 데뷔 4년 차 그룹으로 박진영이 이끄는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다. 강렬한 퍼포먼스와 비트가 강조된 선 굵은 음악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빌보드가 선정한 ‘2018년 주목할 K-팝 아티스트 톱5’에 오르기도 했다. 2020년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올해 최고의 노래 10’에 정규 1집 타이틀곡 ‘백 도어’가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의 매거진 <나일론>(NYLON)은 이들이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소식을 전하면서 “그동안 스트레이 키즈를 주목해 온 이들에게 오디너리의 성공은 놀라움보다는 4년간 축적해온 자기 발견의 정점으로 여겨진다”라고 평했다.

팝의 본고장 향해 처음 도전장 던져
스트레이 키즈의 정상 등극을 놓고 누구보다 주목해야 할 사람은 JYP를 이끄는 프로듀서 박진영이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K-팝이라는 단어가 낯설던 시절에 맨 처음 북미 시장을 두드린 사람이 박진영이었다. 그는 팝의 본고장을 향해 도전장을 던진 무모한(?) 제작자였다.
박진영이 언젠가는 미국 시장에 자신이 만든 그룹을 진출시키겠다고 결심한 건 2003년 무렵이다. 박진영은 당시 미국 음악 시장은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와 어른들을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 밖에 없다고 판단, 소위 트윈세대(12~16세까지로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낀’ 세대를 일컫는다)를 공략할 음악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해진 트윈세대는 인종이나 국가에 대해 크게 차별하지 않는 세대라고 판단했다.
2006년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나선 가수 겸 배우 비(정지훈)가 미국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공연하며 <뉴욕타임스> 등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박진영은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현지 가수들의 앨범에 참여, 힙합 뮤지션 메이스와 윌 스미스에게 곡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차곡차곡 준비해 오던 그의 미국 진출 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기 절정이었던 원더걸스를 앞세워 미국 진출을 꾀했지만 모든 음반사가 모험을 택하지 않았다. 동양에서 온 무명 걸그룹의 음반을 선뜻 내줄 리도 없었다.
결국 박진영은 트윈세대를 겨냥해 트윈 용품을 파는 프랜차이즈 마켓 본사에 가서 CD를 팔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원더걸스와 박진영은 뉴욕의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매장을 돌며 직접 전단을 뿌리고 길거리 공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박진영이 허황한 꿈 때문에 국내에서 톱스타 대접을 받는 원더걸스에게 고생을 시킨다고 비난했다.

▶스트레이 키즈 <오디너리> 영상 화면│유튜브

JYP의 빌보드 차트 도전은 진행형
이처럼 발로 뛰던 원더걸스는 디즈니 채널로 스타가 된 미국의 보이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전국투어 콘서트에 오프닝 가수로 서게 됐다. 버스를 타고 미 전역을 돌면서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버스에서 자고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버텼다. 박진영도 버스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전국을 누비며 원더걸스의 CD를 팔았다.
이들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건 우연한 무대 해프닝 때문이었다. 어느 공연장에서 마이크가 준비되지 않아서 오프닝 무대를 시작하지 못했다. 마이크가 준비될 동안 멤버 예은이 관객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일명 ‘노바디 춤’이었다. 그게 반응이 너무 좋았고 미국 진출의 전환점이 됐다.
이후 원더걸스는 우리나라 최초로 빌보드 HOT 100에 올랐다. 비록 73위의 성적이었지만 K-팝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일대 사건이었다. 박진영은 스트레이 키즈의 1위 등극 직후에 “원더걸스의 76위와 스트레이 키즈의 1위 성적을 나란히 앞에 놓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는 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JYP는 최근 북미 법인을 세웠다. K-팝 저변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북미 시장에서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이와 더불어 JYP의 빌보드 차트 도전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이 키즈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찍은 방탄소년단의 뒤를 이을지 관심을 모은다. 스트레이 키즈는 4월 29일 서울 공연 이후 일본 고베·도쿄, 미국 시카고·애틀랜타·로스앤젤레스 등 10개 도시에서 16차례 공연하며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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