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영, ‘바리스타’, 나무에 아크릴 파스텔, 28.5cm(높이), 2013
▶라선영, ‘여고생들’, 나무에 아크릴 채색, 26cm(높이), 2014
“우주보다 인간이 더 경이롭다”고 말한 과학자가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 김상욱이다. 그는 <떨림과 울림>이라는 책에서 우주는 떨림이고 인간은 울림이라고 했다. 우주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고 인간은 그 떨림에 울림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며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라고 정의 내렸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물리학자가 탐구하는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기 때문이다. 원자물리학이나 양자역학은 분자나 원자처럼 아주 미세한 물질을 연구한다. 반대로 천체물리학은 별과 은하, 블랙홀 등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멀고 넓은 거시세계를 관측한다. 이처럼 물리학자가 탐구하는 세계는 현미경이나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세계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에겐 비현실적으로 여겨진다.
▶라선영, ‘야구르트 아줌마’, 나무에 아크릴 채색, 26.5cm(높이), 2014
과학자처럼 사람을 연구하는 조각가
이에 비하면 미술은 상대적으로 쉽고 현실에 가깝다. 원근법으로 그려진 풍경화나 사실적으로 재현된 조각 작품이 그렇다. 그래서 과학-물리학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추상미술은 상황이 다르다. 미술 문외한이 맞닥뜨린 추상미술은 난해하기만 하다. 해독 불가능한 요상한 물건처럼 보인다. 그러니 어쩌면 그들에겐 과학 전문서적에 나오는 수학 공식이나 원자·분자 구조모형이 더 친근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추상미술에 대한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멋진 구상 조각을 소개한다. 나무를 깎아 사람형상을 만드는 조각가 라선영 작품이다.
과학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법칙을 연구한다. 이와 달리 조각가 라선영은 우리 눈앞에 직접 보이는 세상을 탐구한다. 작품 주제는 ‘사람’이다. 까마득한 과거부터 현재, 나아가 미래까지 예술가에게 영원한 테마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형상화한 대리석 조각도 사람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 기독교 종교화나 불교 불상도 마찬가지다. 시대나 종교, 환경과 상황에 따라 인간형상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여성 조각가 라선영이 만든 작품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아직 30대, 젊은 작가답게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실행해 옮기고 있다. ‘70억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도전은 무모해 보인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 70억 명의 모습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허황된 꿈이다.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이는 엉뚱함이 예술가에게 부여된 특권일지도 모른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유학한 라선영은 영국왕립미술대학 조소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14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전시 제목은 ‘7 BP : 서울, 사람’. 짐작대로, ‘7 BP’는 ‘7 Billion Project’, 즉 70억(명) 프로젝트를 뜻한다. 프로젝트는 런던에서 시작했다. 여왕, 근위병, 축구선수, 심판, 경찰, 웨이터, 배낭 여행객 등 런던에서 보고 만났던 다양한 부류의 인물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라선영, ‘일인시위’, ‘경찰’, 나무에 아크릴 채색, 28cm(높이), 2014
▶라선영, ‘차도르 여인 : 까르띠에’, 나무에 아크릴 채색, 26cm(높이), 2014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의 조화
프로젝트는 귀국 후 서울 사람으로 이어졌다. 여고생들, 퀵서비스 아저씨, 야쿠르트 아줌마, 철가방 배달원, 일인시위 하는 사람, 거울보는 여자, 군인, 예비군, 스님, 엄마와 아들 등 남녀노소, 각양각색, 천차만별, 복잡다단하다.
밤하늘 별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과 표정을 순간포착 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생생한 현장이다. 조각 높이는 대략 25~30cm 내외, 콜라병이나 맥주병 정도 크기다. 입방체 원목 위에 간단히 스케치하고 전동공구를 이용해 조금씩 깎아서 모양을 다듬는다. 보잘것없던 나무토막이 유의미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이렇게 만든 사람형상 위에 파스텔이나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해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이때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 의도적으로 인물 표정을 생략했지만 신체 실루엣만으로도 특정 인물의 특징이 잘 살아난다. 무의식적으로 개입되는 관객의 상상력이 한몫한다. 그래서 더 진짜처럼 인식된다.
라선영의 조각은 하나하나 독립된 오브제(대상)로서도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두 개 이상 모여 있을 때 더 매력적이다. 서로 상관없을 것 같은 조각이 무작위로 짝을 이룰 때 예상치 못한 관계와 상황이 연출된다. 순수조각에서 설치미술로 확장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우연한 만남이 운명적인 인연으로 이어지는 이치와 같다. 인간은 개별적이면서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개인과 집단, 부분과 전체의 조화야말로 사람 사는 일이다. 라선영이 도전하는 프로젝트도 그렇다. 작은 인물 조각은 독립된 소우주인 동시에 전체가 하나인 작품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