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이수지 작가가 서울 광진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
전 세계 출판계 휩쓰는 K-문학
3월 21일 이수지 작가가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면서 우리나라 출판계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서울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이 작가는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여름이 온다> 등 글이 없는 그림책을 선보였으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작가다.
안데르센상은 특정 작품이 아니라 작가가 지금까지 창작한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상자에게 더 명예로운 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안데르센상 주관사인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이수지 작가의 ‘글이 없는 그림책’을 “독특한 문학적·미학적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데르센상 수상에 문재인 대통령은 “출판 한류의 위상을 높였다”며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가 될 것”이라고 축전을 보냈다. 평소 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던 독자들 역시 “이 작가의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안데르센상 수상 소식에 무척 행복하다”고 감격스러워했다.
대형 서점과 출판사들은 앞다퉈 이 작가의 작품들을 특별 판매에 나섰다. 알라딘 인터넷 서점은 자사의 도서 판매량 분석 결과, 수상 직후 평균 판매량이 154배 늘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여름이 온다>, <파도야 놀자>, <선> 등 이 작가의 모든 작품이 대부분 높은 판매량을 나타냈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 ‘강이’ | 비룡소
그림책, 어린이와 어른까지 공감대 형성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이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이 작가의 이번 수상에 대해 “안데르센상은 이 시대의 그림책 역사를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그림책의 성과가 이수지 작가를 통해 기록되는 것”이라면서 “우리나라가 그림책의 후발 국가라는 걸 감안하면 이 작가의 배출은 너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인기가 많은 그림책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김지은 교수는 “그림책은 잘 인쇄돼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이기 때문에 손안의 미술관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림책은 언어, 지적 배경, 나이 등에 얽매이지 않고 많은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어른도 유년 시절의 추억이 있기 때문에 그림책을 보면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고 이로 인해 어른에게까지 큰 울림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에서는 어린이에게 최대한 다양한 책을 제공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시아의 그림책이 인기가 많고 요즘 같은 시기에는 우리나라 아동 도서가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무척 좋다. 하지만 동화책에 대한 수출 지원이 활발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 교수는 “안데르센상 심사위원 추천 도서 목록에 이현 작가의 청소년 소설 <1945, 철원>이 소개됐을 정도로 우리나라 작품들은 훌륭하다”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아동문학, 청소년 소설 등에 대해서도 번역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전 세계 독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건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해외시장에서 우리나라 아동문학에 대한 좋은 평가가 이어지자 이런 분위기를 ‘출판 한류’로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K-컬처로 인해 중남미 지역에서는 우리말 공부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때 이 지역에 우리나라의 동화책이 수출된다면 일반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결국은 우리 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으로 출판 한류가 머지않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 김금숙 작가의 <풀>
<저주 토끼>, <서른의 반격>, <풀> 등 잇단 낭보
이와 함께 세계적인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를 비롯해 최근 해외에서 번역 발간된 K-문학이 잇달아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저주 토끼>는 부커상재단이 4월 7일 발표한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6편에 포함됐다. 부커상재단은 “정보라 작가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부문 최종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3월 1차 후보에 <저주 토끼>와 같이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서는 손원평 작가의 <서른의 반격>이 4월 6일 ‘2022 일본 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2004년 제정된 서점대상은 인터넷 서점을 포함한 일본 전국의 주요 서점 직원들이 직접 투표해 선정하는데 번역소설 부문은 2012년 신설돼 2020년 아시아 소설로는 처음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가 수상한 데 이어 <서른의 반격>이 두 번째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체코에서는 지난 2월 김금숙 작가의 <풀>이 뮤리엘 만화상 최우수 번역 부문에서 수상했다. 뮤리엘 만화상은 체코만화협회가 주관하는 상으로 만화, 작화, 시나리오, 번역 등 다양한 부문의 우수 작품을 선정해 시상한다.
