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랑 세종책문화센터 내부 전경 | 이찬영 기자
세종책문화센터를 가다
세종특별자치시 청사에 도착했을 때가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전히 코로나19 환자 수가 하루 20만 명을 넘고 마스크 착용도 의무지만 방역지침이 완화되면서 정보무늬(QR코드) 인식 같은 절차 없이도 자유롭게 청사 출입이 가능했다. 별다른 절차 없이 관공서를 드나들 수 있다 보니 ‘단계적 일상회복 시대’로 성큼 넘어온 느낌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청 4층에 내리자 바로 옆으로 ‘한글사랑 세종책문화센터’가 보인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본 세종책문화센터는 생각보다 높고 넓은 공간이 인상적이다. 6층 건물인 세종시 청사 중앙 공간(중정)이 층간 구분 없이 6층까지 뚫려 있고 네 면이 모두 유리로 돼 있다. 채광이 잘돼 실내가 전체적으로 밝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한쪽 공간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한손에 책을 들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세종대왕 동상은 세종시가 시민 공모를 통해 2017년 조성했다고 한다. 당시 이곳 중정은 공모를 통해 세종대왕상과 작은 박물관, 세미나실 겸 서가, 직원·시민 휴식 공간 등 네 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세종시가 2021년 ‘책문화센터 구축·운영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세종대왕과 한글, 책을 주제로 한 시민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한글사랑 세종책문화센터 내부를 시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한글 역사와 훈민정음 관련 서적 마련
세종대왕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 책장에는 한글의 역사와 훈민정음 관련 서적들이 마련돼 있다. <훈민정음해례본>(가품) 등 한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과 일제강점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일제에 항거하며 어떻게 말을 지켜냈는지를 알 수 있는 문학집 등이 있고 현대에 들어서 한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세종시는 이름부터 세종대왕에서 유래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도시로 한글과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세종시 상징물 역시 한글 자모 ‘ㅅ’을 동기(모티브)로 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주거 형태인 기와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2021년에는 전국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한글 전담조직을 구성하기도 했다.
2022년 3월 15일 문을 연 세종책문화센터는 2019년 강릉, 2020년 안성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 책문화센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2019년부터 지역에 책문화 생태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해 전국 지방자치단체 안 유휴 공간에 지역 출판인의 창업 보육, 지역 작가의 창작 환경, 지역민의 독서문화 향유권을 지원할 수 있는 지역 책문화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세종책문화센터는 한글 사랑 도시를 표방한 세종시의 특성을 반영해 ‘한글’을 핵심 콘텐츠로 정해 세종시청 건물 1층에 ‘집현전 책벗(165㎡), 4층에 ‘집현전 글벗(545㎡)을 마련했다. 1층에 별도로 마련된 집현전 책벗에서는 피오디(POD·다품종 소량 출판이 가능한 디지털 인쇄기기) 출판물 제작, 전자책·소리책·웹툰 제작 교육, 출판사·서점 창업 보육 사업 등 책을 읽는 활동부터 교육, 직접 책을 제작하는 출판문화 체험까지 다양한 책 문화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을 중심으로 좌우 책장에는 <훈민정음해례본>(가품) 등 한글의 역사와 훈민정음 관련 서적들이 마련돼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연령대별 출판 프로그램도 풍성
세종시가 준비하고 있는 시민 출판 프로그램으로는 ‘나도 작가다’, ‘세종 숨은그림찾기’, ‘책 친구 프로젝트, ‘어르신을 위한 대활자본 제작’ 등이 있다. 세종 시민 누구나 나도 작가다에 참가해 자신이 쓴 시·수필·자서전·사진 등을 책으로 출판할 수 있고 세종 숨은그림찾기에서는 세종시 관광자원과 이야기를 연계해 지역 관광과 공동체성 강화 등을 기대하고 있다.
책 친구 프로젝트는 다양한 주제로 그림책 등을 함께 제작하고 어르신을 위한 대활자본 제작은 활자를 키워 제작한 책을 경로당 등에 보급할 예정이다. 대활자본 제작은 전자책·소리책 제작과 연계도 계획하고 있다.
