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자치분권 2.0 주요 내용과 의미
자치분권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이 시행된 1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회 중앙지방협력회의’가 열렸다. 중앙지방협력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중앙과 지방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들이 함께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관련 주요정책 등을 심의하는 회의다. 의장은 대통령이, 공동부의장은 국무총리 및 시·도지사협의회장이 맡고 기획재정부·교육부·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법제처장, 시·도지사, 시·도의회의장협의회장, 시·군·구청장협의회장, 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장, 자치분권위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참석한다.
이날은 새로 제정된 ‘중앙지방협력회의법’ 시행일이었다. 정부는 이날 “중앙지방협력회의 제1회 회의를 개최해 문 대통령 임기 내 ‘제2국무회의 도입‘이라는 국민과 약속을 완수했다”며 “특히 오늘은 32년만에 대폭적으로 전부개정된 ‘지방자치법’, 새로 제정된 ‘주민조례발안법’ 등 문재인정부가 그동안 자치분권 확대를 위해 준비해온 새로운 법률들이 동시에 시행되는 날로 의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자치분권위원회
중앙-지방 간 소통과 공론의 장 마련
정부는 지방의 국정운영 참여를 위해 2021년 7월 ‘중앙지방협력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중앙지방협력회의는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이뤄진 중앙과 지방 사이의 소통·협력을 제도화한 것으로 ‘자치분권 2.0’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정운영의 플랫폼이다. 제1회 회의에서는 중앙지방협력회의 운영방안,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 자치분권 성과 및 자치분권 2.0 시대 발전과제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
협력회의는 지방자치 발전 및 지역 균형발전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국가 최고 심의 및 의사결정기구로 ‘중앙-지방이 상생하는 연대와 협력의 대한민국’ 비전 아래 운영한다.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이뤄져 온 시·도지사 간담회 등과는 달리 정례회의를 분기별 1회 개최한다. 임시회는 필요에 따라 의장이 소집하게 돼 있다.
지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률·정책은 국무회의 상정 전에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필수 논의하고 그 결과를 국무회의에 공유한다. 협력회의는 공동부의장제, 실무협의회 공동위원장제를 통해 중앙-지방 간 수평적 구조로 운영하고 구성원이 자유롭게 안건을 제출해 상향식 공론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연간 1~2회는 지역 현장에서 ‘(가칭)찾아가는 중앙지방협력회의’로 개최해 지방의 생생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운영한다. 특히 관계기관 사이의 협업을 통해 안건을 숙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안건 선정 과정이 곧 중앙-지방 간 소통과 공론의 장이 되도록 운영한다. 필요할 경우 대통령 자문위원회와 연계해 지방 관련 국정운영방향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지방정부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를 제도화했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소통 채널은 시·도지사협의회, 중앙행정기관·지자체 정책협의회, 지방재정부담심의위원회, 자치분권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다양하게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 기구는 정부와 지자체가 대등한 위치에서 협의할 수 있는 위상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협력회의에서는 국가와 지자체 간 협력, 권한과 재원 배분, 균형발전 등 지방자치 발전과 관련한 사항을 심의하며 국가와 지자체는 회의 결과를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도록 법에 명문화돼 있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던 대통령과 시·도지사 간담회 등을 정례화·제도화해 대통령이 직접 지방의 의견을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협력회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안건 심의다. 회의가 다룰 쟁점과 현안 의제의 범위는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 등 매우 포괄적이다.
정책 결정·집행에 주민 참여 확대
자치분권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은 32년 만에 전면개정된 것으로 주민참여 확대, 지방의회 역량과 책임 강화, 주민주권 구현, 자치권 확대, 중앙-지방 간 협력관계 정립, 행정효율 증진 등을 꾀하고 있다. 지역의 일을 주민 뜻에 따라 처리하게 하는 지방자치의 기본 원리를 담고 정책 결정·집행 과정에 주민 참여를 확대하고 (중앙)정부 권한을 지자체에 배분하는 분권 수준을 크게 높였다.
