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규범 제정자로 설 기회의 장 글로벌 전략 설계자 역량 키워야

2022.05.29 최신호 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대통령실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 IPEF 가입 의미와 과제
5월 23일 총 13개국(미국·호주·인도·한국·일본·뉴질랜드·브루나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베트남)이 일본에서 미국 주도 하에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출범시켰다. 인·태지역의 협력과 안정, 번영, 발전, 평화 추구를 목표로 내건 IPEF는 일종의 경제협력 플랫폼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IPEF는 다음과 같은 4개 분야와 각 분야별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다. 현재 나타난 4개 분야는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로 향후 필요시 의제 추가도 가능하다.
둘째,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에 필수적인 상품·서비스 시장 개방과 같은 시장접근은 뺀 대신 세계무역기구(WTO)는 물론 기존 FTA에도 없는 새로운 무역규범과 표준 제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셋째, 참여국은 4대 분야 중 선택적 참여가 가능해 유연하고 신속한 타결을 도모한다.
넷째, 미국에서 이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조약(treat)이 아닌 행정협정(administrative agreement)이다. 대외환경은 급변하는데 협상 참여국 전원이 모든 의제에서 다양한 이견을 조정해 합의를 도출하는 일괄타결 방식의 FTA 모델의 한계, 의회 비준을 기다리느라 발효까지 많은 시간이 허비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협상개시에서 발효에 이르기까지 8년여 시간이 소요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반면교사 삼았다. 이렇듯 IPEF는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을 참고한 것이나 아직 생소한 모델이다. 여기에서는 IPEF의 출범 배경과 우리나라의 참가 필요성, 남겨진 과제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IPEF는 미국의 글로벌 경제안보전략 일환
IPEF의 함의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의 참여 득실을 냉정히 따져보기 위해서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필자는 글로벌화의 취약성 노정, 기술의 형질 전환 심화라는 경제측면의 변화와, 지정학적 갈등 심화라는 안보측면의 변화가 서로 맞물려 만들어내는 ‘경제와 안보의 불가분성’이라는 특성에 주목한다.
IPEF는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의 일환이다. 장기적인 구조변화의 서막이다. 세계경제는 글로벌화의 취약성 노정과 기술의 형질 전환 심화라는 두 가지 도전에 직면했다. 글로벌화의 산물인 고도의 상호 의존성은 기후위기와 자연재해, 무엇보다도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효율에 기반해 구축된 촘촘한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기술의 형질 전환 심화도 중요 변수다. 군용·민용 사용이 모두 가능한 ‘이중용도’ 기술의 급속한 확산과 디지털 전환에 따라 기술혁신이 경제를 넘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예컨대 바이오 기술이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신약 개발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 제조에도 악용될 수 있게 되자 이에 대한 개발과 국제거래를 시장에만 온전히 맡길 수 없게 된 것이다.
한편 안보 측면의 중대 변화는 지정학적 갈등 심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취임은 전임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로 등 돌린 동맹·우방과 신뢰관계 복원의 분수령이 됐다. 그 결과 ‘미국 대 중국’이라는 지정학적 단층선은 ‘미국 진영 대 중국 진영’으로 변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보호주의 진영화’로 규정한다.
공급망, 기술혁신, 규범·표준, 물류, 금융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보호주의 진영화는 확산일로다. 보호주의 진영화가 투사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은 이중용도 핵심 기술품목의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신뢰할 만한 우방국과 새판짜기에 나서는 ‘신뢰가치사슬(TVC)’ 구축이다.
WTO는 급변하는 환경에 맞춘 신흥 규범 제정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미국 단독으로 중국에 맞서기엔 의지도 역량도 예전 같지 않다. 이에 미국은 뜻 맞는 우방인 주요 7개국(G7)을 규합하고 대서양 건너 유럽연합(EU)과는 무역기술협의회를 결성했다.
세계경제의 견인차이자 중국의 강력한 자장인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강화에 기여할 RCEP에도, 중국이 참가신청서를 내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도 속하지 않아 지역 질서 구축의 주도권을 중국에 내 줄 위기에 처했다. 마침내 미국은 자신을 역내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인·태전략을 수립하고 그 경제 버전 격인 IPEF를 출범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미국의 IPEF 출범 주도 배경이다.

