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양새가 닭벼슬처럼 생긴 충남 태안반도는 산과 바다의 묘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어 이른바 ‘멀티 기행지’로 통하는 곳이다. 특히 너른 송림과 수백km에 이르는 해안선은 왕성한 산소 탱크에 다름없어 원기충전 여행지로 적극 추천할 만하다. 사진은 의항해변 화영섬으로 지는 낙조
태안반도 ‘서해랑길 69코스’
훌쩍 바람 쐬러 나서기 좋은 때다. 기꺼이 하루 품을 팔 수 있는 곳, 과연 어디가 좋을까? 싱그러운 봄기운을 물씬 받을 수 있는 데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 모양새가 닭벼슬처럼 생긴 충남 태안반도를 적극 추천한다. 태안은 산과 바다의 묘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어 이른바 ‘멀티 기행지’로 통하는 곳이다. 특히 너른 송림과 수백km에 이르는 해안선은 왕성한 산소 탱크에 다름없다.
바닷가 솔 숲길에 나서면 시원하고 서늘한 갯바람이 몸과 마음을 다 씻어주고 인근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복수초, 설강화, 풍년화, 삼지닥나무, 구근 아이리스 등 화사한 봄꽃의 향연이 한창이다. 그뿐인가. 태안의 별미 작은 실치회도 이맘때가 제철이다. 부드러운 실치회 한 젓가락이면 서해의 봄 미각을 통째로 맛볼 수가 있다.
마침 태안은 서해랑길 69코스(만리포~해경의항출장소)를 품고 있다. 한적한 태안반도의 포구를 잇는 걷기 여정으로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지는 해안길, 숲길이 번갈아 펼쳐진다.
서해랑길 중 3월의 봄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곳으로는 충남 태안반도를 꼽을 수 있다. 그중 만리포해변~의항출장소에 이르는 69코스는 호젓한 산길과 해변길이 적절히 교차한 데다 해변 경관도 빼어나 걸을수록 그 매력에 푹 젖어 들게 된다. 특히 도중에 만나는 천리포수목원은 요즘 다양한 봄꽃이 다투어 피어올라 상춘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만리포 해변방송실 앞을 출발해 해경의항출장소까지 삼십 여리 길(13.3km)을 느릿하게 걷자면 대자연이 발산하는 봄의 원기를 듬뿍 받을 수 있다.
▶천리포 수목원
서해안 서핑의 성지이자 낙조의 명소
만리포~천리포 가는 길
충남 태안반도에 깃들어 잇는 만리포는 우리나라 피서지의 원조 격으로 통하는 곳이다. 여행이 드물던 시절, 만리포는 너른 백사장에 깨끗한 바닷물로 동해안 못지않은 인기를 모았다. 이제는 서퍼들이 즐겨 찾는 서해안 서핑의 성지이자 낙조의 명소로 꼽힌다. 출발 전 만리포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살피자면 과연 그 풍광이 명성을 실감케 한다.
서해랑길 69코스의 출발점은 만리포 해변방송실이다. 상춘객들의 여유를 뒤로 하고 숲길로 들어선다. 천리포까지는 바다를 보며 즐기는 ‘솔숲 트레킹’ 코스다. 만리포에서 국사봉 소나무 숲길을 걸어 천리포 해변 까지 4km에 이르는 숲길은 비교적 무난하다. 2시간 남짓 걸리는 숲길은 바다를 끼고 이어져 조용한 산책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국사봉 오르는 군데군데 마치 한 무리의 병아리를 숲에 풀어 놓기라도 한 듯 노란 복수초가 만발해 봄기운을 더한다. 3월 하순이면 솔숲길 곳곳에 연분홍 진달래도 피어오를 참이다.
국사봉 정상(121m)에 서면 눈앞에는 웅크린 암탉 모양의 닭섬이, 오른쪽은 천리포, 왼편으로는 만리포 백사장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숲엔 간혹 다른 수종도 섞여 있지만 소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비록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여느 숲길과는 또 다른 기품이 있다. 특히 솔잎이 푹신한 카페트를 이뤄 걷는 느낌 또한 부드럽다. 비록 평일이라고는 하지만 트레킹 도중 서너 사람과 마주쳤을 뿐 그야말로 비대면 여정을 꾸리기에 제격이다. 산길 아래가 천리포해수욕장 뒤쪽, 천리포수목원 생태교육관 앞이다.
▶만리포해변의 가족
해송 숲길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천리포수목원
서해랑길 트레킹 도중 희귀 수목 감상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부러울 게 없는 나들이를 즐기는 셈이다. 충남 태안에는 세계적 명품수목원이 있다. 소원면 의항리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이다. ‘희귀식물의 보고’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이즈음 복수초, 설강화, 풍년화, 삼지닥나무, 구근 아이리스 등 봄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3월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절이지만 천리포수목원을 찾으면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맛볼 수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 수목원에 들어서면 여느 수목원과는 다른 자연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특히 입구 근처 해송 숲길에서는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목원은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뉜다. 본원, 닭섬, 사구지역 등 구역이 흩어져 있는데 각 지역 마다 미세하게나마 환경이 달라 난대성 상록활엽수부터 아한대성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식재돼 있다. 그 중에 목련만도 400여 종류를 보유하고 있다.
초봄에는 설강화, 풍년화 등이 자태를 뽐내지만 4월에 가까워지면 노란수선화와 사순절장미, 중국팥나무, 목련꽃 등이 만발한다. 수목원 안에는 한옥 등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예약 숙박도 가능하다.
