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미안
고래뱃속
귀가 순해져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순(耳順)에 가까워진 나이에 기분 좋은 색감의 그림책 한 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거. 짓. 말.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기억 속의 거짓말은 내게도 은밀한 긴장과 두려움의 에피소드로 남아 있지만 그림책으로 구현된 이야기 속의 거짓말은 소심하고 비겁한 모함이나 폭력이 아닌, 아이들이 내지르는 슬프고 외로운 함성 같았다.
미안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거짓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신중히 판단해 급류에 휩쓸리지 말고 낭설의 희생자를 만들거나 희생자가 되는 일이 없게 하자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위기 청소년을 주로 만나 심리 상담을 하는 나의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반영한 그림의 거친 선과 여백을 가득 채운 색감 그리고 보이는 행동 그 이면에 숨죽이고 있는 인물들의 심리에 더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거기까지 상황은 그래도 그럴 수 있다 싶었다. 태경이의 거짓 모함도 규리의 오해도 그리고 주변인의 날선 비난도 안타깝지만 살아가면서 운 나쁘게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고 해도 엄마는 믿지 않았다.” “친구 괴롭힌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하니?” “엄마에게 안기려 했는데… 안 된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목구멍에 뭔가 꽉 막힌 듯 숨이 답답했다.
거기에는 지난 시절, 가정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폭력에 가까운 훈육을 자행하던 나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했고 “그래 봐야 어차피 믿어 주는 사람 없어요”라며 세상 사람을 향해 불신과 냉소적인 분노를 쏟아 내던 아이, 학교 폭력 가·피해자가 돼 상담실로 들어왔던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거짓말> 속 ‘나’의 엄마는 왜 그랬을까.
이 그림책은 그래서 지금 온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부모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잠시나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숙이 밀양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