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고등학교 학생 자치기구 건방정(건전한 방식으로 정치하는 청소년) 소속 회원들이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학교 안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이다경, 박서희, 김태현, 박일우, 조민수, 허정원 (맨 앞줄 중앙부터 시계방향으로)
청소년들이 말하는 ‘피선거권 18세 하향’
최근 정치권에서 청년들의 존재감이 커진 가운데 다가오는 6월 1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 10대 출마자가 나온다는 소식도 들린다. 피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2021년 마지막 날,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선거 출마 가능 나이를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어 2022년 1월 11일엔 만 16세면 정당에 가입할 수 있도록(기존 만 18세) 한 정당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된 법에 따라 이제 교복 입은 선출직 공직자가 탄생할 수 있게 됐다. 멀리 볼 것 없이 당장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생일이 지난 고3 학생이 출마할 수 있다.
‘피선거권 18세 하향’에 대해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경기 성남에 자리한 이우고등학교 학생자치기구인 ‘건전한 방식으로 정치하는 청소년(건방정)’에 만남을 청했다. 건방정은 2020년에 만들어져 발제와 주제 활동을 통해 국내외 정치 현황을 살피고 토론하고 공유한다고 한다.
최근 이우고등학교에서 건방정 소속 학생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김태현, 박서희, 박일우, 이다경, 조민수, 허정원 학생은 모두 2학년으로 만 17세다.
피선거권 18세 시대
이제는 73년 동안 청소년과 청년의 목소리를 가로막아온 피선거권의 장벽이 무너졌다. 선거권에 이어 피선거권까지 만 18세로 하한 연령이 동일하게 바뀌었다. 지방분권에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이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유의미한 진보다. 학생들은 무엇보다 18세 청소년의 출마로 또래 청소년을 위한 맞춤형 공약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아직은 다소 생소하다는 반응이다.
허정원 학생은 “피선거권 하한 연령을 낮춰도 본인과는 관련 없는 일로 보는 학생들이 많다”며 “청년 정치 참여가 바로 높아지지 않을 것 같다”고 또래의 반응을 들려줬다. 이에 조민수 학생은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정치에 대해 다루지 않고 있다. 선생님들도 정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당연히 우리 청소년들은 정치에 접근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해외의 청소년 정치 사례를 공유했다.
“덴마크나 핀란드는 어렸을때부터 수업 시간에 정당 정책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에 대해 배운다. 이렇듯 유럽은 학교에서 정책을 가르치고 배우다보니 정치에 참여하는 청소년도 많다. 젊은 대통령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 같다.”
박일우 학생은 “정치 교육이 공교육에서 힘들다면 건방정 같은 기구를 만들게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태현 학생은 “중학교 때 법과 정치, 인권을 배우긴 하는데 너무 수동적"이라며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다경 학생은 18세 청소년이 출마를 하냐를 떠나 ‘청소년이 정치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가 갖는 의미를 되짚었다. “피선거권 18세 하향을 통해 청소년들도 정치를 ‘자기의 일’로 보게 됐다는 것이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건방정 소속 학생들이 학교 안 신학습관 실험과 상상실에서 20대 대선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정치란?