지역자원 연계와 한글 특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유치원, 초등학교와 연계한 글쓰기·그림책 제작, 중학교 자유학기제 진로체험과 연계한 유명 작가 초대 강좌, 문화재단·진흥원 등과 연계한 어르신 문해학교 등이 지역자원 연계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한글 특화 프로그램으로는 세종대왕에게 배우는 독서 습관, 이야기가 있는 한글교육, 한글 사랑 인문학 특강, 나만의 한글사전 만들기 등이다.
세종시는 이 밖에도 대외 유망 작가·지역 작가와 만남, 출판 관련 예비 창업자 컨설팅 등도 구상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소리책 체험이나 웹툰 창작 등으로도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4층에 마련된 집현전 글벗은 시민과 직원들을 위한 독서 공간이다. 한글 관련 도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일반 도서도 갖춰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은 1인당 다섯 권까지 빌릴 수 있다. 대출 기간은 2주이며 1회에 한해 1주 연장도 가능하다. 원하는 자료가 대출 중인 경우 1인당 세 권까지 대출 예약을 할 수 있다.
시민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
세종책문화센터에는 현재 1만 3000여 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7000여 권을 기증받았고 세종시에서 자체적으로 신간 등 6000여 권을 마련했다.
집현전 글벗은 도서관 기능을 하고 있지만 시민의 자유로운 독서·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도서관 등록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종시 관계자는 “세종대왕, 한글과 관련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뜻에서 관련 과거 자료와 근현대 자료를 많이 전시했다”며 “특히 세종시 지역학 자료실은 일반 공공도서관과 다른 특화된 공간”이라고 말했다. 세종시는 신생도시이자 계획도시로서 시민들의 도시 정체성이나 자부심이 부족하다고 보고 지역학 연구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4층은 한글과 독서 강좌 등 시민이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는 물론 세종시의 공식 행사나 행정자료실 공간으로도 활용하게 될 것”이라며 “시민들이 딱딱한 행정관청이 아니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
책 읽기 넘어 복합 책문화공간으로
책문화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책문화센터는 일반 도서관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도서관이 책을 읽거나 빌리는 등 독자 중심의 시설이라면 책문화센터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거점 복합 책문화공간이다. 책문화센터를 통해 작가, 독자, 출판업자 등 지역의 전반적인 책문화 생태계 구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출판업계는 2017년 출판사와 인쇄소 등이 잇따라 도산하는 등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때마침 2018년이 ‘책의 해’로 지정돼 지역민들의 독서문화 향유의 중심이 되면서 작가, 출판업계 종사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체험문화센터 구축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문체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2019년부터 지역의 책문화 생태계 중심지를 만들기 위해 전국 지자체 안 유휴 공간에 책문화센터를 만들기로 하고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했다. 책문화센터는 ▲지역 출판인의 창업 보육 ▲지역 작가의 창작 환경 ▲지역민의 독서문화 향유권 등을 지원도록 하고 있다.
2019년 강원도 강릉시가 전국 처음으로 책문화센터를 세웠고 2020년에는 경기도 안성 보개도서관, 2021년에는 세종시가 선정됐으며 2022년에는 경기도 부천시 꿈빛도서관이 대상자로 선정돼 책문화센터를 조성하고 있다.
책문화센터에서는 작가와 독자의 만남, 출판사의 창업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인쇄기기를 활용한 주문형 출판(POD) 같은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강릉책문화센터는 ‘강릉은 모두 작가다’, ‘졸업앨범 프로젝트 시간여행’, ‘오디오북 녹음 및 제작’ ‘웹툰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개도서관에 들어선 안성책문화센터는 웹툰과 만화 등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의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2022년 개관한 세종책문화센터는 한글과 세종대왕에 관련된 책들을 전시하고 한글 주간 행사를 여는 등 한글을 주제로 센터를 꾸리고 있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책문화센터는 작가와 출판사, 독자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함께할 공간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졌다”며 “17개 시·도에 한 곳 이상의 책문화센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