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미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야경│©Hubert·l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중부에 자리한 내륙국이다. 수도 빈을 포함해 9개의 연방 주로 이뤄진 민주주의 연방국이자 영구 중립국이다. 국토의 3분의 2가 알프스 산지로 알프스산맥 전체 면적의 28.7%를 차지하는 유럽에서 산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다. 라인강, 론강, 도나우강의 물줄기가 시작하는 유럽 문명의 젖줄이 알프스산맥인데 유럽인들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담수의 90%가 이곳에서 나온다.
600년 동안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로 위용을 떨쳤던 수도 빈은 클래식 음악과 미술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모차르트(1756~1791), 슈베르트(1797~1828), 하이든(1732~1809)이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독일 출신인 베토벤(1770~1827)과 브람스(1833~1897)도 빈에서 음악 인생을 꽃피웠고 사망한 곳도 빈이다. 묘지도 빈에 있다. 카라얀(1908~1989)과 구스타프 말러(1860~1911)와 같은 전설적인 지휘자도 오스트리아 출신이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빈의 자랑이다.

▶빈 미술사박물관 전경. 오른쪽 아래에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우뚝 서 있다.│ ©Mithlachiel66·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내부로 들어가는 주 계단에서 본 빈 미술사박물관│©Dguende·l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신성로마제국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
오스트리아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역사적 뿌리는 신성로마제국(962~1806)이 출범한 지 10여 년이 지난 976년 무렵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최대 주주였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를 받던 1358년 오스트리아 대공국으로 격상된 후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영향력이 축소될 때까지 전성시대를 내달렸다. 이 시기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역할을 한 빈은 유럽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한 빈, 그곳에 있는 세계적인 뮤지엄이 빈 미술사박물관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명문가다. 루돌프 1세(1218~1291)가 1273년 독일 왕 신분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등극한 이후 1차 세계대전 패전과 함께 오스트리아 왕정이 폐지될 때까지 600년 이상 왕권을 지배한 최고의 권력 집단이었다. 합스부르크라는 명칭은 ‘매의 요새’란 뜻으로 11세기 초 지금의 스위스 슈바벤 지방에 세워진 합스부르크 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치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273년. 이 해에 독일 왕실을 다스리던 루돌프 1세가 가문 출신 최초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오르면서 유럽 정치의 전면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수년 후 오스트리아를 접수한 루돌프 1세는 빈을 합스부르크 가문의 새로운 거점 삼아 빠른 속도로 유럽 각국의 왕실을 정복해 나갔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오스트리아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돼 600년 넘게 이어졌다.
특히 알브레히트 5세(재위 1438~1439)~프란츠 2세(재위 1792~1806)까지 400년 가까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독점한 합스부르크가는 명실상부한 유럽 대륙 왕실의 지배자로 군림했다. 신성로마제국의 베이스캠프였던 빈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유럽 최고의 정치문화 도시로 이름을 떨쳤다. 합스부르크 가문과 오스트리아 왕가는 사실상 동일체나 다름없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빈 미술사박물관 천정과 내부장식│©Herbert Frank·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피터르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 참나무에 유화, 117×162cm, 1565│©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대한 예술품 컬렉션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 및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카를 6세(재위 1711~1740) 때 변화를 맞게 된다. 아들이 없던 카를 6세가 딸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슈테판 로트링겐과 결혼시키면서 가문의 명칭도 합스부르크가에서 합스부르크 로트링겐가로 바뀌게 됐다. 신성로마제국 황후 및 오스트리아 대공녀 겸 헝가리·보헤미아 여왕을 지낸 마리아 테레지아(재위 1741~1780)를 끝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통 혈통은 대가 끊겼다.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는 마지막 신성로마제국 황제 및 오스트리아 대공인 프란츠 2세 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전쟁에서 패하면서 오스트리아 제국으로 위상이 축소된다. 이를 끝으로 신성로마제국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제국(1804~1867)~독일 연방(1815~1866)~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으로 이어지다 1차 세계대전 후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면서 600년 세월을 훌쩍 넘긴 왕실과 인연도 끝났다.
