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안전부가 펴낸 <함께하면 더욱 커지는 힘, 나아지는 삶> 표지
정부·공공기관 협업 우수사례
“횟집 지점을 내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포장이나 배달 요청도 많았지만 거절했죠. 처음에 밀키트(바로 요리 세트) 제안에도 별생각이 없었고 우리 횟집 명성만 깎아내리는 건 아닐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프레시지 공장을 몇 번 방문해보니 직원들이 워낙 열심히 잘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이젠 판매량도 점점 늘고 해외 수출까지 하게 됐어요. 주위에서 엄청 자랑스러워합니다.”
박영숙 이화횟집(경기도 화성) 대표의 말이다. ‘프레시지-백년가게 밀키트’ 프로젝트 제1호인 이화횟집은 낙지볶음과 낙지전골을 밀키트로 개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보다 매출이 세 배나 늘었다. 20~30명씩 찾던 단체 손님은 끊겼지만 밀키트 온라인 판매를 함께 하면서 전국으로 홍보가 돼 장사가 더 잘되고 있다.
경기지역 ‘백년가게 밀키트’ 시범 사업의 성공 사례다. 백년가게는 고유의 사업을 장기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업력 30년 이상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중소벤처기업부가 주는 칭호다. 2021년 12월 기준으로 1158개 가게가 백년가게 명패를 받았다. 이화횟집의 성공 이후 전국의 다른 백년가게로 확산되며 프레시지에서는 2022년 3월 기준 백년가게 밀키트 11종을 개발했다. 발매 1년 만에 81만 개가 팔리는 등 백년가게는 식당 매출 외에 밀키트 판매를 통해 정기적으로 부가 수익을 만들어내고 있다.
백년가게와 ‘자상한기업’ 연결해 상생
코로나19는 수많은 소상공인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안겼다. 외식업 백년가게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에 중기부는 ‘자상한기업(자발적 상생협력 기업)’ 사업을 통해 소상공인과 자상한기업을 연결하고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기획했다.
자상한기업은 기업이 보유한 기반(인프라)과 기술(노하우) 등 강점을 협력사뿐만 아니라 거래 관계가 없는 중소기업·소상공인과도 공유하는 기업이다. 2021년 12월 기준 이마트·프레시지 등 총 35개 업체가 자상한기업으로 활동 중이다. 중기부는 자상한기업 후보군(대기업·혁신벤처·공공기관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상생협력이 가능한 기업을 발굴하고 현장 수요, 실행 가능성, 지속성 등을 고려해 상생협약 과제와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발굴된 기업의 분야에 적합한 민간 협회·단체를 연결하는 과정을 거치고 중기부-기업-협회·단체 간 자상한기업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중기부는 분기별로 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백년가게를 돕기 위해 자상한기업의 참여를 설득하는 동시에 백년가게 주인들과 만나 연결했다.
하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고 밀키트가 낯선 백년가게는 조리법(레시피) 유출, 불공정거래 피해에 대한 우려로 처음에는 밀키트 개발 참여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국내 밀키트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인 프레시지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음식점 주인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이화횟집 등 백년가게에 일대일로 연락해 밀키트를 설명했고 개발하는 공장에 동행·실사하면서 참여를 이끌었다.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백년가게가 자상한기업과 상생을 통해 희망을 되찾은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2월 4일 행정 칸막이를 없애 국민의 일상 삶을 편리하게 하고 소상공인 등 여러 계층·집단을 도운 ‘정부·공공기관 협업 우수사례’ 25건(2018~2021년)을 모아 <함께하면 더욱 커지는 힘, 나아지는 삶>을 펴냈다.
중기부가 이마트·프레시지 등 35개 기업과 협업해 백년가게 소상공인의 밀키트 개발과 국내외 판로 개척을 지원한 사례, 행안부가 건강보험공단·한국신용정보원 등 47개 관계기관과 협업해 행정서비스 구비 서류를 일일이 발급받아 제출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보를 공유·제공한 ‘공공 마이데이터 유통체계’ 구축 사례, 한국환경공단이 씨제이(CJ)프레시웨이와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과 협업해 코로나19로 사용량이 증가한 아이스 팩을 수거·세척·소독 후 소상공인에게 공급하는 재사용 체계를 구축한 사례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시민 참여형 아이스 팩 재사용’ 운동
주부 김 모 씨는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장보기가 크게 늘었다. 요즘은 신선식품도 다음 날 새벽에 배송되는 서비스가 많아 편리하지만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문득 죄책감을 느낀다. 신선식품의 선도 유지를 위해 함께 배송되는 아이스 팩 때문이다.
