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복, ‘신화’, 브론즈, 43×23×44cm, 2017
그림과 조각은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다. 이 둘 사이 차이점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그림은 평면이고 조각은 입체라는 점. 그림을 ‘그리기’라고 한다면 조각은 ‘만들기’에 가깝다. 평평하고 납작한 평면 위에 표현되는 그림과 달리 조각은 양감(量感)을 지닌 덩어리로 구현된다. 그림은 벽에 걸리고 조각은 바닥(좌대)에 놓인다. 따라서 그림은 정면에서 봐야 하고 조각은 그 주위를 둘러가며 봐야 한다.
다시 말해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관객이 그림 앞에 멈춰서야 한다. 반대로 조각은 반드시 움직이면서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들이 회화의 정면성과 평면성에 주목하고 조각의 경우 그것이 놓인 장소성과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연극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원 평면에 그려진 그림-이미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자 환영이다. 이런 특성을 일루전(illusion)이라 한다. 반면 조각은 3차원 공간에 입체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물질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조각은 그림만큼이나 역사가 깊다. 선사시대 동굴벽화와 함께 동물 뼈나 돌을 깎아 만든 조각품이 서양미술사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어서 그리스·로마 시대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을 떠올려 보라. 그림보다 더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딱딱한 돌을 깎고 다듬어 만든 솜씨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성복, ‘The K-꿈나무’, 브론즈, 화강석, 11×6.8×6.5m, 2017
우리나라 구상조각 계보 잇는 작가
동양에선 불교 관련 조형물이 조각품 역할을 한다. 불상과 석탑이 대표적이다. 시대와 지역, 재료와 기법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한 불상과 석탑이 많이 남아있다. 이 역시 돌을 재료로 만들었기에 오랜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게 된 까닭이다.
특히 화강암이 많이 나는 우리나라 전통 (불교)조각은 특유의 미감을 보여준다. 풍파에 닳고 세월의 흔적이 더해지면서 과거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기계로 깎아 만든 요즘 화강암 조형물의 매끈한 표면과 고찰에 있는 이끼 낀 석탑의 질감을 비교해 보시라.
이뿐만 아니다. 민간신앙에서 비롯된 입체 조형물도 많다. 장승이나 솟대, 무덤 앞에 세워진 석물(石物) 등이 그 예다. 급변하는 시대변화의 물결 속에서 그 전통의 명맥이 차츰 끊어지고 있는 것 또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성신여대 조소과 김성복 교수는 우리나라 구상조각의 전통과 계보를 잇는 인물이다. 구상조각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감각의 추상성이 가미된 작품을 선보인다. 이 땅의 문화적 토양과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가 올곧이 배어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재료는 돌이다. 우리나라의 돌 조각 전통은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은 물론 서양과도 크게 다르다. 중국은 전(塼), 즉 벽돌이 발달했다. 일본은 나무 조각이 훨씬 많다. 이탈리아의 매끄러운 대리석이나 앙코르와트의 부드러운 사암(砂巖)과도 다르다.
우리나라 화강암은 입자가 다소 거칠다. 사포로 다듬은 일본 목조각과 달리 우리 화강암 조각은 정(釘)으로 쪼아 다듬어 완성한다. 그래서 조금은 투박하게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완성미가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미완의 미’야말로 우리의 풍토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일제 강점기 시절,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1905~1944)이 일찍이 간파했던 한국미의 본질이 바로 이런 특성 아니었을까?
국보 307호 ‘마애삼존불’이 있는 충남 서산이 김성복의 고향이다. 부드럽고 인자한 마애불상의 미소처럼 김성복도 푸근한 성품과 인상을 지녔다. 작품 역시 친근하고 소박한 정서를 듬뿍 담고 있다. 이 또한 풍토성에서 비롯된 인과관계가 아닐 수 없다.
▶김성복, ‘꿈수저’, 스테인리스 스틸, 70×45×187cm, 2018
▶김성복, ‘신화’, 분홍대리석, 63×30×23cm, 2011
꿈과 희망의 메시지 전하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맥락에서 도깨비방망이나 호랑이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주제를 다루는 근원도 이런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도깨비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민속설화의 주인공이다. 특히 도깨비가 들고 다닌다는 방망이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희망의 메신저다. 이 도깨비방망이가 김성복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다. 척박한 현실을 사는 현대인의 욕망과 희망을 북돋아 주는 기원의 상징이다.
김성복 작품에서 도깨비방망이는 호랑이 꼬리, 숟가락 손잡이, 나뭇가지 등 다양한 형상으로 번안된다. 서울 여의도의 한국교직원공제회관 건물 앞에 서 있는 ‘The-K 꿈나무’라는 제목의 대형작품이 좋은 예다. 이 조형물 안내표지판엔 이렇게 적혀 있다.
“도깨비방망이 이야기와 무궁화를 모티프로 제작한 현대적인 조형물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원로 조각가 전뢰진(1929~) 선생이 김성복의 스승이다. 철저마침(鐵杵磨針). ‘쇠몽둥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런 자세로 예술에 임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작업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묵묵히 돌을 쪼고 흙을 다듬고 나무를 깎으며 희망을 일구는 작가가 김성복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