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활동 관련한 문서와 사진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다. 이곳에는 임시정부 활동 관련한 문서와 사진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가다
서울의 서쪽 관문, 발아래로 독립문 사거리와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를 품고 있는 인왕산. 넘치는 활력으로 반짝이는 봄볕을 받고 선 장쾌한 풍광 너머에 정갈한 현대식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총면적 9703㎡ 규모(지상 4층, 지하 3층)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임정기념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상하이에 수립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임정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마침내 2022월 3월 1일 문을 연 이곳에서 제103주년 3·1절 기념식이 치러졌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인 4월 11일을 맞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안산 자락 옛 서대문구의회에 자리한 임정기념관으로 향했다.
1000점 자료로 만나는 ‘만세’ 운동
직원의 안내에 따라 1·2·3 상설전시관을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발을 디딘 상설전시1관, ‘군주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라는 표구가 방문객을 맞는다. 왕이 주인인 군주의 나라 대한제국이 무너진 뒤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27년간 활동한 임시정부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임정의 통합 정신을 기려 좌우 독립운동가 200명의 삶이 나란히 놓였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 정신을 일깨워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의암 손병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200여 만 명의 민중, 임정 수립에 앞서 3·1운동의 뜨거운 물결이 있었다. 긴 시간을 지나 역사는 그들의 위대함을 기리지만 칼날 같은 식민 당대의 삶을 살던 이들이 어찌 이토록 결연한 의지를 다질 수 있었을까? 1919년 2월, 불 오른 주먹을 쥐고 봉황각에 올랐을 의암 손병희 선생의 모습이 떠올라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이건 관람이 아니라 체험이구나.’
전시관엔 이봉창·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앞두고 자필로 작성한 선서문, 대한민국민회가 북미 지역에 배포한 독립선언서, 일본 패망 후 미·영·중 정상이 우리나라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선언문 등 유물 350여 점을 비롯한 1000여 점의 자료가 역사의 증언자로 섰다. 임정 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손자 박유철 전 광복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려 했던 <한국통사> 초판본도 많은 사람이 보는 게 좋겠다는 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이곳에 기증됐다.
애니메이션으로 후대를 마중 나온 안창호 선생을 만났다. “비록 남의 땅에 세운 임시정부지만 독립을 염원하는 동포의 마음이 모인 이곳에서 어떤 고난이 와도 독립을 이루겠다”는 영웅 앞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 대꾸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29명이 모여 임시정부를 수립하던 1919년 4월 11일, 안창호 선생은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한 양옥집에 서 있었다. 임정은 광복의 날까지 한민족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연통부와 교통국을 설치해 나라 밖에서 국내 행정을 조정하고 군사적으로는 만주 지역 독립군과 손잡고 독립전쟁을 펼쳤으며 한국광복군을 창설(1940)해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외교적으로는 카이로선언(1943)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받았다. 종이책의 평면에 박제돼 아득하게 느껴졌던 역사를 이곳의 수많은 ‘증언’을 통해 다시 배웠다.
▶야외 광장 외벽에 걸린 대형 예술 작품 ‘역사의 물결’. 휴대전화를 갖다 대면 증강현실(AR)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선열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초판본
애니메이션·AR 통해 만나는 임정 요원
다음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압도적인 대형 화면 안에 임정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많은 임정 요원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라는 역사가 예술로 재현된다. 영상이 끝난 순간 화면 한쪽 벽에 설치된 거울 안엔 관람객의 모습이 일렁인다. ‘역사는 곧 현재고 역사는 곧 나구나.’
상설전시2관에서 임시정부 가족들과 동료들의 삶, 또 그들을 도운 해외동포와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에는 광복 전까지 200명이 넘는 이들이 의원으로 활동했다. 그중 7명은 여성이었는데 이는 세계 여성 참정권 역사에서도 선구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임정 요원들은 망명 상태에서 100여 명의 대가족을 이뤘고 아이들은 자라 대를 잇는 독립운동가가 됐다. 우리의 독립을 함께 염원한 외국인들도 있었다. 중국 애국지사 추푸청 일가족은 프랑스 조계에서 쫓겨나 떠돌던 임정 요원들을 적극 비호했으며 미국 장로회 목사 조지 피치는 일본 군경에 추격당하던 백범 김구 선생을 숨겨줬으며 일경에 체포된 안창호 선생의 석방 운동을 벌였다. 흑백사진 속 그들의 모습엔 여전히 바래지 않은 눈빛이 서려 있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국호와 헌법, 국기와 국가, 국경일 등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세워졌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한 부통령 이시영, 국회의장 신익회, 국무총리 이범석 등도 모두 임시정부 요인이었다.
임시의정원 의장을 역임한 김봉준과 그의 아내 노영재가 바느질로 땀을 뜬 대형 태극기가 내걸린 상설전시3관엔 광복(1945)과 함께 임시정부에서 정부로 이어지는 환희와 격동의 순간들이 오롯하다. 백범 선생은 일본 패망에 의해 스스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몸서리치기도 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백범 김구)
전시관 앞머리에 백범 선생의 말이 회한처럼 걸려 있다. 그 아래서 한 노신사가 느린 발걸음으로 시간의 태엽을 되감고 있었다.
“내가 열 살 되던 해에 광복이 됐어요. 온 나라가 신이 나서 들썩였지. 근데 얼마 안 있다 미군들이 들어오고 또 6·25전쟁 나고 그러면서 난리도 아니었다고. 입에 풀칠하기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또 나라가 이렇게 잘돼 있어. 나도 여기 와서 그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배워요. 참 고마운 역사 위에 살고 있는 거지.”
묵직해진 가슴을 안고 떠나는 이를 야외 광장 외벽에 걸린 대형 예술 작품이 배웅한다. 일렁이는 태극기를 형상화한 ‘역사의 물결’이다. 휴대전화를 갖다 대니 증강현실(AR)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해 애쓴 수많은 선열의 모습이 나타난다. 세월이 쌓아 올린 역사의 단층 위에 서서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늠해보는 시간이다.
글 조윤 기자,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요
위치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관람 오전 10시~오후 6시(매주 월요일 휴관), 무료 관람
문의 02-772-8708, www.nmkpg.go.kr
개관 특별전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
6월 26일까지 1층 특별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