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글·그림 아네테 멜레세 옮긴이 김서정
미래아이
자주 먼 곳을 꿈꾸었다. 어릴 때는 고대 문명에 빠져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다. 스페인에 살고 싶어 스페인어를 배운 적도 있다. 이집트 사막에서 잠들고 티티카카 호수에서 배를 타고 싶었다. 여전히 페루 마추픽추에 가는 꿈을 꾼다. 마추픽추는 내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멀고(공간적으로) 먼(시간적으로) 곳이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붙든다. 가족이, 아이가, 일터가, 목표가.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 떠나는 용감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분하고도 설레었다. 진정한 떠남이란 이런 거지. 실제 순도 100%의 용기가 필요한 날도 있다. 사표를 쓰거나 가족을 떠나거나 이민을 가는 최후이자 최선의 순간. 그러나 삶의 더 많은 시간은 우리를 붙드는 것에 못 박혀 살거나 우연히 떠밀려가는 순간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키오스크>를 처음 읽었을 때 이 그림책이 내가 기다리던 새로운 ‘떠남’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올가는 좁은 키오스크에서 먹고 일하고 꿈꾸고 잠든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고 세계이고 우주다. 가끔 떠나고 싶으면 여행 잡지 속 바닷가 노을을 본다. 우연히 키오스크가 뒤집히고 산책길에 또 다른 우연으로 강에 빠지지 않았다면 올가는 언제까지 그 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올가는 살던 곳에서 아주 멀리, 자신이 꿈꾸던 바닷가로 흘러가게 된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떠나는 이야기들은 세상에 많다. 그러나 올가는 키오스크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키오스크에 실려 바다로 간다. 나를 가장 좁은 곳에 가두는 존재가 나를 가장 너른 곳으로 데려간다는 역설. 처음 읽던 날 키오스크가 온통 아이들처럼 보이던 건 당연하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반경이 딱 집만큼 쪼그라들었다.
몇 개월에 걸쳐 다시 읽을 때마다 <키오스크>는 나의 불안 같기도, 성격 그 자체 같기도, 책임감 같기도 했다. 몇 번이고 얼마든지 달라지는 그림책. 어른이 읽는 그림책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주는 책. 그렇게 이야기가 꺼내어지면 다른 이들에게 자연스레 묻게 된다. 당신의 키오스크는 무엇이냐고, 당신은 어떻게 이 바닷가에 닿게 되었냐고.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가라며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의 대답이 다시 나에게 닿아 질문이 되고 떠남이 되도록.
황유진 <어른의 그림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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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