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tvN
“비극을 희극으로 바꾸면 마음이 나아지거든.”
“널 보니 웃게 된다. 넌 옆에서 봐도 희극이거든.”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인 나희도(김태리 분)와 백이진(남주혁 분)이 극 중에서 나누는 대화다. 그들의 대화처럼 이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에게 재미와 위로를 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방영되면서 안방극장 시청자를 화면 앞으로 불러 모은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힘들었던 1998년. 당시 18세 여고생 나희도와 22세 청년 백이진이 주인공이다. 지금은 40대가 됐을 이들의 청춘 기록은 아프지만 아름답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부도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백이진과 국가대표 펜싱선수를 꿈꾸는 펜싱부 여고생 나희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청춘들은 PC통신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면서 소통하고 만화 <풀하우스>를 빌리러 대여점으로 뛰어가는가 하면 외환위기를 맞은 시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금모으기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JTBC 드라마 <서른, 아홉>│JTBC
‘스물다섯 스물하나’, ‘서른, 아홉’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의 매력은 신예 작가가 펼쳐 보이는 톡톡 튀는 대사에 있다. 권도은 작가는 어디를 봐도 미운 구석이 없는 등장인물을 곳곳에 배치해 드라마의 재미와 감동을 살린다. 외환위기로 펜싱부 해체를 통보하는 지도교사가 “시대가 너희들을 버렸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펜싱을 그만둔 학생 때문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게 된 나희도에게 “시대가 너를 살렸다”고 말한다. 재벌급 회사의 장남으로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던 백이진은 아버지의 부도로 어려움에 부닥치지만 비뚤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현실을 헤쳐나간다.
나희도 역을 맡은 배우 김태리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고생 역할을 전혀 낯설지 않게 소화한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긍정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캐릭터로 극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어느 시대나 청춘의 삶은 녹록지 않지만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드라마다.
조연들의 활약도 눈길을 끈다. 건들거리는 말투를 가진 냉소적인 펜싱부 코치 양찬미(김혜은 분)는 가능성 있는 제자를 발굴해 권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조련해내는 능력의 소유자다. 말투 하나, 동작 하나가 극의 재미를 살리는 양념 역할을 한다. 이런 요소가 어우러져 극 초반부터 10%의 시청률을 넘나드는 드라마로 자리 잡았다.
JTBC 수목드라마 <서른, 아홉>은 20년 넘게 만남을 이어온 세 친구 차미조(손예진 분), 정찬영(전미도 분), 장주희(김지현 분)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다. 어찌 보면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주인공들이 나이가 들어 마흔을 앞둔 당대의 이야기다.
세 친구는 세상의 풍파를 적당히 견뎠기에 이제 가슴 떨리는 사랑 따위는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면서 살아간다. 많은 시간을 함께했기에 서로 감출 것도 뽐낼 이유도 없다. 하지만 갑자기 이들 앞에 죽음이란 숙제가 던져진다. 정찬영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의사 친구 차미조는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겪는다. 풋풋하고 아름다운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끈끈한 우정과 치고 빠지는 묘미가 있는 심리 게임을 엿볼 수 있는 로맨스 드라마다.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 사내연애 잔혹사 편>│JTBC
직장 로맨스 ‘기상청 사람들’
JTBC 주말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 사내연애 잔혹사 편>은 직장 로맨스를 내세운 드라마다.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최초로 기상청을 배경으로 한다. 게다가 로코(로맨틱 코메디) 퀸으로 불리는 박민영(진하경 역)과 대세 배우 송강(이시우 역)이 만났다. 외형적으로는 직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연상연하의 로맨스지만 그 무대를 기상청으로 옮겨놓은 건 탁월한 선택이다.
잘해야 본전이고 욕먹는 데 익숙한 기상청 예보관들의 애환은 우리 삶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폭우가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한가 하면 황사로 앞이 안 보일 때도 있다. 농민이나 어민에게는 날씨 예보처럼 중요한 게 없다. 사내 연애를 하는 커플도 하루는 맑았다가 하루는 흐린 연애 기상도가 존재한다. 극 초반부터 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순항하는 건 뻔한 것을 극복한 영리한 장치 덕분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새봄을 앞두고 모처럼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들이 로맨스물이다.
, <오징어 게임>,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 2021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K-드라마는 획일적인 군대문화,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 사이비종교, 학교폭력 같은 사회문제를 다룬 드라마였다. 이런 사회성 짙은 드라마에 대한 반작용으로 로맨스물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그 속에 들어가면 여전히 안개 속인 우리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