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의 작품 중에 <수인(囚人)>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2017년에 발간됐고 작가의 자서전 같은 내용이다. 오랜 시간을 교도소에서 보낸 그이기에 감옥에 얽힌 일화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책 제목이다. 가둘 수, 사람 인! 입 구(口)자 안에 사람 인(人)자가 들어있다. 사방이 막힌 방 안에 갇혀있는 사람 모양이다. 뜻 그대로 감옥에 갇힌 사람을 말한다.
소설가 조정래도 일찍이 자신을 스스로 ‘글 감옥’에 가두었노라 밝힌 바 있다. 프랑스 대문호인 <레미제라블> 저자 빅토르 위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몸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오후가 돼서야 하인에게 옷을 가져오라 시켰다고 한다. 작업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스스로 다잡기 위해서였단다.
글 쓰는 작가는 최소한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반면 화가는 뭔가 특별한 재료와 공간이 필요하다.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사건’에 연루돼 투옥됐던 고암 이응노(1904~1989) 일화가 좋은 예다. 그림 그릴 변변한 재료가 없는 감옥에서 이응노가 사용한 재료는 밥. 먹으라고 준 밥을 찰흙처럼 주물러 반죽해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담배 포장지로 쓰인 은박 종이 위에 뾰족한 철사로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銀紙畵)’도 비슷한 경우다.
화가의 작업실을 그리는 화가
이처럼 화가는 특정 물질로 된 재료를 다룬다. 소설가가 원고지에 쓴 자필 원고, 작곡가가 음표를 표기한 오선지는 그 자체가 작품이 아니다. 물론 작가의 혼이 담긴 중요한 자료이긴 하다. 소설 원고는 책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책’ 자체가 작품은 아니다. 독자가 그 내용을 읽어야만 비로소 작품이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 작곡가가 오선지 위에 표기한 음표나 제작된 음반이 완성된 작품은 아니다. 실제로 연주되고 음반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작품으로 완성된다.
반면 미술은 작가가 사용하는 ‘물질’, 즉 재료 그 자체가 완성된 작품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미술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된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최근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나 디지털로 존재하는 비(非)물질 요소를 작품으로 인정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예술가보다도 미술가, 특히 화가에겐 작업실이 중요하다. 예컨대 소설가나 시인, 작곡가는 산책하면서도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 반면 화가들은 그럴 수 없다. 설령 산책하며 구상했더라도 작품은 결국 작업실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팝 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자기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 즉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작업실은 화가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창조의 산실’이다.
남경민은 화가의 ‘작업실’을 그리는 작가다. 1969년 태어났고 덕성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현직 화가가 그린 다른 화가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남경민이 재현한 화가의 작업실은 진짜가 아니다. 실재가 아닌 허구, 철저히 상상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그의 그림이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그림에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 방이 어떤 화가 작업실인지 알 수 있다. 이젤(그림을 그릴 때 그림판을 놓는 틀) 위에 놓인 캔버스, 벽에 걸린 액자, 탁자 위 소품, 창밖 풍경 등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단서를 종합하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선배 화가에 대한 존경과 경의
세잔느, 고흐, 모네, 마그리트, 몬드리안…. 초기엔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의 아틀리에를 주로 그렸다. 그러다 신사임당,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같은 우리 옛 화가들 화방으로 관심이 확장됐다. 그동안 서양미술에 치우쳤던 과거 자신 모습을 깨닫고 반성하면서부터 전통과 우리 옛 그림에 새롭게 눈을 떴다. 서양의 화가들에 비해 우리 옛 화가의 작업실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더 자유롭게 상상하며 그들의 화방을 그릴 수 있었다. 남경민의 작업실 그림은 선배 화가에 대한 오마주(hommage, 경의)다.
최근작 <윤동주의 방> 시리즈도 이런 맥락에서 제작됐다. 이번엔 화가가 아닌 시인이다. <윤동주의 방 1>은 낮, <윤동주의 방 2>는 밤의 풍경을 상징한다. 각 그림의 배경은 만주 용정에 있던 윤동주 생가와 일본 유학 시절 하숙방이다. 상상으로 구현한 시인의 방에서 식민지 시절, 섬세한 감수성으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었던 젊은 시인의 비극적 일생이 헤아려진다.
남경민 그림엔 수수께끼처럼 비밀스러운 장치가 곳곳에 감춰져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창문’이다. 그림 속 창문을 통해 안과 밖, 사실과 허구의 세계가 교차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감을 느끼게도 한다. 창문과 더불어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거울’과 ‘나비’다. <윤동주의 방>에서도 거울과 나비가 중요하다. 거울에 비친 형상은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는 암호 같은 장치다. 마찬가지로 나비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오가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호접몽! 남경민 그림은 하나씩 꼼꼼히 뜯어 볼수록 신비롭기만 하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