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진잠중학교 윤여경 교사가 게임을 활용한 활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윤여경
정부·사회혁신 및 적극행정 등 문재인정부의 주요 제도혁신 성과를 수혜 현장과 수혜자의 말을 통해 소개합니다. 이번 호는 10년간 시행된 강제적 게임셧다운제 폐지로 게임산업 발전 계기와 청소년의 자기조절능력 향상 기틀을 마련한 제도혁신 사례입니다. <편집자 주>
게임 셧다운제 폐지 게임시간 선택제 도입
내 아이에게 게임을 시켜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는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라면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요즘 아이들은 기성세대와 다르게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다.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 태블릿을 통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공부도 한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하고 친구 역시 인터넷 공간에서 사귄다.
물론 게임에 빠져들면 삶이 피폐해질 정도로 중독되는 경우도 있어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2011년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대면서 정부는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해 만 16세 미만 청소년에 한해 심야시간대(0~6시) 게임 접속을 차단시켰다. 하지만 이 같은 법 개정은 국내 게임산업 위축을 가져오고 디지털 환경이 변했다는 이유로 제도개선 요구가 잇따랐다.
이에 정부는 강제적인 게임 셧다운제(중단제)를 폐지하고 자율적으로 게임 시간을 선택하는 ‘게임시간선택제’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게임 셧다운제 폐지와 게임시간 선택제 활성화에 대해 일선 교사와 청소년을 키우는 학부모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게임시간 선택제 환영”
대전에 위치한 진잠중학교 윤여경(50) 교사는 오랜 기간 중학생을 가르친 교사이자 중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다. 젊은 시절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즐겼던 터라 지금도 자녀와 함께 게임을 할 정도로 개방적인 성격이고 덕분에 청소년의 게임문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현재 윤 교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게임교사연구회’에서 게임 부작용 개선 방안을 고민하면서 게임을 수업에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하고 있다.
윤 교사는 2022년 1월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 폐지와 게임 시간 제도에 대한 시간선택제 일원화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윤 교사는 “강제 게임 셧다운제는 분명히 한계가 있고 지속될 수 없는 정책이다. 이 때문에 게임시간 선택제를 활성화하는 건 좋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교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은 학생의 권리가 강조되는 시대이고 그걸 존중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학부모, 교사, 학생이 다 함께 부작용을 고민하고 풀어나간다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되면 게임에 빠지는 학생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의견 역시 동의한다. 그렇지만 게임셧다운제를 시행하고 있어도 밤새워 게임하는 청소년은 어떻게든 한다는 게 더 문제다.
“아침에 학생들을 살펴보면 잠을 못 자고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은 새벽이 게임하기 좋은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밤에는 게임 못 할 텐데 어떻게 했니?’라고 물어보면 다른 사람의 아이디를 빌려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아이들을 보호하기 더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윤 교사가 우려한 건 학생들이 사이버범죄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에는 중학생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대포폰’(도용한 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을 거래하는 일도 적지 않다. 따라서 단순하게 시간을 통제하는 방법으로는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힘들다는 것.
윤 교사는 “세계가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었고 이(e)스포츠, 게임산업의 발전은 시대적인 흐름인데 일방적인 통제 방식보다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방식이 더 좋을 것 같다”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발전적인 방향을 찾고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 전환 필요
정부는 게임 셧다운제 폐지 이후 게임 시간 제도에 대해 2012년부터 시행하던 시간선택제를 일원화했다. 윤 교사 역시 학생과 학부모가 주체적으로 게임 시간을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질 수 있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학부모는 아이가 통제를 못 하고 게임에 빠질 거라고 걱정하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면 스스로도 게임을 많이 하면 걱정합니다. 따라서 부모와 함께 시간을 정해놓고 결정한 뒤 그 부분에 대해 책임지고 스스로 통제하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걸 통해 정부와 게임 회사가 데이터를 쌓는다면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 필요한 상담과 교육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윤 교사는 게임시간 선택제의 적극적인 활용을 위해 가정과 학교에서 좀 더 적극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인공지능(AI), 메타버스, 자율주행 등 디지털 환경이 사회적으로 구축될 예정이라 게임 역시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것.
