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암 한국항공우주학회장 인터뷰
4월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 항공우주공학과 김종암 교수실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인 나로호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2013년 1월 30일 나로호 발사 성공을 기념해 정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제작한 모형이었다. 2021년 10월 21일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의 1차 발사를 보며 김종암 교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로켓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엔진인데 사실 나로호는 러시아 엔진을 옮겨놓은 상황이었다”며 “9년 만에 한국형 발사체를 발사하며 최소한 발사체 관련 핵심 기술이 안정적 궤도에 들어섰다는 걸 보여줬다. 굉장한 압축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2022년 1월 한국항공우주학회장으로 취임한 김 교수는 2022년이 발사체, 위성, 우주탐사 등 3대 우주개발 영역을 모두 수행하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원년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 55주년을 맞이한 한국항공우주학회는 산·학·연·군·관 55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항공우주 분야 최대의 전문 학술 단체다.
-2022년이 우리나라 우주개발 원년이라는 평가가 많은데 왜 그런가?
=우리나라 우주개발은 발사체 분야, 위성 분야, 우주탐사 분야 등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발사체 분야에 속하는 한국형 발사체 개발은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 운용까지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수행한다. 위성 분야는 항우연이 축적한 기술을 민간기업으로 활발히 이전해 차세대 중형위성 2호처럼 민간기업 주도로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주탐사 분야는 달 탐사선 발사가 2022년 8월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하는 우주탐사 프로젝트인 만큼 도전적이며 고도의 선진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대 분야의 중요 결과를 모두 선보일 2022년이야말로 우주개발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우주산업 육성을 위한 항공우주청 설치 등을 공약한 바 있고 2022년 안에 그 형태가 구체화할 것으로 본다. 여러 면에서 2022년은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원년이 될 것 같다.
▶김종암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제1공학관 301동에서 항공우주산업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년 10월 1차 발사된 누리호는 우리나라 우주기술 독립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2년 6월 예정된 2차 발사에는 실제 작동하는 초미니 위성이 실린다.
=1차 발사 실패 원인을 분석한 결과 3단 산화제 탱크 내부의 헬륨탱크 하부 지지부가 풀린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항우연이 구조 보완과 검증을 완료해 2차 발사는 무난히 성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설계부터 제작, 시험, 발사 운용까지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수행하는 누리호는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우주 운송수단이자 해외 의존도를 낮춰 위성 등 우주개발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다. 2차 발사가 성공하면 순수 우리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했다는 의의가 있다. 위성·발사체·발사장을 모두 확보해 우리 위성을 원하는 시기에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우주탐사와 우주개발을 위한 핵심 설비와 기반시설(인프라)을 갖추는 셈이다.
-정부는 발사체 기술 자립을 위해 민간 우주산업체가 주도하는 ‘소형발사체 개발역량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소형위성의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대형위성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비교적 짧은 기간에 개발이 가능한 데다 다양한 통신·정보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형위성의 발사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우주기술 선진국에서는 로켓랩, 파이어플라이, 아스트라 등 민간기업이 주도적으로 소형발사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우주산업 관련 내수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서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우주산업에 뛰어들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와 항우연이 선행 개발하면서 축적한 기술들을 민간기업으로 이전하고 소형발사체 개발역량 지원사업 등을 통해 민간기업이 우주개발 역량을 키우고 기술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6호와 차세대 중형위성 2호가 2022년 안에 발사될 예정이다.
=아리랑 6호는 시스템 설계, 본체 개발, 조립, 시험, 지상국 등을 국산화해 탄생한 위성이다. 차세대 중형위성 2호는 정부·항우연의 위성개발 기술을 산업체로 이전해 민간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주도해 개발한 최초의 위성이다. 뉴스페이스(민간 주도 우주개발) 시대에 위성개발에 필요한 주요 기술을 국산화했다는 점과 민간의 위성개발 성과를 확인하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탑재체 핵심 부품의 국산화는 우리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독자적 위성 운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리랑 6호의 발사 시기가 2019년부터 세 차례 연기된 것도 탑재체 핵심 부품인 영상 레이더(SAR)의 안테나 제작을 담당한 해외 업체의 납품 지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이마저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로 러시아의 발사체 발사 일정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불투명해졌다. 위성 핵심 기술과 발사체의 국산화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정부가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F)을 독자적으로 구축한다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미국의 지피에스(GPS)를 비롯해 유럽연합의 갈릴레오, 러시아의 글로나스(GLONASS), 중국의 베이더우, 일본의 준텐초(QZSS) 등 우주기술 선진국들은 독자적 위성항법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GPS는 군용뿐만 아니라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위치·경로 탐색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 만약 하나의 위성항법시스템에만 의존하다 그 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면 큰 혼란을 빚게 된다. GPS의 유료화와 의도적 조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을 개발해 독자적 위치 정보망을 구축하면 위험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다른 위성항법시스템과 상호 연계해 더 정확하고 안정적인 위치 정보 서비스도 가능해진다.