▶5월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영상회의실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 장관회의가 화상으로 열리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세계 10위 경제대국 한국의 IPEF 참가는 필수
어느 나라도 상대가 있는 대외협상에서 100%를 전부 얻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IPEF 참가도 득과 실이 있겠으나 전자가 후자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둘 사이 격차를 크게 벌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상술한 대외환경 변화에서 우리나라도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미국의 의도와 목적함수와 별개로 우리는 이것이 만들어낼 기회를 포착해 ‘윈윈 게임’을 만들고 국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세계경제 10위 규모로 성장한 제조강국이자 디지털 강국, 자유시장경제인 우리나라가 향후 IPEF 참여로 기대되는 이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IPEF는 지역뿐 아니라 글로벌 규범 제정의 ‘인큐베이터’다. 더욱이 이는 TTC, G7에서 유사한 협력의제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즉 우리의 IPEF 참여는 신흥 글로벌 규범과 표준 제정의 출발점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규범 제정자들과 함께 섰음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그간 국제규범의 추종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경제력은 국제규범과 표준에도 밀접한 영향을 받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의 전략자산이 된 반도체, 핵심기술의 공급망, 미래를 좌우한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은 모두 국제규범과 표준에 좌우된다. 그런 우리에게 IPEF는 규범 제정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창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글로벌 전략의 설계자 역량을 배양해야 한다.
둘째, IPEF 참여국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에 불가결한 것들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강국이라고 하지만 메모리 분야 제조에 치중돼 있는 게 현주소다. 이는 미국 보호주의 진영의 원천기술과 장비, 소재, 핵심 광물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IPEF에는 경제대국 인도와 인도네시아, 우리의 주요 생산거점 베트남, 풍부한 부존자원 보유국 호주 등 우리의 핵심 교역 파트너들이 참가한다. 보호주의 진영화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나라가 이들과 협력해 TVC 구축에 나서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 유익하다.
셋째, IPEF는 여전히 과거사에 매몰돼 있는 한일관계를 공통현안 해결을 위한 미래지향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절호의 기회다. 양국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과거사 문제에 매달려 장기간에 걸쳐 펼쳐질 미래를 외면하며 소탐대실할 때가 아니다.

IPEF의 안정성·호혜성·포용성·개방성 추구
물론 IPEF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제 겨우 닻을 올린 IPEF의 향후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IPEF가 내용과 형식면에서 생소한 모델이 된 배경에는 미국의 국내정치적 제약도 한 몫 했다. 그로 인해 행정명령 형태로는 미국의 11월 중간선거와 향후 대선 결과에 따라 IPEF의 운명이 위태로울 수 있어 정권의 부침에 무관한 국제법적 안정성 확보가 필요하다.
둘째, IPEF는 호혜주의에 기반해야 한다. 미국이 자유무역보다 강조하는 공정무역이 ‘미국우선주의 2.0’이 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은 IPEF 참가국들이 끊임없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 FTA가 거의 없는 아세안(ASEAN) 회원국은 우리의 중요한 교역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미국시장의 문호를 여는 것은 IPEF 참여 유인 제고뿐 아니라 미국이 바라는 ASEAN의 대중국 의존도 완화에도 기여하는 일석이조가 된다.
아울러 개발도상국에게 버거운 높은 수준을 급격히 요구해 이들의 이탈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인도의 RCEP 탈퇴와 같은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IPEF 참여가 역내국의 대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도 IPEF가 국익에 부합한다면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우리의 중요한 근린국 중국과 관계 강화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예컨대 양국은 한중 FTA의 고도화, RCEP의 질적 수준 제고, 중국의 CPTPP 참여 지지 등을 통해 한중관계의 질적 도약을 도모해야 한다.
IPEF는 특정국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국에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위배되는 행태로 피해를 입히는 것에 반대할 뿐이다. 이 취지에 공감하는 모든 나라에 IPEF의 문은 열려 있다. 만에 하나 미국내 IPEF 추진 동력이 약화되더라도 나머지 나라들은 IPEF를 매듭짓고 나아가 RCEP, CPTPP에 더해 IPEF의 대두로 인한 지역질서의 분절화·파편화 예방에도 노력해야 한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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