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4월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 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연설하고 있다.│청와대
K-방산의 위상
1월 1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엑스포 행사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모하메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군주의 회담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의 UAE 수출이 결정됐다. 이 자리에서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한화디펜스는 UAE 국방부의 조달 계약을 관리하는 타와준(TTI)과 총 계약 규모 4조 1800억 원에 달하는 사업계약서를 교환했다. 단일 유도무기 수출로는 우리나라 방위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천궁-Ⅱ 수출, 단품 아닌 무기체계라 파급효과 커”
전체 계약 금액의 약 60%를 차지하는 2조 5974억 원 규모의 계약을 맺은 LIG넥스원은 축제 분위기다. 이현수 LIG넥스원 해외사업부문장은 “방산 수출 업무를 10년 넘게 했는데 가장 큰 규모로 수출해 벅차고 뿌듯하다. 과거에는 단품 위주 수출이었다면 이번에는 무기체계를 수출하면서 파급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며 다른 중동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로 수출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UAE가 우리나라의 중거리 지대공미사일(M-SAM) 사업에 관해 처음 문의한 건 5년 전이다. 길었던 협상 과정에 대해 이현수 부문장은 “한동안 진전이 없다가 2020년 UAE 고위직 인사가 방한하면서 다시 추진됐다”며 “2021년 7월 UAE 공군 관계자들이 천궁-Ⅱ 품질인증사격을 참관하고 성능을 직접 확인하면서 협상을 이어간 끝에 구매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탄도탄요격미사일 체계는 일부 국가만 개발에 성공했을 정도로 고도의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무기체계다. 항공기보다 크기가 작고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날아오는 탄도탄을 요격하기 위해 천궁-Ⅱ에는 ▲탄도탄 작전통제소에서 탄도탄 정보를 미리 수신하는 ‘전술 데이터 링크 기술’ ▲고속의 탄도탄을 포착하기 위한 ‘탐지 추적 기술’ ▲탄도탄의 위협을 분석하고 교전 계획을 수립하는 ‘정밀 요격 기술’ ▲유도탄의 위치를 신속히 변경하는 ‘측추력 기술’ ▲고에너지 파편 탄두로 탄도탄을 직접 파괴하는 ‘힛투킬(Hit-to-Kill) 기술’ 등을 적용했다.
천궁-Ⅱ 체계 개발과 수출 협상에 직접 참여한 이홍기 LIG넥스원 해외사업연구소 유도무기개발단 유도탄체계팀장은 “사실 천궁-Ⅱ는 개발 범위도 넓고 초도 양산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수출 가능성에 많은 의문이 있었지만 이번에 큰 성과를 거두게 돼서 뿌듯하기도 하고 개발에 참여한 것이 영광스럽다”며 “밀고 당기는 협상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계약과 함께 다 날아갔다”고 기뻐했다.
▶2021년 11월 12일 경북 구미시 LIG넥스원 구미 생산본부에서 열린 ‘천궁-Ⅱ 체계 최초 양산 출하식’에서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LIG넥스원
“국가적 지원에 K-브랜드 위상 느껴”
UAE 입장에서는 천궁-Ⅱ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무기체계들이 있었다. 미국, 유럽, 이스라엘 같은 방산 선진국을 제치고 천궁-Ⅱ가 선택된 이유에 대해 이현수 부문장은 “제품의 우수성과 더불어 양국이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쌓아온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LIG넥스원이 UAE 현지에 진출해 6~7년 동안 협력 사업들을 원활하게 진행하며 기술과 사업 관리 능력에 대한 믿음을 준 것도 한몫했다.
이홍기 팀장은 “전 세계에서도 탄도탄을 요격할 수 있는 유도무기가 많지 않은데 천궁-Ⅱ는 우수한 성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춘 것이 주효한 것 같다. 아울러 국방과학연구소와 방위사업청, 공군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세일즈와 마케팅을 열정적으로 지원한 것이 큰 힘이 됐다”며 “UAE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가지는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천궁-Ⅱ 개발 및 생산에는 LIG넥스원을 비롯해 다수의 체계업체와 중견·중소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방산업계는 이번 수출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유도무기 관련 기술 파급효과로 방산업계를 비롯한 국가산업 경쟁력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는 “국방부, 공군,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 유관기관의 전폭적 지원과 협력 회사를 비롯한 방산업계의 긴밀한 공조가 있었기에 첨단 국산 유도무기로 글로벌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할 수 있었다”며 “이번 성과가 K-방산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들이 해외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는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건설이 참여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순환도로 공사 현장│SK건설
아프리카 최초 K9 자주포 수출도
천궁-Ⅱ 수출에 이어 2월 1일 이집트 카이로 포병회관에서 한화디펜스가 이집트 국방부와 양국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K9 자주포의 전체 수출 계약금은 1월 오스트레일리아와 체결한 K9 자주포 수출금액(1조 원대)의 약 2배 수준인 2조 원 이상으로 K9 자주포 수출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이집트를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월 20일(현지시간)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공식 회담을 하면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과 아흐메드 칼레드 이집트 방산물자부장관과 함께 K9 자주포 도입 문제도 논의했다. 양국 정상은 K9 자주포의 이집트군 전력 증강 기여를 비롯, 기술협력 및 현지 생산을 통해 양국 간 상생 협력의 사례가 될 것에 의견을 같이하면서 최종 타결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기로 했다.
