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안성맞춤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서 한 연희자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2021년 9월 방영된 KBS2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문화유산 특집 ‘상속자들’에선 남사당놀이를 즐기는 장면이 나와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남사당놀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음직 한 단어다. 누적 관객 1000만 명 이상의 흥행기록을 세운 <왕의 남자>(2005년) 등 영화에도 단골메뉴로 등장해 친숙한 남사당놀이는 인류가 지켜야 할 무형문화유산(2009년 유네스코 등재)이기도 하다.
남사당(男寺黨)은 남자들로 구성된 조선시대 전문 유랑 예인 집단이다. 남사당이 말과 노래, 춤, 재주로 야외마당에서 한바탕 신명나게 벌인 공연이 바로 남사당놀이다. 순수 우리나라 뮤지컬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조선시대 남사당놀이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남사당은 요즘 방탄소년단(BTS)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남사당놀이는 조선시대 서민층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물이었던 데다가 민중을 대변해 양반사회의 부도덕함을 고발하는 해학과 풍자를 담았기 때문이다.
▶2018년 안성맞춤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실내공연에서 연희자들이 긴 나무막대기로 사발돌리기를 하고 있다.│ 안성시 누리집 갈무리
경기 안성서 전파돼 만주까지 원정 공연
남사당놀이는 경기도 안성 부근에서 전파돼 우리나라 전역에서 연행됐다. 시작 시기는 조선시대로 공식 기록돼 있지만 서민이 즐기던 놀이라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양반이 없었던 탓에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에도 남사당놀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사당은 20세기 초까지도 우리나라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을 떠돌며 명맥을 유지했고 때론 중국 북동부 만주지역까지 원정 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관객층이 서민이다 보니 주로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는 시기에 유랑을 다녔는데 일정한 보수 없이도 숙식만 제공되면 전국 어디든 떠돌며 힘없는 백성의 시름을 달랬다.
남사당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꼭두쇠’를 중심으로 40~50명의 단원으로 구성된다. 공연기획자 ‘곰뱅이쇠’, 무대관리자 ‘뜬쇠’, 진행자 ‘가열’, 초입자 ‘삐리’, 늙은 단원 ‘저승패’, 잔심부름꾼, 등짐꾼(장비 운반)도 있다.
대중 앞 공연에서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위계질서는 엄격했고 도제식으로 기술이 전수됐다.
남사당놀이는 전체 6개 구성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로 출발해 고사굿을 지내고 나면 본격적인 판이 벌어진다. 풍물놀이(농악대)는 도로 행진과 개인놀음으로 구성된다. 버나(사발돌리기)는 약 40㎝ 길이의 나무 막대기로 쳇바퀴를 돌리는 복잡한 기술을 선보인다. 담뱃대나 칼, 작은 얼레를 즉흥적으로 결합해 공연에 활용하기도 한다.
살판(땅재주)은 땅바닥에서 다양한 곡예를 펼치는데 오늘날 텀블링을 연상하면 된다. 어름(줄타기)은 팽팽한 외줄 위에서 각종 곡예를 펼치면서 마당에 있는 어릿광대와 함께 익살과 재치를 부리며 재밌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줄 높이는 2.5m, 길이는 약 9~10m로 설치된다. 어름이란 말은 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걷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반사회 지배층의 어리석음 풍자
남사당놀이의 하이라이트는 덧뵈기(탈놀이 또는 가면극)와 덜미(꼭두각시놀음)라고 할 수 있다. 양반사회를 흉볼 때 얼굴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가면을 쓰거나 인형을 내세워 지배층의 어리석음을 풍자했던 놀이다. 우선 덧뵈기는 샌님과 노친네, 취바리, 말뚝이 등 13명의 연희자가 등장해 네 마당을 공연한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마당씻이, 외래문화 수입을 꼬집는 옴탈마당, 양반을 조롱·풍자하는 샌님잡이, 문란한 성 문화를 비판하는 먹중이 바로 그것이다. 중부와 남부, 북부지방 탈놀이를 혼합해 지역성을 띠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민속인형극인 덜미는 연희자가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논다는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 31가지 종류의 인형 51개와 소도구를 활용해 두 마당(늙은 박첨지 마당, 평안감사 마당) 7거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늙은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유람거리, 피조리(박첨지의 조카)거리, 꼭두각시(박첨지의 아내)거리, 이시미(비단구렁이)거리로, 평안감사 마당은 매사냥, 상여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로 구성된다.
덜미의 무대는 지상에서 약 1.2m 높이의 검은 천으로 설치한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막 뒤에서 인형을 움직이면서 악사들과 함께 무대 앞에 앉은 화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모두 양반사회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