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참 어떤 때는 눈이 먼 사람 같고 귀가 먹은 사람 같은 때가 있다. 잘난 체하고 아는 체하면서 살지만 사실은 하나도 잘나지도 않고 아는 것도 없는 어리석은 인간일 뿐이란 걸 실감할 때가 많다.
코로나19만 해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쩔쩔매고 비틀거렸던 꼴이라니! 그래도 요즘은 어느 정도 사정이 풀려 서로 만나기도 하고 모이기도 할 수 있으니 다행스러운 느낌이지만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돌아볼 일들이 있다.
이것은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찬피동물인 개구리를 실험한 일이 있었다 한다. 아는 바대로 찬피동물은 제 몸의 온도를 상온으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외부 환경의 온도에 맞춰 변화시키는 동물이다. 그래서 변온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개구리가 좋아하는 온도는 12℃ 정도. 그 온도에 맞춰 실험용 플라스크에 물을 채우고 그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매우 좋아라 헤엄치며 논단다. 그런 다음 삼발이 위에 플라스크를 올려놓고 그 아래에 알코올램프로 천천히 가열한다고 한다.
그러면 미세하게 플라스크의 물이 온도가 높아지겠지. 그렇게 계속해서 물의 온도가 높아질 때 개구리의 행동을 관찰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12℃에서 출발한 물의 온도가 20℃, 30℃가 돼도 개구리는 여전히 그 물에서 헤엄치며 논다고 한다.
나중에는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물이 뜨거워져도 개구리는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물에서 죽어버리고 만다고 한다. 상온동물이 아니라 변온동물이요 뜨거운 피 동물이 아니라 찬피동물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사소한 일 같지만 이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을 여기에 견줘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도 무감각증이 문제이고 자기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보면서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보면서 사는 게 문제다. 그렇다. 우리 인간이 변온동물인 개구리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무엇보다도 물질 지상주의로 치달리는 우리의 삶이 문제다. 물론 물질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인간의 삶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정신 가치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풍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큰일 가운데 큰일이 아닌가. 적어도 인간은 개구리와 같은 변온동물이 아니다.
마땅히 자기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해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지향해야 한다. 외부 환경이나 변화에만 의존해 자기의 삶을 살 일이 아니다. 플라스크 안의 개구리처럼 뜨거운 물에 데워져 죽을 일이 아니고 퍼뜩 정신을 차려 그 물에서 뛰쳐나와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인 것이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전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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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