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적십자병원 8층 ‘간호 스테이션’에서 최영애 수간호사(오른쪽부터)와 송시정·이선미 간호사가 음압병실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은 2020년 4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코로나 시대 공공병원 가치 재조명
2월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은 감염병 전담병원이라기엔 일반 환자만 눈에 띄었다. 이우형 대한적십자사 의료원 대외협력팀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일반 환자와 접촉할 수 없게 동선을 완전히 분리해 서로 마주칠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본관 정문에 서지 않고 건물 뒤로 향했다. 본관 뒤에 새롭게 설치된 격리 통로에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고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구급차에서 내린 환자는 의료진의 안내를 받아 격리 통로로 들어갔다.
이우형 팀장의 안내를 받아 본관으로 들어가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진이 드나드는 격리 통로와 엘리베이터 쪽을 확인하니 조립식 패널과 비닐 등으로 완전히 차단한 상태였다. 이 팀장은 “현재 6~8층 3개 층을 감염병 전담병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경증 환자만 입원해 있다”고 했다.
▶서울적십자병원 의료진이 구급차에서 내린 코로나19 환자를 격리 통로로 안내하고 있다.
▶서울적십자병원은 코로나19 환자와 의료진이 드나드는 후문과 엘리베이터 주변을 조립식 패널과 비닐 등으로 막아 일반 환자의 동선과 분리했다
전화·CCTV로 경증 환자 대면 최소화
8층에 도착하자 음압병실 앞 ‘간호 스테이션(업무공간)’에서 간호사들이 두 개의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최영애 수간호사는 “중증도 환자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24시간 교대로 병실에 상주하지만 경증 환자는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간호한다”며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화면으로 병실을 관찰하면서 환자와 전화로 소통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방호복을 입고 음압병실로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원래 병실에는 CCTV가 없지만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뒤 음압병실에는 CCTV를 설치했다.
김지은 간호사가 D레벨 방호복을 입기 시작했다. 이날 새로 입원한 환자가 평소 기저질환 때문에 복용하던 당뇨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D레벨 방호복은 착용 단계가 복잡해 입는 데 거의 10분이 걸렸다. 방호복을 입은 김 간호사는 음압병실에 들어가 환자가 가져온 약을 가지고 음압병실 유리문 앞으로 나왔다. 스테이션에 있던 송시정 간호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김 간호사가 내미는 약의 사진을 찍었다. 코로나19 환자가 갖고 있던 약은 음압병실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없기 때문에 밖에서 사진을 찍어 기존에 복용하던 약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적십자병원은 2020년 4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2년 가까이 코로나19 환자를 간호한 이선미 간호사는 최근 환자들의 요구가 까다로워졌다고 힘들어했다. “왜 다인실이냐? 1인실이나 2인실을 달라”, “병원에서 주는 도시락 반찬이 맛이 없다”는 항의는 기본이고 영양제주사까지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얼굴을 보고 대화할 때보다 전화 통화에서 환자들이 심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전화를 받으면 무조건 병실에 들어가는데 방호복을 입으려면 아무리 숙달돼도 10분은 걸려요. ‘당장 들어오라 했는데 왜 안 들어오냐’고 막말하고 ‘코로나19와 상관없는 약이나 비급여 진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안내하면 ‘정부에서 다 지원해준다고 그랬는데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화내는 환자도 있어요. 감정노동자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우형 팀장은 “코로나19 발병 초기에는 환자들이 ‘죽는 게 아닌가’ 긴장하고 의료진에 고마워하는 편이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고 일상화되다 보니 코로나19 환자들도 그냥 보통 환자처럼 의료진을 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은 간호사가 음압 병실에 들어가기 위해 D레벨 방호복을 입고 있다.
▶서울적십자병원 8층 음압 병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송시정 간호사(오른쪽)가 김지은 간호사가 내미는 약을 사진 찍고 있다.
쏟아지는 택배 전달까지 업무 가중
최근 의료진과 환자 사이의 가장 큰 갈등 원인은 택배다. 음압병실에 택배 상자를 가지고 들어가는 건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만 가능하다. 환자들이 택배 중에서도 새벽 배송을 많이 시켜 일주일에 수요일 하루만 배송받는 것으로 정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저희가 의료진인지 택배 배송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환자들이 택배를 많이 시켜요. 택배가 오면 내용물을 확인해 병실에 들어가면 안 되는 물건은 빼고 넣어야 하는데 자기 물건 안 넣어줬다고 신고하겠다는 환자도 있어요.”
