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5월 8일)을 앞두고 4월 7일 서울광장에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조형등이 밝혀져 있다.│문화체육관광부
매년 4~5월 우리나라 전역은 형형색색 연등으로 수를 놓는다. 마치 봄 축제의 알람 소리 같다. 남녀노소 손에 등불을 들고 이 축제의 행렬에 동참한다. 우리의 대표적 등 축제인 연등회 풍경이다. 불가에서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등(燈)은 부처님을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다. 등 공양은 부처님의 지혜로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인 연등회는 아기 부처상을 씻기는 관불 의식으로 시작해 연등을 든 참가자 행렬, 축제의 절정인 전통놀이 등으로 구성된다.
연등회 기원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이 정월 보름에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봤다는 흔적이 남아있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연등회가 국가 행사로 치러진 기록이 여러 문헌에 있다.
유교가 국가 이념이었던 조선시대엔 민간 세시풍속으로 전승돼온 연등회는 근대 들어서도 활발히 계승되다가 1955년 조계사 부근 제등행렬로 현대 연등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돼 연등회 규모가 커진 뒤 전 국민의 축제로 자리 잡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연등회 행렬 참가자들이 거북이등을 들고 오른손을 흔들며 관객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연등회
모두에게 개방된 ‘열린 축제’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연등회는 유네스코 등재 시기에 아이러니한 사연을 갖고 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연등회는 코로나19로 2020년부터 사실상 중단됐다. 불교계는 국민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생명을 내 몸처럼 귀하게 여기라는 부처님의 ‘생명 존중’ 가르침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등회가 일시 정지된 바로 그해 12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올랐다는 좋은 소식이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날아들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딘 연등회는 2022년 3년 만에 재개된다. 부처님오신날(5월 8일)을 한 달 남짓 앞둔 4월 5일 첫 행사로 서울광장에서 조형등에 불을 밝히는 점등식이 열렸다. 5월 11일까지 불을 밝힐 조형등은 국보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을 원형으로 삼아 한지로 제작됐다. 봉축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연등회는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연등회는 불교 신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에게도 개방된 ‘열린 축제’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 무리를 지어 참여할 수 있다.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연등회에는 단체 300여 곳이 축제를 빛냈을 정도다. 또 오랫동안 가부장제가 지배적 문화로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도 평등하게 구성원으로 참여해 축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참여 구성원이면 누구나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연등을 실험적으로 제작해 창의성을 뽐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핵심 메시지 전해
연등회는 항상 시대 정신과 정서를 읽으며 우리 사회에 핵심 메시지를 전했다. 2017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표어는 ‘차별 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으로 각자의 마음속에서 편견과 차별을 지우고 이웃을 배려해 사회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에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염원하는 뜻에서 북한등 19점을 행렬 선두에 배치하기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모두 비탄에 빠졌을 땐 연등회를 전면 취소하고 ‘슬픔을 나누고 희망을 모아요’라는 주제를 공유했다. 동시에 추모를 의미하는 백등과 실종자 생환을 기원하는 홍등을 달았다. 기쁨이 충만한 시기에는 축제의 등불로 세상을 밝히고 역경과 고난의 시기에는 위로의 등불로 세상을 달랬다.
원철 스님(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장)은 코로나19로 연등회가 취소된 2020년 5월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연등회 정신을 다음과 같이 썼다.
“한반도에서 천 년 동안 5월이 어찌 눈이 부시게 푸른 날만 있으랴. 잎 돋고 꽃 피는 화려한 계절이지만 때로는 장마 같은 굵은 소낙비가 내릴 때도 있고 또 태풍처럼 세찬 바람이 부는 비상시도 있기 마련이다. (중략) 자비(慈悲)의 연등회는 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쁨을 함께하는 자(慈)의 축제가 될 수도 있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비(悲)의 축제가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어스름이 아직 걷히지 않은 2022년 봄. 3년 만에 기지개를 켜는 연등회를 계기로 우리의 일상이 다시 회복하는 날을 모두 한마음으로 소망해보면 어떨까?
김정필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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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