눈여겨볼 점은 정략적인 혼인 정책을 앞세워 유럽의 거의 모든 왕실을 통치한 합스부르크가도 프랑스 왕은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문의 여인들을 프랑스 왕국의 왕들과 혼인을 시켰지만 끝내 프랑스 왕위 탄생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프랑수아 1세, 샤를 9세, 루이 13세, 루이 14세의 왕비 모두 합스부르크 가문 휘하의 인물들이었다.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도 마찬가지였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두 번째 황후 마리 루이즈도 범(凡)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들이다.

▶16세기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금 세공사 벤베누토 첼리니가 만든 황금 조각상 ‘소금단지’│©Jononmac46·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왕실 권위의 상징이 된 진귀한 예술작품
오스트리아의 빈은 600년 전통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이자 정치체제의 본산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거처가 있었고 합스부르크 왕실도 있었다. 당시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륙의 영토 대부분은 합스부르크가의 관할대상이었다. 거장들의 진귀한 예술작품과 값비싼 보물, 화려한 장신구는 왕실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자 권력 과시의 수단이었다.
문화 예술 권력이 빈을 지향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정체가 합스부르크 왕가의 컬렉션이다. 빈 미술사박물관은 바로 이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대로 수집한 컬렉션을 모태로 세워진 뮤지엄이다. 빈 미술사박물관이 단순한 미술관, 박물관이 아니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장소인 이유다.
빈 미술사박물관은 빈의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에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 최후의 정통 혈통인 마리아 테레지아를 기리는 광장에 세워진 것 자체가 빈 미술사박물관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광장 중앙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이 우뚝 서 있다.
14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방대한 예술품 컬렉션을 한자리에 모아 지금의 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한 인물은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재위 1848~1867)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재위 1867~1916)를 지낸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였다.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에 오른 뒤 빈을 중심으로 대규모 도시 정비사업을 시행한 요제프 1세는 1872년 독일 출신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1803~1879)에게 황실 박물관 설계를 맡겼다. 1881년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측면에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채의 웅장한 신 르네상스식 건물이 들어섰는데 빈 미술사박물관과 빈 자연사박물관이다.
화려한 내부 장식 공사를 거쳐 빈 미술사박물관은 1891년, 빈 자연사박물관은 1889년에 각각 개관했다. 빈 미술사박물관의 내부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운 대리석과 아름다운 모자이크, 화려한 벽화로도 유명하다.
왕실 보물과 다양한 무기, 화폐 컬렉션도 눈길
지붕이 돔 형태로 된 르네상스식 거대한 3층 규모의 석조건물인 빈 미술사박물관은 중앙의 홀을 감싼 ㅁ자 구조로 설계됐다. 현관을 통해 건물 내부로 입장하면 눈부신 벽화와 금동 장식을 한 검은색 코린트식 대리석 기둥들, 감탄을 자아내는 정교한 조각상들이 벽면 가득히 들어차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중앙홀 전면에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조각상이 있는데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1757~1822)의 대리석 작품 ‘켄타우로스를 제압하는 테세우스’다. 특히 2층 계단 위 기둥들 사이사이로 장식된 오스트리아의 국보급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몽환적인 벽화가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컬렉션은 1층에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과 미술품, 석관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 유물, 오리엔트 지역 미술이 갖춰져 있다. 2~3층에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 르네상스와 바로크 회화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합스부르크 왕실의 보물과 다양한 무기, 화폐 컬렉션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빈 미술사박물관을 유럽 3대 미술관 반열에 올린 일등 공신은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작가 피터르 브뤼헐(1527~1569) 컬렉션이다. 브뤼헐 작품으로 확인된 45점 중 15점이 빈 미술사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농가의 결혼 잔치’(1568), ‘눈 속의 사냥꾼’(1565), ‘바벨탑’(1563) 등 명품 중의 명품이 모두 포함돼 있다.
피터 폴 루벤스의 ‘모피를 걸친 엘레나’, 라파엘로의 ‘초원의 마돈나’,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공주’,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도 빈 미술사박물관이 내세우는 걸작들이다.
이밖에 16세기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금 세공사 벤베누토 첼리니(1500~1571)의 황금 조각상 ‘소금단지’(1543)는 2003년 미술관 보수공사 도중 도난당했다가 2006년 범인의 자수로 되돌아와 화제가 됐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