개정 지방자치법은 목적 조항에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권을 명시했다. 주민이 지자체 조례의 제·개정 또는 폐지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제와 주민 감사청구 관련 조항이 특히 눈에 띈다. 주민조례발안·주민감사청구권자 기준 연령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주민감사 진행에 필요한 청구인 수 규모도 ‘시·도 300명(기존 500명),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 200명(기존 300명), 시·군·구 150명(기존 200명) 이내에서 지자체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으로 완화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제정할 수 있는 규칙에 대해 제·개정, 폐지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게 된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법령에서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한 사항은 그 법령의 하위법령(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 포함)에서 위임의 내용과 범위를 제한하거나 직접 규정할 수 없도록 하는 자치입법권 보장 강화 조항도 새로 마련했다. 가령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교통사업자에 대한 교육 방법 등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하는데, 국토교통부령에는 교육 횟수·시간·내용 등이 이미 규정돼 있어 사실상 하위 법령에서 조례 제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법 개정으로 앞으로는 이런 사례가 발생하지 않게 된다.
의회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 등 지방의회 숙원도 실현됐다.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인 경기 수원·고양·용인시와 경남 창원시에는 특례시라는 별도의 행정적 명칭을 부여했다. 이들 ‘특례시’에는 예외적 사무 처리 권한인 특례도 둘 수 있게 했다.
특별지자체 설치·운영 근거 구체화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하기 위한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출범의 발판이 될 특별지자체 설치·운영에 관한 근거도 구체화했다. 이 개정법은 대통령령에 위임한 사항을 규정하는 시행령도 함께 개정됐는데 행안부 장관이 지정하는 시·군·구에 관계법률로 특례를 둘 수 있는 근거도 신설했다. 시·군·구가 실질적인 행정수요 대응이나 지역 여건에 입각한 특성화 발전 등을 위해 필요한 권한을 발굴해 지정 신청하면 행안부 장관은 자치단체 특례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시·군·구를 특례를 둘 수 있는 시·군·구로 지정하게 된다.
시행령에는 지방의회 정책지원 전문인력 관련사항도 담겨 있다. 지방의원의 의정활동 지원을 위해 정책지원관이 배치되는데 지방의원의 의정자료 수집·조사·연구 등을 지원한다. 의원이 정책지원관에게 사적인 사무를 지시하는 건 제한된다.
또 개정 지방자치법에는 주민불편 해소를 위해 생활권과 불일치하는 자치단체 관할구역 경계를 변경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단체장이 지방의회 동의를 얻어 행안부 장관에게 조정을 신청하면 자율협의체를 통한 자치단체간 자율조정이 이뤄진다. 경계변경 조정 신청 사유로는 건축물·주택단지·필지 등이 둘 이상의 자치단체로 분리돼 있거나 도로·하천 등으로 인해 소속 자치단체와 현저히 분리돼 다른 자치단체에 밀접하게 접해 있는 경우 등이 예시돼 있다.
정부는 “개정법에 여러 새로운 조항을 새로 두거나 고쳐 자치권과 지방분권을 확대하고 행정 능률이 높아지는 등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32년 전인 1988년 전부개정법률은 자치단체 중심, 중앙-지방 상하관계 개념을 중심으로 둔 자치분권 1.0 시대를 뒷받침했다면 이번 개정법은 주민 중심, 중앙-지방 간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치분권 2.0 시대로 전환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조례 청구요건 완화 주민 참정권 높여
자치분권 2.0 시대 본격 추진의 또 다른 축은 주민이 조례를 청구할 수 있는 ‘주민조례발안’ 제도다. 1월 13일부터 새로 제정·시행된 주민조례발안법은 조례 청구요건을 완화해 주민 참정권을 높였다. 지자체가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참여할 길이 넓어진 셈이다.
주민이 조례를 청구할 수 있는 조례발안 제도는 1999년 지방자치법 개정 때 일찌감치 도입됐지만 청구 요건이 엄격하고 절차가 복잡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번 법은 조례를 청구할 수 있는 문턱을 대폭 낮춰 조례 청구 연령을 19세 이상에서 18세 이상 주민으로 확대했다.
최소 동의 인원도 줄였다. 기존에는 조례 청구 동의 인원을 정할 때 인구 50만 명을 기준으로 2개 집단으로 분류했는데 이 법은 인구 규모에 따라 6단계로 세분화했다. 같은 광역단체라도 인구 800만 명을 기준으로 차등을 뒀고 기초단체 역시 인구가 적을수록 필요한 동의 인원이 줄어들도록 설계했다.
조례를 청구할 때 행정기관(시·도·구·군)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광역·기초의회에 제출하도록 절차도 간소화했다. 조례 청구가 들어오면 지방의회는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조례안을 심의해 의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조례안이 자동 폐기되지 않고 차기 의회에서 계속 심사하는 규정도 마련됐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