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개교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중학교는 삼각형 지붕의 교실이 나란히 모여 마을을 이룬 듯한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집보다 더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주변 고층아파트와 대비되도록 설계했다. | 서울시교육청
학교 공간 혁신 사례 서울 신길중학교
아기자기한 유럽의 시골 마을 같기도 하고 광고 속에서 본 타운하우스(공동 전원주택) 같기도 하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서야 학교라는 걸 알았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길뉴타운에 위치한 신길중학교다. 맨 꼭대기에 뾰족한 삼각형 지붕을 얹은 2~4층 높이의 건물 20여 개가 나란히 모여 있는 모습은 첫눈에 학교라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 독특한 학교를 보고 싶다며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021년 3월 첫 문을 연 신길중은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설계 공모전을 통해 디자인됐다. 설계를 담당한 이현우 이집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고층아파트에서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한 ‘집 같은 학교’를 목표로 했다.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3월 중순, 신문섭 신길중 교감과 함께 학교를 둘러봤다.
▶3.6m에 달하는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박공지붕의 교실과 교사 연구실 | 신길중학교
탁구 치고 전시회 열고… 학생 주도로 공간 활용
“지금은 대부분의 집이 아파트다 보니 이렇게 삼각형 지붕을 가진 옛날 집의 형태를 보기 어렵죠. 우리 학교는 이런 옛 모습의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듯해요.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 집에서 또 다른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느낌으로 설계한 겁니다. 약간 경사가 진 지형을 그대로 활용했어요. 실제 학교는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밖에서 보면 2층짜리 건물처럼 보여요. 가로로 넓게 펼쳐진 학교가 주변의 고층아파트들과 더욱 대비되도록 한 거죠.”
기존 학교와 전혀 다른 공간 문법으로 지어진 신길중의 상징은 단연 박공지붕이다. 삼각형 지붕의 건물 하나가 교실 하나다.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건물 앞면의 교실들은 모두 박공지붕으로 설계됐다. 높이가 3.6m에 달하는 교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머리끝이 시원해진다. 녹색의 책걸상과 어우러져 마치 숲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신길중은 외관만 독특한 게 아니다. 신문섭 교감은 학교의 또 다른 큰 특징으로 정원을 꼽았다. 학교에는 중정(中庭)과 테라스, 옥상정원 등을 포함해 정원이 19개나 된다. 학생들은 어디서든 쉽게 해와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정원 주변은 대부분의 벽면이 통유리창으로 돼 있어 개방감이 상당하다.
건물 가운데를 관통하는 중정에는 자작나무, 대나무, 낙엽수가 시원하게 뻗어 햇빛 목욕을 하고 있고 곳곳의 테라스에는 수호초와 긴산꼬리풀, 황매화 등 토종 풀꽃이 소담하게 피어 방문객을 맞았다. 아래층 학급의 지붕은 위층 학급의 앞뜰처럼 쓸 수 있게 했다.
학생들은 이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등 자연 속에서 맘껏 휴식을 취한다. 건물 가장자리의 넓은 복도 유휴 공간은 ‘홈베이스’라 이름 붙이고 학생들이 탁구, 요가, 토론 등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당’을 터줬다. 신 교감은 공간의 변화는 학생들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귀띔했다.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화장실이나 매점에 갈 때 빼고는 교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아요. 한 번 나가려면 긴 복도를 지나 1층까지 계단을 내려가야만 하니까요. 그러니 하루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거예요. 하늘 볼 생각을 안 해요. 그런데 여기선 교실 문만 열면 숨 쉴 공간이 많아요. 정서에 아주 좋죠. 학생들의 표정이 정말 밝아요.”
▶신길중학교 라온도서관
공간의 변화가 수업 방식 변화로 이어져
이 밖에도 학교 안에는 교실 없이 도서관을 널찍하게 배치한 1층 공간을 비롯해 차양막과 테이블을 설치해 실제 카페처럼 꾸민 회의실, 조명과 전신 거울을 달아 춤과 연극 연습을 할 수 있게 한 ‘꿈담은 교실’, 손 씻기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복도마다 설치한 세면대, 지역사회 주민들도 이용하기 쉽도록 출입구를 별도로 설치한 체육관 등 다른 학교에선 보기 어려운 공간과 시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비대면 온라인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한편에선 등교를 거부하거나 대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기도 한다지만 신길중 학생들은 학교에 오는 게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얼마 전 학생 4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학교 측에선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로 정상 등교가 진행된 사례도 있다.