아이스 팩의 충전재로 쓰이는 고흡수성수지(SAP)가 미세플라스틱의 일종으로 땅과 공기를 오염시키고 수질을 악화시키는 등 다양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뉴스를 들은 뒤로 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혹시 재활용할 곳이 있지 않을까 싶어 깨끗이 씻어 말려 모아둔 적도 있지만 결국은 처치 곤란으로 쓰레기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렸다.
한국환경공단은 이런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 참여형 아이스 팩 재사용’ 운동(캠페인)을 벌였다. 이 운동 수행의 핵심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방대하고 다양한 협업 상대를 찾는 일이었다. 그때 행안부가 구축한 ‘협업이음터’를 알게 됐고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이 운동은 2021년 ‘협업이음터 집중과제’로 선정된 덕분에 집중적인 홍보와 이음 지원을 받아 효율적으로 협업 기관을 찾으며 불필요한 행정력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한국환경공단은 이어 폐기물 수거 권한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아이스 팩을 수거·운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다음으로 새마을운동지회 등 지역 거점 시민단체들과 협업해 세척 인력과 장소를 확보했다. 나아가 전통시장 등 재사용 아이스 팩이 필요한 상인들과 네트워크(연결망)를 구축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수요처를 지속적으로 발굴했다.
이런 전국 단위의 협업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아이스 팩 재사용을 위한 기반(인프라)을 100% 구축했다.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아이스 팩 수거함을 3016개 설치했고 지자체 90곳·시민단체 111곳·기타 기관 67곳과 협업으로 아이스 팩 재사용을 위한 지역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용했다.
이 운동으로 2021년 전체 재사용 가능 아이스 팩의 20% 수준인 156만 개를 공급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재활용처 노아영 씨는 “모든 기관이 한 팀이 돼 협업한 덕분에 시민 참여형 아이스 팩 재사용 운동을 많은 시민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플라스틱 프리(Free) 사회 구현을 위해 더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 확대
2020년 6월부터 시작된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도 협업 우수사례다. 30대 회사원 장 모 씨는 최근 지갑을 잃어버렸다. 그 지갑 속에는 운전면허증도 있었다. 재발급 절차를 알아보던 장 씨는 1년 6개월 전에 모바일 운전면허증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 면허증을 받기 위해 경찰청이나 운전면허시험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했고 무엇보다 분실이나 위·변조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마음이 놓였다.
이 서비스는 경찰청이 2019년 3월에 이동통신 3사와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에 대한 협의에 나서면서 본격 추진됐다. 경찰청, 도로교통공단은 운전면허 정보를 제공하고 이동통신 3사는 제공된 운전면허 정보와 휴대전화 명의 정보 및 패스(PASS)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하면 서비스 사용자가 모바일에 운전면허증을 등록하고 이를 신분 확인과 운전 자격을 증명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민·관·공 공동사업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제공 관련 현행 법률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이동통신 3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규제 샌드박스(규제 유예) 임시 허가를 신청했고 과기정통부는 국민 편의 제공을 위해 2019년 9월 임시 허가를 결정했다. 이후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이동통신 3사가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 공동추진 업무협약을 통해 서비스를 개발해 본격 도입했다.
이 서비스는 최초로 4차 산업기술을 접목한 사업으로 약 3300만 운전면허 소지자와 약 2600만 이동통신 3사 가입자를 연결해 모바일 기기에서 운전면허 유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2021년 10월 기준으로 서비스 가입자는 300만 명을 넘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한 실제 검증 건수는 15만 건에 이른다.
이 서비스는 현재 편의점의 성인 인증 서비스, 통신사의 신규 개통 시 본인 확인 업무, 공항에서 신분 확인과 스마트 체크인에 활용되고 있다. 렌터카 업체·배달 서비스 운전 자격 확인, 금융기관에서 본인 확인 서비스 등으로 사용처를 더 확대하는 협의를 진행 중이다.
“국민 편의 위해 신기술 도입·규제 완화”
정부는 “국민 편의 제고를 위해 신기술을 도입하고자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경찰청과 과기정통부의 의지, 행정적인 노력, 이동통신사들의 기술력이 결합된 우수 협업 사례”라고 말했다. 장영준 경찰청 정책 담당자는 “민간기업과 협력해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니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시행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중앙부처·지자체·공공기관 등에 협업 우수사례집 <함께하면 더욱 커지는 힘, 나아지는 삶>을 배부하고 행안부와 정부혁신1번가 누리집(www.innogov.go.kr)에 게시했다.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 대형 서점을 통해 전자책(e-book)으로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