-8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탐사선인 달 탐사선이 발사된다.
=달 탐사선은 나사에서 개발한 고정밀 촬영 카메라와 함께 우리 기술로 제작한 5개의 탑재체가 탑재돼 운용된다. 달 탐사선 설계와 탑재체 개발은 우리나라가 주도한다. 자문 형태로 협력하는 미국항공우주국(나사·NASA)은 심우주 안테나 기반시설(인프라)과 인력을 활용한 지상관제·항법 등을 지원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제 우주탐사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2020년도 기술 수준 평가 결과를 보면 우주탐사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56% 수준으로 높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우주탐사를 시도한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번 협력을 통해 심우주 항행 기술, 통신 기술과 같은 우주탐사 기술을 확보할 기회를 얻고 나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주탐사의 실패 확률을 상당히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 자체 우주기술 개발과 동시에 미국을 포함한 국제 우주 커뮤니티와 협력을 확대·강화해야 선진 우주기술 보유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2021년 대비 약 18.9% 증가한 7340억 원 규모의 우주개발 계획을 확정하면서 민간 주도 우주개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과 우주 인력 양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뉴스페이스는 우주개발의 상업화와 민간 참여의 확대라는 의미를 넘어 정부와 민간의 관계 변화를 포함한 우주산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뜻한다. 우리나라 우주산업의 규모나 기술적 성숙도로 볼 때 민간 주도적으로 우주산업에 진출하기에는 아직 초기 단계다. 뉴스페이스 기조라고 민간에 맡기면 우리나라 우주산업 생태계가 오히려 위축·와해할 위험성이 있다. 우주기술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상업화가 가능한 우주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민간기업의 참여를 유도해 우주산업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도 같은 의미라고 본다. 정부의 지원 정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주 정책을 총괄하는 전담조직의 설립도 필요하다.
-우주 정책을 총괄하는 전담조직(컨트롤타워) 설립을 놓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항공우주산업이 성공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산·학·연·군·관이 역할 분담과 상호 협력을 통해 상승효과(시너지)를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산학연의 기술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인력 양성, 그리고 국가적 정책·재정지원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우리나라 우주산업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에서는 산업·과학기술·군사적 측면 등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고 중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는 전문적 전담조직이 꼭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특정 기관에 부속되지 않고 정책 기획, 예산 집행, 인력 배치 등의 권한을 가지는 독립된 정부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글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우리나라 첫 달 탐사선이 관측에 나서는 상상도│한국항공우주연구원
8월발사 예정 ‘달 탐사선’
명칭 후보 톱10 선정
8월 발사 예정인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이름 후보 10개가 선정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월 발사 예정인 달 탐사선의 공식 명칭후보 10건을 선정해 5월 초 최종 확정할 계획이라고 4월 4일 밝혔다.
과기정통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기 위해 ‘달 탐사선 명칭 공모전’을 진행해 모두 6만 2719건을 접수했다. 이는 2018년 ‘누리호’의 이름을 짓기 위해 추진한 한국형 발사체 명칭 공모전 응모 건수(1만 287건) 대비 6배가 넘는다.
과기정통부는 3월부터 관련 규정에 따라 공모전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심사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1차·2차 심사를 거쳐 다가온, 다누리, 다래온, 다산, 달마루지, 달마주, 달수리, 미리온, 별마루, 최순달 등 10건의 후보를 선정했다. 앞으로 10건의 후보작에 대한 국민 선호도 조사와 확대 전문가 평가, 공개 검증 등을 거쳐 최종 명칭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명칭은 달 탐사선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며 대상작을 제안한 1명에게는 과기정통부 장관상과 더불어 달 탐사선의 발사장 현장 참관 기회 또는 300만 원의 상금을 준다. 우수상 2명, 장려상 2명에게도 각각 항우연 원장상과 상금을 준다.
과기정통부 정책 담당자는 “이번 달 탐사선 명칭 공모전 참여가 예상보다 높았다. 그만큼 우주개발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열망이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