이후 관련 업체와 정부 대표단 관계자 등이 지속적 협상을 이어간 결과, 우리 측에서 추가 양보 없이 제시한 최종안을 이집트 측에서 수용해 협상이 타결됐다. 방위사업청은 “양국 정상 간 공감을 통해 막판까지 남아 있던 몇몇 현안이 단시간에 해결됐고 정상회담이 이뤄진 지 2주가 채 못 돼 이집트 측과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할 수 있었다”며 “한·이집트 양국 정상 간 신뢰 관계는 앞으로 K9 자주포 말고도 국방·방산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협력을 확대해나가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K9 자주포 수출 계약은 아시아·유럽·오세아니아 지역에 이어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첫 수출이다. 우리나라와 이집트 간 방산 협력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수출 계약은 정부 유관부처와 국내 방산업체가 협업해 이집트 국방부와 10년 넘게 협상을 진행했다.
문재인정부는 2021년부터 국가안보실을 지휘본부(컨트롤타워)로 지정해 범정부적 협업 아래 적극 지원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021년 8월 이집트를 방문해 엘시시 대통령을 예방하고 K9 자주포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한편, 국방부·합동참모본부·육군·방위사업청·국방과학연구소의 유기적 역할 분담과 협력관계를 이끌었다. 또 K9 사격시범 참관을 위해 방한한 이집트 육군 관계자에게 운영부대와 정비부대 방문 등을 지원한 바 있다.
방위사업청은 “범정부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긴밀하게 협업해 양국 정부 간 깊은 신뢰를 형성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문화재청·농촌진흥청·한국수출입은행 등 각 부처 및 기관에서는 다각도로 협력 사업을 확대하고, 주이집트 대한민국 대사관은 현장 수행기관으로서 양국 정부기관 및 관련 기업과 긴밀한 정보 공유, 관계망(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관련 동향 파악과 고위 인사 교류 및 협상 진행을 적극 지원했다.
▶1월 16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엑스포 행사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모하메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군주의 회담 자리에서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왼쪽)와 무암마르 아부셰하브 타와준 사장(오른쪽)이 천궁-Ⅱ 사업계약서를 교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한겨레
해외 인프라 수주에 공급망 안정까지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정상외교를 통해 방산 협력에 대한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고 무기체계 수출 계약을 체결하면서 방산 수출액은 2016년 25억 6000만 달러에서 2021년 72억 5000만 달러로 크게 증가했다.
방산뿐 아니라 정상외교를 계기로 인프라·공급망 등 다양한 분야로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등 미래 먹거리 창출에 큰 성과가 있었다.
2019년 4월 카자흐스탄 정상 방문을 통해 양국 차관급 면담 기회를 마련, 알마티 순환도로 건설·운영사업 수주에 성공한 것은 우리 기업의 기술력에 외교적 지원이 결합돼 대규모 성과를 달성한 사례로 꼽힌다. 이후 해외 기반시설(인프라) 수주 실적은 꾸준히 증가했다. 2019년 9월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폴란드 바르샤바 신공항사업 참여 관련 양국 간 인프라 협력 논의를 지속해 유럽의 전진기지인 폴란드에 우리 기업의 진출 기반을 확대했다.
정상외교를 통해 국가 간 고위급 협의 채널을 활성화해 인프라 수주를 확대하고 해외 진출 기반을 강화함에 따라 2020년 해외 인프라 수주 실적은 351억 달러로 최근 5년 가운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21년은 306억 달러로 2년 연속 수주목표 300억 달러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국과 공급망을 안정하기 위한 협력 역시 강화했다. 2021년 5월 한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을 계기로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합의했으며 2021년 12월 호주 방문을 계기로 한·호주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주요국과 공동 대응체계를 확립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