조민수 학생은 “정치가 하나의 버스라면 이를 움직이는 건 시민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본인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국민의 참여도에 따라 정치가 잘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정원 학생은 가치관이란 단어를 꺼냈다.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남이 욕하면 욕하고 칭찬하면 칭찬하게 된다.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그걸 얻기 위해 무얼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김태현 학생은 친구들에게 미리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어봤다. 이 물음에 한 친구는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상당수 청소년의 대답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김태현 학생은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 우리 세대가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도 반복될 것이다. 삶과 정치는 밀접하다. 정치의 존재 자체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바꾸기 위해서는 참여해야 한다.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다경 학생도 “원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운동까지 나가지는 않아도 정치 토론에 참여하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도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눈으로 본 대선 공약
건방정 소속 학생들은 3월에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대선 후보들의 청소년 정책이 “입시 문제에만 치우쳤다”며 청소년에 대해 면밀하게 관찰하는 데 있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김태현 학생은 “많은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과외에 치여 산다. 평균 3개 내지 5개씩 과외를 한다. 그래도 늘 조급하다”면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배우고 협력하고 삶을 좋게 하는 공약은 없을까? 학교 안에서 즐기며 친구들과 협업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약, 청소년이 행복한 공약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여기에 이다경 학생도 “청소년의 삶이 입시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여기에 맞춰 공약이 확장돼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고, 허정원 학생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청소년 나이대만 한정짓지 말고 우리가 성인이나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주체적인 삶을 준비할 수 있는 공약이나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서희 학생은 “청소년을 ‘학생’으로만 보지 않고 넓은 시야에서 바라봐 달라”며 “다양한 진로를 보장해줄 수 있는 공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방정에서는 지난 겨울방학 기간에 ‘2022 대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고 모르는 것들은 조사했다. 그런 뒤에 가상 후보를 만들어 학교 내에서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모의투표 용지를 활용해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투표 결과가 나온 뒤 김태현 학생은 “육아휴직이 맘에 들어 뽑았다는 말에 학생들도 공약을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공약을 찾아보는 게 어렵다는 불만도 접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일우 학생은 “모의투표라도 진행하지 않으면 청소년들은 정치에 대해 더 알 길이 없다”며 정치 교육의 부재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 건방정 선배가 전해준 말을 옮겼다.
“정치는 어렵다고 느껴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선거와 관련한 어떠한 수업이나 교육 과정이 제공되지 않는다. 후보자 검증 없이 이름과 당의 색만 보고 뽑을 수 있다는 우려에 건방정을 설립하게 됐다. 어떤 공약과 어떤 색깔을 후보들이 갖고 있는 지를 봐야 한다.”
건방정 소속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가 우리 정치의 미래를 밝히는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뒤따라야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17세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고민과 태도는 뜨거웠다. 이들이 학교 안에서 일으킬 작은 변화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만 17세인 건방정 소속 친구들은 6월 지방선거 때 간접적으로라도 선거를 체험해보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들 모두 “선거 현장에서 청소년 봉사활동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의정활동은 출석, 정치활동은 결석
당장 오는 6월 지방선거에 고3 재학생이 출마해 당선될 경우 선거운동 기간, 당선 후 의정활동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교육부가 밝힌 ‘정치관계법 개정에 따른 현장지원 사항’에 따르면 공직자로 당선된 고교생의 출결은 의정 활동과 정치 활동을 구분해 관리한다.
국회·광역·기초 의회의 회기 중 본회의·상임위 회의 참석 등 의정활동의 경우 수업 일수의 10% 한도 내에서 출석인정결석으로 처리된다. 출석인정결석은 말 그대로 결석했지만 출석한 것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이와 달리 후보 기간의 선거 운동 등 의정 외 기타 정치활동은 결석으로 간주되고 사유는 ‘교외활동’으로 기록된다.
문제는 이런 결석을 포함해 결석일수가 법정수업일 수의 3분의 1을 넘어설 경우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고등학교의 법정 수업일수는 학년당 190일이고 이 중 3분의 2인 126일 이상 출석해야 수료로 간주된다. 만약 출석일수가 그에 미치지 못할 경우 유급되고 졸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의정 활동에 따른 출석인정결석(19일)과 유급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결석일수(63일)를 더해 연간 총 82일 정도만 의정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의정활동으로 시험을 보지 못하는 경우는 ‘인정점’이 부여된다. 인정점이란 이전 시험 성적이나 다른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환산한 점수를 해당 시험에 부여하는 것으로 환산 비율 등 세부 지침은 교육청 지침에 따라 개별 학교가 정하도록 돼 있다.
정당가입자의 정당활동 경우도 부득이 또는 합당한 개인사정에 의한 결석으로 인정해 ‘기타결석’ 처리와 인정점 부여가 가능하다. 기타결석은 가족 병간호나 직계존속 외 가족 장례식 참석 등 부득이한 경우로 결석하게 된 경우에만 해당했지만 관련법 개정으로 정치활동도 여기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단 학교교육계획, 학교교육과정에 따른 교육활동이 아닌 만큼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선거운동을 포함한 정치 활동 내용을 기재하지 않는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 및 단위 학교와 함께 학생의 정당·정치 활동 관련 학칙과 규정 개정을 상반기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