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양옥화(왼쪽) 씨와 김우석 씨가 질병관리청 본부동 2층에 있는 ‘어울림북카페’에서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즈를 취했다.
정부 첫 중증장애인 바리스타 기술공무직 양옥화·김우석 씨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보건의료행정타운에 자리한 질병관리청은 코로나19 이후 가장 바쁘고 뉴스에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린 정부기관 중 하나다. 그런데 질병관리청이 중앙행정기관 최초로 중증장애인 바리스타를 기술공무직으로 채용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2021년 초 질병관리청은 한국장애인개발원과 협업해 ‘중증장애인 바리스타 공모’를 진행했다. 2월에 모집 공고를 내고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자로 선발된 양옥화(37·청각장애) 씨와 김우석(27·지적장애) 씨가 그 주인공이다.
질병관리청이 청사 본부동 2층에 ‘어울림북카페’를 만들고 문을 연 것은 2021년 장애인의 날이었던 4월 20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개소식에 와서 두 사람을 직접 격려했다. 두 사람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일하고 커피 등 10여 종의 음료를 제조하는 것과 더불어 바리스타 용품, 커피머신 관리 등 전반적인 환경 관리 업무도 책임진다.
기술공무직이니만큼 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고 4대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연차유급휴가가 부여된다. 급여 또한 공무직 임금체계에 따른다. 기본급과 별도로 정액 급식비와 명절 상여금 등은 내부 규정에 따라 별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공무직으로 근무한 지 1년을 맞이한 두 바리스타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양 씨와 김 씨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4월 14일 카페를 방문했다.
▶양옥화 씨가 주문받은 음료를 제공한 다음 손님과 수어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카페 이용 손님이 수어 배우고 수어로 주문
카페는 아침 손님과 점심 손님이 가장 많다. 그사이 휴식 시간인 오전 11시에 카페에 들어섰다. 휴식 시간이지만 둘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점심시간에 쏟아질 손님의 주문에 신속히 응대하려면 준비해두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바람에 더 소외가 깊어졌다. 입술 모양을 읽어 비장애인의 말을 이해하는데 마스크로 인해 원천 차단돼버린 것이다. 수어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양 씨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벌써 1년이 됐네요. 입사할 때부터 바빴는데 지금도 그래요. 그 전에는 전업주부로만 지내다가 이 일을 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됐어요. 주문 기기(포스 시스템)가 있기는 해도 마스크 때문에 소통이 어려웠는데 카페를 이용하는 직원들이 수어를 배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인사말이지만 그래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카페 계산대 앞에는 카페에서 쓰일 만한 수어가 몇 개 그림으로 제시돼 있다. 양 손가락을 깍지를 끼고 펼쳐서 흔들면 ‘아메리카노’이며 그 밖에 ‘연하게’, ‘진하게’, ‘라테’ 등도 수어로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냉장고 우유 정리를 하고 인터뷰 자리에 합류한 김 씨는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온 경우다. 서울의 한 대학교 식당에서 바리스타를 했는데 음식이 주가 된 곳이라 바리스타의 꿈을 펼치기가 어려웠는데 이곳은 오롯이 커피 냄새만 맡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바리스타의 일과에 대해 김 씨가 설명했다.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열고 오전11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휴식이 끝나면 12시부터 점심시간대 손님이 들어온다. 오후 4시 30분까지 영업을 한다. 김 씨는 주문이 밀려 차례를 기다리게 되는 경우에도 손님들이 불평 없이 기다려줘 고맙다고 말한다.
“매일같이 오는 분이 많아요. 대변인실에서 일하는 한 손님은 진한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또 한 분의 손님은 따뜻한 라테를 즐겨 찾아요. 이제 손님 얼굴을 보면 어떤 취향인지 알게 돼 기억하고 있다 바로 커피를 내리기도 하고 연하게 할지 진하게 할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카페 계산대 앞에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와 소통할 수 있는 수어가 그려져 있다.
“손님들이 서로 배려해줘 큰 불편함 없어”
둘은 자신들이 만드는 커피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둘은 “가끔 직접 만든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다른 카페와 비교해봐도 우리가 만든 게 훨씬 맛있다”고 했다.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김 씨가 답했다.
