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6일(음력 2월 14일) 제주시 사라봉 칠머리당에서 영등할망을 보내는 의식인 영등송별제가 봉행되고 있다.
‘전복, 낙지, 해삼의 씨를 뿌려 주시어 바다에 의지하여 사는 저희가 풍성한 해산물을 수확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굿은 땅에 사는 인간이 하늘에 있는 신을 만나게 해주는 일종의 의식이다. 이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무당이다. 신내림을 받은 무당은 한 상 차려진 음식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을 기쁘게 하고 인간이 원하는 소망을 들어주길 빈다.
바다가 삶의 전부인 제주도에서 바다를 지배하는 신의 평온은 예부터 절대적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뒤로하고 한 해 풍어를 기원해야 하는 제주도의 음력 2월은 곳곳에서 풍작과 풍어를 비는 굿이 펼쳐진다. 일종의 세시풍속인 셈인데 대표적 의식이 바로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해녀 신앙과 민속 신앙을 이어가는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 굿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영등송별제에서 짚으로 만든 모형 배들이 마당에 늘어서 있다.│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풍요로움 가져다주는 풍농신의 상징
남녘에서 가장 먼저 봄소식이 들리는 제주도의 음력 2월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포근한 공기가 온 몸을 따스하게 감싸다가도 갑자기 싸늘한 강풍으로 표변하는 심술 궂은 날이 꽤 있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선 ‘바람의 신’을 영등할망(영등신)이라고 해서 음력 2월을 ‘영등달’로도 부른다.
영등할망은 제주도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풍농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매년 음력 2월 1일 제주도 북서쪽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복덕개 포구’로 들어와 보름 가까이 머물며 대지에는 곡물의 씨앗을, 바다에는 해산물의 씨를 뿌리고 2월 15일경 동북쪽 우도로 빠져나간다는 신화가 있다. 복덕개(福德漑)라는 이름 자체가 영등할망이 풍요를 안겨준다고 해서 복(福) 자와 덕(德) 자를 합성해 만든 것이다.
제주도에선 음력 2월 1일인 3월 초에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영등환영제를 치르고 음력 2월 15일인 3월 중순에는 영등할망을 배웅하는 영등송별제를 봉행한다. 2022년에도 어김없이 3월 3일과 3월 16일 제주시 건입동 칠머리당(칠머리는 건입동의 속칭)에서 각각 행사가 치러졌다.
영등환영제는 신령을 부르는 초감제,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 조상신을 즐겁게 하는 3막 연희인 석살림굿으로 구성된다. 똑같이 초감제로 시작하는 영등송별제는 모든 신에게 술과 떡을 권해 올리는 추물공연, 용왕과 영등할망을 맞이해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맞이, 수수의 씨로 점을 치고 해조류의 씨를 뿌리는 씨드림, 수탉을 던져 마을의 재앙을 막는 도액막음, 마을 노인들이 짚으로 만든 배를 바다로 띄워 보내는 배방선 등 순서로 진행된다.
제주도에선 영등할망이 머무는 보름을 영등기간으로 불렀다. 영등기간 날씨가 변덕스럽다는 속설이 있어서 어부는 출항을 자제하기도 한다. 영등할망을 둘러싼 신화도 여럿 있다.
영등기간 날이 궂으면 영등할망과 동행한 사람이 며느리이고 날이 맑으면 딸이라는 믿음이 있다. 실제 영등기간 날씨가 안 좋으면 한 해 작황 및 조업 부진을 걱정했다. 또 소라나 전복의 속이 비어 있으면 영등할망이 전부 까먹은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바다의 두려움 극복 위한 축제 의식
무당의 제주도 말은 심방이다. 전례를 맡아 인간과 신을 잇는 가교 구실을 하는 심방은 예능인이기도 했다. 굿은 심방의 노래와 춤, 연기가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이기에 오락거리가 없던 과거엔 심방이 사람들을 울고 웃게 했다.
사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1980년 안사인(1928~1990) 심방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안사인이 세상을 떠난 뒤 1995년 김윤수 심방이 제2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보존회에는 현재 회원 20명이 활동하고 있다.
영등할망, 심방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의 진정한 주연은 풍작과 풍어를 바라는 평범한 시민이다. 해녀, 어부, 농부는 제례에 필요한 음식을 차리고 신에게 공양하며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이 오랜 세월 전통을 유지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어쩌면 칠머리당 영등굿은 외롭고 척박한 섬 제주도에서 오직 서로의 온기만으로 뚜벅뚜벅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도민들이 바다가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힘을 북돋으려는 축제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 삶의 유일한 버팀목인 바다를 향한 경외를 담아서.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