2021년 3월부터 근무하고 있는 전형석 수련의는 “최선의 진단을 위해 흉부 사진을 찍든 혈액검사를 하든 가용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는데 불안한 환자들이 우리가 마치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면 서운할 때가 있다”며 “의료진이 편하게 일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환자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2년 동안 의료진이 가장 힘들었을 때는 환자가 폭증하던 2021년 11월부터 두 달 동안이었다. 수도권 3차 병원의 중증 병상이 다 차면서 중증으로 악화한 환자가 한 단계 높은 3차 병원으로 옮겨갈 수 없었다.
수련의는 “중증으로 악화한 환자가 위중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3차 병원으로 빨리 옮겨야 하는데 받아줄 병상이 없어 우리 병원에서 3~4주씩 대기하며 힘겹게 버티다 돌아가신 환자도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적십자병원 의료진은 중증 환자 병상에 방호복을 입고 3~4시간마다 교대하며 상주했다. 최영애 수간호사는 “그때 의료인력을 지원받았지만 대부분 숙달되지 않은 인력이었고 중환자는 많아지고 사망 환자도 나오면서 다들 정말 ‘번아웃’(탈진)됐다”고 털어놓았다.
“29세 환자가 위독해 인공호흡 직전까지 갔는데 3차 병원으로 보낸 뒤에도 마음을 많이 졸였어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괜찮더라고요. 또 4시간 가까이 인공호흡을 했던 환자도 걱정돼 알아보니 무사히 퇴원했대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보람을 느끼죠.”
이선미 간호사는 퇴원한 환자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을 때 기운이 난다고 했다.
“한 달가량 입원하며 호흡기까지 달고 있다 퇴원한 환자가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한라봉을 몇 박스나 보냈어요. 깜짝 놀라 전화했더니 옆에 있는 딸한테 ‘그것밖에 안 보냈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전형석 수련의는 “의료진에게 고생한다며 직접 끓인 삼계탕을 갖다주는 환자 보호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2021년 말 ‘번아웃’ 사명감으로 버텨
여기에 적십자의 일원이라는 사명감까지 더해져 ‘번아웃’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적십자병원 26년 차인 이선미 간호사는 “적십자라는 브랜드 가치가 해외보다 많이 떨어져 있지만 적십자병원 직원은 나름대로 사명감을 갖고 임무에 임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이후 다른 병원에선 이직률이 높아진 것과 달리 우리 병원의 이직률이 높지 않은 것도 밑바탕에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35년 동안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한 최영애 수간호사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도 사회취약계층이 우리 병원을 많이 방문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고 지금도 ‘적십자정신’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적십자병원 말고도 인천, 상주, 영주 등 모두 4개 적십자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고 6개 병원에 선별진료소가 설치됐다. 현재 운영하는 감염병 전담병상 수는 서울 176병상, 인천 110병상, 영주 142병상 등 모두 428병상이다. 2021년 말까지 4개 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는 모두 8836명이었다.
이우형 팀장은 “우리나라 전체 병실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병실 수가 10%가 안 되는데 코로나19 환자의 70%를 담당하는 점만 봐도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소상공인→취약계층 ‘황금도시락’에
‘코로나 우울’ 아이들 마음 돌봄까지
대한적십자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2021년 말까지 30만 명의 적십자 봉사원이 의료진, 환자, 격리자, 취약계층 등에 마스크 3870만 장, 방호복 16만 벌, 의료용 장갑 320만 켤레, 손소독제 76만 개, 긴급 구호품 13만 세트, 비상식량 21만 세트, 안심 키트 1만 9000세트 등 방역물품과 구호품을 전달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을 동시에 지원하는 ‘1004가 전달하는 황금도시락’ 캠페인도 두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개인과 기업의 기부를 받아 소상공인에게 도시락 제작 후원금을 전달해 매출 증대를 돕고 소상공인이 만든 건강식 도시락을 적십자 봉사원이 취약계층 아동과 홀몸 어르신에게 전달하는 나눔 선순환 캠페인에 11억 원이 넘게 모였다.
2021년 말부터는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마음아, 안녕!’ 캠페인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지역아동센터 같은 돌봄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소상공인, 실직자, 조손가정, 한부모가정에 돌봄 공백이 생겼다. 이들 가정이 각 지방자치단체와 전국 15개 대한적십자사 지사에 신청해 대상자로 선정되면 소정의 자녀 학습비(가구당 30만 원) 등 생계 지원과 더불어 전문가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대한적십자사는 지역아동센터 325곳에 30만 원 상당의 마스크 2000장을 지원해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집단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해 아이들의 마음 돌봄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