“가끔 회의 때문에 단체 주문이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땐 간단치 않아요. 한 잔 만드는 데 빠르면 40초, 늦으면 1분 걸립니다. 단체 주문이 있는 경우 양해를 구하고 오래 기다리게 될 개인 주문을 먼저 처리하기도 하는데 (손님들끼리) 서로 배려해줘 이젠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주말에 쉴 때는 주로 뭘 하는지 물었다. 양 씨는 남편과 함께 취미 생활로 캠핑 다니기를 좋아한다. 충북 보은, 괴산 등에 다녀왔는데 바다보다 산이 더 좋단다.
“공기도 좋고 시원해요. 산에선 밤하늘의 별을 많이 볼 수 있어요. 별자리 중에서는 천칭자리를 가장 좋아해요. 제가 9월에 태어났거든요. 나중에 일 그만두면 남편이랑 집을 짓고 텃밭을 조그맣게 가꾸면서 방울토마토, 상추 등을 심으면서 살고 싶어요. 친구들 반응이요? 장애인에겐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아주 드물죠. 친구들이 부러워한답니다.”
왼손을 앞으로 뻗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쥔 후 왼팔의 구부러진 부분의 중간을 툭툭 치면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며 양 씨와 인터뷰를 마쳤다.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빵 만드는 것도 배웠다”며 “대회에 두 번 나가 두 번 모두 2등을 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친구들은 취업의 폭이 좁아요. 궁극적으로는 돈을 모아서 나중에 제 이름으로 카페를 열어 직접 운영하고 싶어요. 그때는 마카롱도 직접 만들어 같이 팔 겁니다.”
커피 사고팔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돼
인터뷰를 마치고 낮 12시가 되자 손님들이 카페에 몰려들기 시작했는데 둘은 익숙하게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었다. 음료를 주문해놓고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물었다. 세균분석과에서 일하는 권승직 씨는 “근접성이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여기 바리스타분들의 손이 빠른 점도 참 좋다”며 “이틀에 한 번 정도는 꼭 들른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국립보건연구원 운영지원과 정희동 씨는 “무엇보다 커피 맛을 잘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의 커피 원두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공공기관이 연계해 펼치는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 사업인 ‘아이 갓 에브리씽(I got everything)’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밸런스 브라운’으로 브라질 세하도, 콜롬비아 수프레모,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등이 배합된 고품질이다.
장애인의 취업 활동은 비장애인과 구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카페라는 공간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커피를 사고팔며 자연스럽게 섞여 일상을 나누면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장애인의 취업 활동은 장애인에게는 소득 향상의 기회가 되고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된다는 의미도 크다.
채용 확대 관건은 부처의 채용 의지에 달려
최경숙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코로나19 방역에 온 힘을 기울이는 상황에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증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한 질병관리청의 노력에 감사하다”며 “장애인 공무직 채용 확대의 관건은 직무 선정의 문제가 아니라 채용 형태, 즉 정부부처의 공무직 채용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직무에 따라 장애인 특별채용이 가능한 영역을 찾을 수 있고 직무가 선정되면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장애인을 채용하면 되는 것”이라며 “질병관리청의 바리스타 직무도 그쪽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왔고 직무를 선정하면서 장애인을 채용한 경우다. 채용 직무 선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곽윤섭 기자
장애인고용 가상세계에서 만나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공단 전용 3차원 가상세계(메타버스) 서비스인 ‘장고버스’를 4월 11일 공개했다. 장고버스는 장애인고용공단의 줄임말 ‘장고’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명칭으로 장애인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고용 서비스를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크롬브라우저 및 모바일을 통해 게더타운 맵(장고버스 바로가기)에 접속하면 된다.
장애인고용공단은 2021년에도 메타버스를 통해 장애인 대학생을 위한 채용설명회 ‘투게더 잡페어(Together JobFair)’를 구현했는데 25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장고버스에서는 모두가 자신만의 독특한 아바타를 직접 꾸밀 수 있고 채팅 기능을 활용해 아바타 간 대화도 가능하다. 공단 본관을 통해 입장하면 다채롭게 꾸며진 장애인고용 홍보관, 보조공학기기관, 장애인인식개선관 등을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주제별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4월 14일 열린 ‘2022 장애인고용촉진대회’를 메타버스로 중계해 장애인들은 직접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이 실시간으로 참여가 가능했다. 앞으로 장애인고용공단은 메타버스 내에서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펼치는 한편 양방향 장애 인식 개선교육의 장으로 활용해나갈 계획이다.
김현종 장애인고용공단 소통협력실장은 “장애인고용공단은 산업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해 고객들에게 다양한 플랫폼으로 다가가고자 한다”며 “장애인고용촉진대회를 시작으로 양방향 소통을 통해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