“부모가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으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놀이를 찾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교사 역시 게임의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 개선 방법을 공개적으로 가르쳐야 해요. 청소년은 부모보다 교사의 말을 더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기성세대가 게임의 긍정적인 면을 인식하고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 청소년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한 PC방에서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한겨레
“게임시간 선택제 통해 자기조절능력 배우는 게 중요”
서울 동작구에서 중1 아들을 키우는 주부 오경아(44) 씨는 요즘 아이의 게임 시간 문제로 고민이 많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컴퓨터보다 휴대전화로 게임을 했다. 따라서 그동안 이뤄진 정부의 게임 셧다운제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제 아들은 주로 휴대전화로 게임하기 때문에 ‘패밀리 링크’라는 자녀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 시간을 제한하고 있어요. 패밀리 링크는 성인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도 있고 구글스토어에서 콘텐츠 구매를 제한할 수도 있으며 아이가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시간제한, 취침 시간과 특정 앱의 사용 시간을 설정할 수 있어요. 이런 면에서는 정부가 시행하는 게임시간 선택제와 비슷한 것 같아요.”
오 씨는 “그동안 휴대전화로 이용하던 패밀리 링크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와 게임 시간을 정했기에 앞으로 게임시간선택제 역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자기조절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게임은 더 이상 어른이 하지 말라고 할 부분이 아니에요. 친구들과 만나서 게임을 소재로 대화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죠. 게임시간 선택제를 통해 부모와 상의해 아이가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해요.”
일부 중·고등학교 학부모는 “아이 스스로 통제 능력이 부족하다”, “게임 셧다운제 폐지는 너무 이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에 오 씨는 학교에서 게임의 부정적인 면 외에 긍정적인 면에 대해 강의해주길 바랐다.
“부모가 게임을 무서워하는 건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임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고민해보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게 중요해요. 저희 집은 아빠와 아들이 게임을 하면서 대화도 많아지고 공통 취미가 생겼거든요. 따라서 과도하게 몰입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긍정적 요소가 있을 것 같아요.”
김민주 기자
게임시간 선택제 활성화로 게임 순기능 지원 강화
지난 10년간 시행하던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가 2022년 1월부터 폐지됐다. 정부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 환경 변화를 반영해 게임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자율적 방식의 게임시간 선택제로 게임 시간 제한제도를 일원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청소년, 학부모, 교사에게 게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교육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가정 내 교육권을 존중해 자율적 방식으로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문화가 정착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된 배경은 지난 10년간 디지털 환경 변화와 관련이 깊다. 게임 셧다운제가 적용돼 컴퓨터게임 대신 모바일게임이 크게 성장하는 등 게임 이용 환경이 변했고 1인 방송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인터넷 만화, 누리소통망 등 심야시간대에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
이로써 만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심야시간대(0~6시)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게임 셧다운제가 폐지되고 만 18세 미만 청소년 본인과 법정대리인이 요청 시 원하는 시간대로 게임 이용 시간을 설정하는 게임시간 선택제가 더욱 활성화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찾아가는 게임문화 교실’을 확대해 청소년의 게임 이용 자기조절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고 다양한 매체를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매체 이해력 교육도 강화한다. 아울러 보호자와 교사의 인식 개선 및 청소년과 소통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을 확대하고 청소년의 권익 보호 강화와 게임의 순기능(게임 활용 수업, 치료 목적 게임 등)에 대한 지원, 청소년의 여가 활동 지원도 강화할 방침이다.
김경선 여성가족부 차관은 “게임 이용에 있어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가정 내 자율적 선택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됐다”며 “관계부처와 협조해 게임 이용 교육과 정보 제공을 늘리고 청소년 보호 주무부처로서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치유 캠프 운영 등 청소년의 건강한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