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2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송년통일음악회 평양민족음악단 환영만찬에서 이어령 문화부 장관과 성동춘 평양민족음악단 단장이 건배하고 있다. | 한겨레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이 2월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3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문학평론과 기호학 연구서, 소설은 물론 다양한 문화론저와 에세이를 발표했다.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괄기획을 맡아 굴렁쇠 소년 퍼포먼스 같은 행사를 선보여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195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우상의 파괴’라는 제목의 평론으로 등단한 고인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1972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을 창간해 1985년까지 주간을 맡았으며 1977년에는 이상문학상을 제정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만들었다.
문 대통령, 빈소 찾아 조문… “우리 문화의 발굴자”
고인은 장관 퇴임 뒤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 대통령자문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이육사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는 한편 연구서 <공간의 기호학>과 <하이쿠의 시학>,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신앙 고백서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을 펴냈다.
그는 2021년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과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교수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빈소를 조문하고 유족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 드린다.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선생님 책을 많이 보았고 감화도 많이 받았다. 우리나라의 큰 스승이신데 황망하게 가셔서 안타깝다”라며 위로를 전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한다”며 추모의 글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문화의 발굴자이고 전통을 현실과 접목하여 새롭게 피워낸 선구자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정부가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것이 선생님의 큰 공로를 기리는 일이 됐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 그것은 모양은 달라도 모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고 했다.
▶3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영결식 엄수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3월 2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엄수했다. 문체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도서관 발전 정책 기반 마련 등을 통해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장례를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거행했다. 특히 문인으로서 평생을 집필활동에 몰두하고 문화부 장관 재임 시 도서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고인을 기려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 등을 진행했다.
황희 장관은 조사를 통해 “고 이어령 장관님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 주셨다.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어령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라고 추모했다.
조사와 추도사 이후에는 고 이어령 전 장관의 생전 영상을 상영했다. 영상에는 고인이 이룬 방대한 업적을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라”와 같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당부와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와 같은 고인이 별세하기 전 남긴 말을 담았다.
이어 헌화와 분향을 진행하고 고 이어령 전 장관이 설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추모공연으로 영결식을 마무리했다. 고인을 보내는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첼로 앙상블로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엘레지(Élégie)’를 연주하고 국악 공연으로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창(弔唱) ‘이 땅의 흙을 빚어 문화의 도자기를 만드신 분이여’를 연주했다.
한편, 고인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는 중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날 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설치된 ‘광화벽화’에 고인의 생전 영상과 추모 문구를 표출해 애도의 뜻을 더했다. 문체부는 혁신적인 문화행정가였던 고 이어령 전 장관을 기억하고 문화 행정에 대한 고인의 뜻과 열정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