한편 천리포수목원은 미국에서 귀화한 민병갈씨(1921~ 2002)가 1962년 6000여 평의 소금기 섞인 박토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현재 총 18만 평 규모(일반인에게는 2만 평 공개)의 자연친화적인 생태수목원을 조성해두었다. 이곳에는 멸종 보호종인 하얀개나리 등 총 1만 6531분류군에 이르는 다양한 수종을 보유하고 있다.
▶서해랑길 69코스 숲길
▶69코스 종점. 개목항 전경
옛정취 고스란히 묻어나는 목가적 풍광
천리포~의항출장소
천리포수목원을 뒤로 하고 서해랑길로 접어든다. 옛정취가 묻어나는 좁다란 길이 숲으로 이어지는데 백리포전망대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도 운치 있는 비포장 숲길이다. 서해랑 69코스와는 살짝 비켜나지만 백리포 해안 구경을 위해 잠깐 짬을 낼만한 여정이다. 숲길 끝에 만나는 백리포는 옴팡진 숲에 싸인 해변이 무슨 아지트와도 같은 느낌이다. 봄철 서해바다에는 운무가 내려앉는다. 백리포 한쪽엔 바다와 만나는 중첩된 산 능선이 그리메(그림자)를 그리며 한 폭의 동양화를 담아낸다.
다시 길을 거슬러 올라와 망산 고개로 향한다. 백리포전망대를 지나 숲길을 더 걷다 보면 수망산과 의항해수욕장을 향하는 갈림길이다. 의항2리 표지석입구에서 우측 산길로 접어든다.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망산 고개에 도착하면 탁 트인 바다와 함께 멀리 태안 화력발전소 굴뚝 연기가 보인다.
의항해변은 서해랑길 69코스 중 가장 목가적인 풍광을 자아내는 곳이다. 요즘엔 봄 햇살 내리쬐는 해변에서 봄도다리 낚시꾼들이 한참 손맛을 보는 시기다. 백사장을 산책하거나 모래성을 쌓는 가족들의 망중한이 여유롭게 펼쳐진다. 해안선 끝자락에 소나무를 이고 있는 아름다운 돌섬이 자리하고 있다. 화영섬(또랑섬)이다.
의항해수욕장에서 구름포해변, 태배전망대로 향하는 길 또한 요즘 보기 드문 호젓한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표지판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이태백의 오언시가 적힌 조형물이 나온다. 이태백이 이곳 주변의 경치에 반해서 바위에 시구를 적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산길을 더 오르면 태배전망대다. 태안반도 일원을 굽어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다. 하산 코스를 따라 해변길전망대, 해상낚시 공원 등을 지나면 서해랑길 69코스 종점인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의항출장소에 도착한다. 포구는 자그맣다. 네댓 개의 식당과 출장소, 낚시가게가 포구를 마주하고 있다. 서해랑길 안내표지판이 서 있는 개목항 선착장 멀리 신두리 해변이 펼쳐진다. 여유롭게 한나절 품을 잡으면 흡족한 여정을 꾸릴 수 있다.
여행메모
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고속버스터미널~태안(06:30~19:30, 약 1시간 간격 운행, 2시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태안(06:50~20:20, 약 30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 2시간 소요)
•시외(시내)버스= 태안공용버스터미널~만리포버스정류소·만리포해수욕장(시외버스: 30분소요, 2200원/시내버스: 202번, 211번, 212번, 212번, 27~43분소요, 1700원)태안터미널(1688-2110)
승용차
•만리포 서해안고속도로~서산IC~32번국도~서산, 태안을 지나 만리포 방면~만리포해수욕장
•의항~만리포 시내버스(943, 944) 18분~23분소요<07:07, 09:02, 11:42, 14:22, 16:12, 17:22, 17:32>
서해랑길 69코스(13.3 km)
만리포해변 방송실~국사봉~~천리포 수목원~천리포해변~백리포해변 전망대~망산고개~수망산~의항해변~구름포해변 입구~태배 전망대~해변전망대~의항2리 종점(의항출장소)
▶실치회
▶꽃게장
뭘 먹을까?
태안은 사철 별미가 풍성한 곳이다. 꽃게, 갑오징어, 대하, 물텀벙이, 우럭, 도미, 광어, 간재미 등 맛난 것들이 즐비하다. 이맘때면 야들야들한 도다리가 맛나고, 통통한 주꾸미도 봄별미에 속한다. 69코스를 살짝 벗어나 태안 마검포항을 찾으면 갯내음이 듬뿍 담긴 봄철 미식거리 실치를 맛볼 수 있다. 실치는 말 그대로 실처럼 가늘고 작은 물고기다. 봄철 실치는 길이가 2~3cm 남짓, 혀에 닿자마자 특별한 질감 없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실치는 나는 곳도 서해안 태안, 당진, 서천 정도로 한정돼 있는데다 횟감으로 맛볼 수 있는 때도 짧다. 태안에서는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마검포항 인근 곰섬 앞바다에서 멸치잡이 그물인 낭장망으로 잡아 올린다. 하지만 그물에 걸리면 곧 죽어버리는 탓에 어장에서 가까운 산지 포구가 아니면 횟감으로 즐기기가 힘들다. 마검포에서는 선창횟집이 맛집으로 통한다. 실치회무침, 실치시금치국, 실치전, 뱅어포 등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실치회코스요리(1인 기준 1만 5000원)를 상에 올린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한반도관광 활성화,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