1학년 오수현 학생은 “우리 학교는 드라마에 나오는 학교처럼 멋있다. 실내가 굉장히 넓고 다른 학교엔 없는 시설이 많다. 학교에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같은 학년 윤다희 학생은 “교실이 가장 좋다. 높고 넓은 교실에 친구들이 가득 모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게 기쁘다. 다른 학교 친구들이 전학을 오고 싶다며 부러워한다”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공간의 변화는 수업 방식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교사는 말하고 학생은 듣는 일방적 수업에서 벗어나 함께 소통하는 유연한 수업, 학생이 주도하는 다양한 활동이 있는 학교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는 비대면 온라인수업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학교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학교에선 언제든 정원으로 나가 야외수업을 할 수 있어요. 친구들, 선생님 얼굴을 보며 서로 교감할 수 있고 수업 방식도 다양해질 수 있죠. 교사 입장에서도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니 좋아요. 탁구대가 있어도 공간이 없어 수업을 못 하는 학교가 많은데 우리 홈베이스에선 탁구 수업이 가능해요. 지난해엔 학생들이 그린 그림으로 정원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공간이 넓고 다양하니 학생들이 앞장서서 하고 싶은 걸 찾아냅니다.”
▶학교 곳곳에는 중정 등 19개의 정원이 있어 학생들이 자연 속에서 맘껏 숨쉴 수 있다. | 신길중학교
“인재 키우려면 학교가 좋은 모습이어야”
신길중은 2021년 10월,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상작 가운데 학교 건물로는 신길중이 유일했다. 당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신길중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모델하우스(본보기집) 성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학교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의 목적으로 설계된 건 아니지만 공간혁신 측면에서 미래학교의 모범 사례로 평가한 것이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노후 학교시설을 새 단장(리모델링)해 공간 혁신, 그린학교, 스마트교실, 학교시설 복합화 등을 통해 미래교육 기반시설(인프라)을 갖춘 학교로 탈바꿈하는 한국판 뉴딜의 대표 사업이다.
앞으로 신길중과 같은 새로운 모습의 학교는 계속 등장할 걸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 미래학교개발팀 관계자는 “법적으로 설계용역비 1억 원 이상 건축물은 공모를 통해 건물 디자인을 설계하게 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이 기준을 설계용역비 5000만 원 이상 건축물에도 적용하고 있어 최근에 짓는 학교의 경우 디자인이 매우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해 김옥란 교장은 학교 건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으로서 ‘디테일(세부적인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 조언했다. 김 교장은 “교직 생활 38년 동안 학교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제 학교도 사회의 요구에 맞춰 변화할 때가 됐다”며 “교실에서 화초 하나를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곤 했는데 여기는 곳곳에 정원이 있으니 학생들의 정서에 참 좋다. 인성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작은 요소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교정 구석구석을 누비기 때문에 학교를 설계할 땐 세심함이 중요하다”며 “우리 학교는 야외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곳곳에 있어 안전에 특히 신경 써야 하고 중정이나 통유리 같은 시설물은 계절과 날씨에 따른 관리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의 뼈대가 지어지고 나면 그 안을 채우는 건 교사와 학생들의 몫이에요. 초중등 시기의 특징과 학생들의 정서, 필요를 모두 고려해야 하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학교가 가장 좋은 모습이어야 해요. 새롭고 다양한 공간이라야 학생들이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조윤 기자
2025년까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1400곳 전환
교육부는 2025년까지 2835동(약 1400개교)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국판 뉴딜의 대표 사업인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는 노후 학교시설을 새 단장해 ▲학생과 교직원 등의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 혁신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그린학교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교실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학교시설 복합화 등을 통해 미래 교육 인프라를 갖춘 학교로 탈바꿈하는 사업이다. 대상은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 학교와 각종 교육정책 목적사업에 적합한 곳을 교육청별로 추천받은 뒤 선정한다.
교육부는 “미래학교는 다양한 창의적 공간과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교실을 활용한 혁신으로 미래형 교육체계로 전환해가는 시도”라면서 “획일화된 교실의 모습에서 벗어나 학생과 교직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정보통신기술과 친환경적 요소를 접목해 지역 주민과 상생을 도모하는 새로운 학교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