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 21일(현지시간) 제75회 유엔총회에서 화상으로 연설하는 모습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 회의장에서 상영되고 있다.│한겨레
글로벌 현안 대응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9월 21일 유엔(UN)총회 화상 기조연설에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이하 협력체)를 제안했다. 신종 감염병 등 미래의 위협에 초국경적 공동 대응 역량을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석 달 뒤인 12월 29일 우리나라 주도로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의 외교·보건 당국자가 참석한 화상 회의에서 협력체가 출범했다.
장영재 외교부 동북아협력과장은 “국제협력체가 제안 3개월 만에 출범한다는 건 상당히 빠른 편”이라며 “그만큼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역내 협력 공동 대응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참여국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협력체에 참여한 6개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인적 교류가 활발하다. 2019년 우리나라 입국자 약 4700만 명 가운데 다른 참여국에서 입국한 내·외국인이 23%를 차지했다.
▶2021년 8월 17일 몽골 보건부에서 열린 코로나19 신속항원 진단키트 전달식에서 엥흐볼드 몽골 보건부 장관(오른쪽)과 이여홍 주 몽골대사가 서명하고 있다.│외교부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제안 석 달만 출범
협력체는 지금까지 5차례 회의를 통해 참석 단위를 국장급으로 격상했고 세 가지 핵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방역 물품을 공동으로 비축해 필요한 국가에 지원 ▲코로나19 대응인력 공동 교육훈련을 통해 경험과 노하우 공유 ▲국가 간 필수 인력·물자 이동을 지원하는 신속통로 절차 마련 등이다.
이 가운데 ‘의료·방역 물품 공동 비축제’는 우리가 제안한 실질 협력사업이다. 장영재 과장은 “참여국이 치료제나 백신 등 지원할 수 있는 물품을 미리 약정하고 필요한 나라가 약정된 물품을 요청하면 물품을 보내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1년 8월 외교부는 ‘의료·방역 물품 공동 비축제’ 시범 사업으로 몽골에 30만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신속항원 진단키트를 지원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 강력한 국경 봉쇄를 통해 1년 동안 환자가 없었던 몽골은 2020년 11월 환자가 처음 발생한 뒤 크게 늘어 3월 현재 90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가 34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4명 가운데 1명이 감염된 셈이다.
송병구 단국대 몽골학과 교수는 “몽골은 코로나19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숙련된 의료진이 매우 부족한 데다 최근 의료계 종사자들의 파업으로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특히 오미크론 등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전문 인력이 부족해 우리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인력 공동훈련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월 20일 경북 안동시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 생산 시설을 돌아보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WHO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선정
WHO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국가 간 백신 불평등 문제가 심화하자 백신 자급이 어려운 중·저소득국의 바이오 역량을 키우기 위해 ‘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이하 WHO 인력양성 허브)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WHO 인력양성 허브는 중·저소득국의 백신 자급화를 위해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중심 기관이다.
WHO는 2월 23일 우리나라를 WHO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의 백신 생산 능력, 교육 시설 인프라 등을 고려해 우리나라를 바이오 인력양성의 중심지로 선정한 것이다. 3월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최종문 외교부 2차관과 만난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은 “한국의 백신·바이오 생산 능력과 교육 인프라,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주요 선정 이유”라고 설명한 뒤 “앞으로 WHO 인력양성 허브 운영을 위해 양쪽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문재인정부는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세계 백신 허브로 만든다는 ‘글로벌 백신 허브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SK바이오사이언스 등 우리의 바이오 기업들은 전 세계 2위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과정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노바백스, 모더나 백신 등 5종의 백신을 위탁 생산한 경험이 있으며 국산 백신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선구매공약매커니즘(COVAX AMC)’에 2021년과 2022년 각 1억 달러씩 공여하는 등 국제사회의 백신에 대한 공평한 접근에도 기여하고 있다. 몽골 정부는 코백스를 통해 우리나라,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백신을 공급받고 있다.
2021년 7월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신공항 개항을 앞두고는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 코로나19에 대비해 공항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유진 질병관리청 국제협력담당관은 “참여국의 경험을 공유하면 서로의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감염병 해외 유입은 공항과 항만으로만 진행되고 육로를 통한 유입은 거의 없다. 통일 한국을 대비함에 있어 몽골과 중국, 러시아, 미국의 경험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9월 8일 코백스(COVAX)를 통해 몽골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한 백신이 옮겨지고 있다.│몽골 보건부 누리집
방역·보건 능동외교로 국제협력 선도
문재인정부는 방역, 보건처럼 경쟁력 있는 분야를 적극 발굴해 국제협력을 선도했다. 여승배 외교부 차관보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의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능동외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협력체는 우리 주도로 짧은 기간에 주변 4국을 포함해 역내국의 적극적 공감과 참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능동외교의 모범 사례”로 꼽았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도 2021년 8월 ‘한반도 국제평화포럼’에 보낸 특별 메시지에서 “보건이 없으면 평화도 없고 평화가 없으면 보건도 없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유엔 총회 때 제안한 협력체를 환영한다”며 큰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는 “역사는 우리에게 보건은 이념적 분열을 넘어 공동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간 손을 잡을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이라고 가르쳐 준다”며 “우리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신뢰와 평화를 구축하고 공동 리스크에 대한 공동 해결책을 개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5월 3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정상토론세션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백신 허브 위한 정부 노력의 결실”
문 대통령은 2월 24일 누리소통망(SNS)에 올린 글에서 “WHO 인력양성 허브 선정은 우리나라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역량과 교육 인프라의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결과”라며 “백신 허브 국가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봐 기쁘다”고 밝혔다. 또한 “우리 정부가 한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등 여러 국가·기구와 백신 협력을 강화하며 세계보건위기 극복에 주도적으로 기여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라며 “이제 우리나라는 개도국의 백신 역량 증대를 위한 교육 훈련과 전문인력 양성의 허브 국가가 됐다. 우리 경험과 노하우를 국제사회와 적극 공유하고 백신 자급화와 백신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겠다”고 적었다.
정부는 이번 지정에 따라 인천 송도와 충북 오송에 두 곳의 바이오 생산 공정 공공실습장을 확충하고 추가로 교육장 두 곳과 전담 훈련시설도 열 계획이다. 7월부터 실제 교육에 들어가 글로벌 바이오 훈련생 370명을 양성한다. 이 가운데 310명은 백신·바이오의약품 개발과 생산에 대한 이론교육과 글로벌 의약품 품질관리 기준 기본교육을 받게 된다. 나머지 60명은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 출신 교육생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지원을 받아 바이오생산공정 실습교육을 받는다. 전체 인원과 별도로 우리나라 교육생 150명도 교육 대상에 포함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선정은) 우리 청년에게 세계 수준의 교육과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 바이오 기업의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여 수출과 백신 생산 허브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목표로 세운 세계 5대 백신 강국, 바이오 선도국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기대했다.
기후변화, 글로벌 공급망 등 국제 현안 주도
문재인정부는 보건·백신 협력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안정 등 국제사회의 현안 대응을 주도해 책임 있는 국가로서 역할을 강화했다.
2021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 분야 다자정상회의인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의 녹색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참여하는 ‘서울선언문’이 채택됐다. 2021년 11월 영국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에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 제출, 글로벌 메탄서약 가입 등 후속조치를 추진해 2050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등 적극적 기후외교를 통해 기후대응 선도국으로서 위상을 높였다.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정상외교를 계기로 미국, 호주 등과 협력을 긴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2021년 5월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개최를 계기로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합의했으며 2021년 12월 호주 방문을 계기로 한·호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주요국과 공급망 협력 역시 강화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