<저주 토끼>와 <서른의 반격>, <풀>의 번역을 지원한 한국문학번역원은 “K-문학의 해외 수상 소식이 K-문학의 경쟁력을 다시 입증하고 있다”며 “2022년은 약 200종의 K-문학 작품이 번역원 지원으로 세계 각국에 발간될 예정이다. K-문학 작품과 작가들이 세계 독자와 만나 출판 한류를 확산해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4월 6일 ‘2022 일본 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에서 수상한 손원평 작가 | 은행나무
“K-문학 출판 한류의 초입에 들어서”
해외시장에서 우리나라 책 판매량은 어느 정도일까? 2022년 1월 한국문학번역원 발표에 따르면 해외에서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팔린 한국문학 작품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등으로 발간 이후 3~4년 동안 2만~10만 부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이며 해외 독자들의 수요를 증명하기도 했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2016~2020년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판매됐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8년 이후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는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 이상 판매됐다. <아몬드>는 일본에서 9만 부, <종의 기원>은 브라질에서 2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또한 독일어로 발간한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2020년 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과 독일 추리문학상 국제 부문상을 받으면서 발간 후 1년 동안 5쇄를 찍으며 1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문학번역원 관계자는 “특정 국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은 여러 언어권에서 발간됐을 때도 많이 팔린다. 이런 추세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과 출판 시장에서 독자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전체 번역 지원 건수 중 해외 출판사가 한국문학의 번역과 출판을 일괄 신청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는데 이는 자발적으로 한국문학을 발간하는 수요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제 출판 한류의 초입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출판 한류’ 위해 다양한 사업 진행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 한류 확산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부터 시작된 ‘찾아가는 도서전’은 K-문학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출판 저작권 수출 확대와 우리나라 출판사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기 위한 B2B(기업과 기업의 거래) 중심의 도서전이다. 찾아가는 도서전은 실질적인 도서 수출 상담과 계약에 포인트를 맞춰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출판업계 종사자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찾아가는 도서전은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오프라인 행사에서는 출판사와 현지 바이어들이 직접 상담하고 계약도 이끌어냈다. 2020~2021년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찾아가는 도서전을 진행했는데 출판사들이 화상으로 상담과 계약을 진행하는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수출 상담회’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다.
2022년 찾아가는 도서전은 4회로 예정돼 있다. 상반기 중에는 6월 15~16일 인도네시아와 함께 비대면으로 진행할 예정이고 하반기 3회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탁영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케이북콘텐츠팀 대리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면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비대면 수출 상담회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병행할 수도 있다”면서 “중국, 동남아 등에서 시작한 찾아가는 도서전은 러시아, 일본 등 권역을 넓히고 있다. K-문학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도록 신규 시장을 더 넓혀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의 대표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우리나라 책을 세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54년부터 진행된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사, 저자, 독자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책 축제이며 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모여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우리나라의 책을 세계에 알리고 해외의 책을 우리나라에 알리는 문화외교와 무역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과 함께 해외 도서전의 한국관을 운영하고 주빈국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은 6월 1~5일 서울 코엑스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김민주 기자
출판 한류 선도 위한 수출 지원 사업은?
출판 한류를 선도하기 위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수출 지원 사업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해외시장 특성에 맞춘 우리나라 우수 출판 콘텐츠를 선정하고 전시하는 ‘해외 도서전 킬러 콘텐츠 전시관 운영’, 우리나라 도서·작가·출판사의 영문 정보 게재로 홍보를 지원하는 ‘출판 수출 통합 플랫폼 운영’, 우리나라 출판 동향과 정보를 전달하는 ‘월간 영문 웹진 발간’, 수출용 출판 홍보 자료 제작비(40개사 400만 원 이내)와 해외 출판 관계자에게 우리나라 출판물을 소개하기 위한 해외 도서전 마케팅 비용(30개사 300만 원 이내) 등을 지원한다.
또한 우리나라 도서를 출간하는 해외 출판사에 발간 비용을 지원하는데 권역별 출판 환경을 고려해 지원금은 차등 지급된다. 아울러 K-문학 홍보용 영상 콘텐츠 제작과 온라인 마케팅 지원, 출판 콘텐츠 번역 지원 사업, ‘서울 출판 저작권 페어’를 통해 우리나라 참가사와 해외 바이어 간 1:1 온라인 저작권 연계(비즈 매칭) 운영, 오프라인 비즈니스 화상 상담장 운영, 출판 콘텐츠 수출 대규모 회의(콘퍼런스) 개최와 저작권 수출 관련 온라인 마케팅 교육 등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해외에서 K-문학 홍보와 우리나라 출판 저작권 수출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지원하고 현지 출판 시장 동향 조사와 K-문학 인지도 확대를 위해 수출 코디네이터를 운영하며 해외 국가별 출판 시장 조사를 통해 우리나라 출판 역량 강화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