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 특례시 뭐가 달라지나
경기 수원시에 사는 A씨는 2021년 12월 만 65세가 되면서 기초연금을 신청했지만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A씨가 보유한 자산에서 기본공제액을 차감하고 각종 재산가액을 소득으로 환산한 소득인정액이 기초연금의 부부가구 2021년 선정기준액(270만 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1월 13일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A씨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수원시가 특례시가 됐기 때문이다. 특례시는 기초지방자치단체 지위는 유지하되 도시 규모에 걸맞은 행정·재정적 권한을 가지는 새 유형의 지방자치단체다. 인구 118만 명의 수원시와 108만 명의 경기 용인·고양시, 103만 명의 경남 창원시가 특례시로 다시 태어났다.
A씨는 이전까지 인구 10만 명이 넘는 중소도시와 동일한 사회복지급여 기준을 적용받았지만 특례시가 되면서 대도시 기준으로 상향 조정됐다. 중소도시의 기초연금 기본공제액은 8500만 원이지만 대도시는 5000만 원 많은 1억 3500만원이다. A씨가 이번에 기초연금을 재신청하자 2021년보다 5000만 원을 더 공제받아 소득인정액이 기초연금의 부부가구 2022년 선정기준액(288만 원)보다 낮아져 연금 지급 대상자가 된 것이다.
수원시는 기초연금 기본공제액이 5000만 원 상향되면서 약 5500명이 기초연금 혜택을 새롭게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존 기초연금 수령자도 별도의 소득이나 자산 변동이 없다면 공제받는 금액이 증가해 1인당 최대 16만 원까지 지급액이 늘어나게 된다.
특례시 사회복지급여 9종 확대
특례시민은 기초연금뿐만 아니라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생계·의료·주거·교육), 긴급복지,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한부모가족지원 등 모두 9종의 사회복지급여가 확대된다.
기본적 생계가 어려운 주민을 지원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은 대상자 선정을 위해 재산가액을 산정할 때 차감하는 기본재산액을 지역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한다. 중소도시에 속했던 수원시는 대상자의 기본재산액 4200만 원을 차감했지만 특례시가 되면서 대도시에 속해 특별시나 광역시와 같은 6900만 원의 기본재산액을 공제하게 된다. 더 많은 기본재산액을 차감받으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는 가구당 최대 28만 원까지 늘어난다. 수원시는 “도시 규모가 광역시급으로 커져 생활수준과 물가는 높아졌지만 지역 구분에 묶여 기본재산액을 낮게 책정받았던 불합리함이 특례시가 되면서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지급하는 장애수당 역시 기초생활보장제도 방식으로 소득인정액을 적용하는 만큼 가구당 최대 4만 원의 급여가 증가했다. 또 한부모가족에게 지원되는 급여 기준도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 최대 6만 원까지 급여가 늘어났다.
주소득자의 실직이나 질병 등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처한 가정을 위해 즉각적으로 시행하는 긴급지원도 특례시가 되면서 지원의 문턱이 낮아졌다. 지원의 적정성을 판단할 때 중소도시는 재산 합계액 1억 5200만 원을 기준으로 삼지만 대도시는 2억 4100만 원으로 8900만 원이 더 많다.
기준이 대폭 상향되면서 특례시에 속한 위기가구가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 재산 합계액이 2억 2000만 원인 수원 거주 4인 가구가 위기상황에 처한 경우 1월 13일 전에는 긴급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106만 원의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긴급지원 가운데 주거비(1~2인 기준) 또한 29만 300원에서 38만 7200원으로 올랐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을 구분해 지급액을 결정하는 주거지원 한도액도 늘어나 3~4인 가족이 받을 수 있는 주거지원 최대 금액은 약 42만 원에서 약 64만 원으로 22만 원 증가했다.
▶수원시는 시승격 73년 만에 ‘수원특례시’로 발돋움했다. | 수원특례시
▶고양특례시 출범 선포식 | 고양특례시
특례시민 6만 6000여 명 혜택
수원시는 보건복지부의 추계 자료를 활용해 기존보다 복지 혜택을 받는 주민이 2만 2000여 명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급여와 기초연금, 긴급복지지원, 장애인연금, 장애수당, 한부모가족지원 등 6대 복지급여에 73억 원 상당을 추가 지원해 시민의 더 나은 삶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고양시에서는 특례시 지정에 힘입어 생계·의료·주거 등 여러 사회복지급여와 관련해 시민 2만 4000명이 추가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용인시도 특례시가 출범하면서 1만여 명의 시민이 추가 복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산하고 관련 예산 98억 원(국·도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창원시는 그동안 수급 대상에서 제외·탈락하거나 하향 기준으로 적용됐던 1만여 명의 시민이 약 170억 원의 추가 혜택을 누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수원·고양·용인·창원 등 4개 특례시에서 기존보다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게 된 주민을 모두 합치면 6만 6000여 명에 이른다.
▶백군기 용인시장이 1월 3일 열린 ‘용인특례시 출범식 및 반도체도시 선포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용인특례시
행정·재정 권한도 광역시급 확대
복지 혜택뿐 아니라 개정 지방자치법은 특례시에 행정·재정 운영 등에 대한 특례를 둘 수 있게 했다. 지방분권 취지에 맞춰 특례시에 권한을 더 주고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사무 처리 범위를 넓혀주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특례시의 행정·재정적 권한도 광역시 수준으로 확대된다. 산업단지 인허가 등에서 중앙정부나 도를 거치지 않고 특례시가 직접 처리할 수 있어 더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자치권한을 부여받아 각종 인허가 처리 시간이 단축되고 이를 통해 행정서비스가 개선되며 자주적인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다. 지방재정 분야에서는 늘어난 예산으로 교통·문화·교육·복지시설 등 도시 인프라 확충이 가능하다. 또 첨단 관광산업 기반 확충으로 일자리는 늘고 부가가치 창출 기회가 확대돼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도시경쟁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구체적 권한이양은 현재 진행 중이다. 고양·수원·용인·창원 4개 특례시는 2021년 7월부터 행정안전부와 특례시 지원협의회를 운영하며 협의를 진행했다. 당초 800여 개에서 출발했던 예비 특례 사무 목록은 검토·분류 작업 등을 통해 86개 기능사무와 383개 단위사무로 간추려졌다. 지역산업의 육성·지원,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사무, 물류단지의 개발 및 운영, 산업단지 개발, 교육기관 설립 및 운영, 지방재정에 관한 사무,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지방중소기업의 육성, 건축허가 시도지사 승인 등의 기능이 포함됐다.
▶창원특례시의 출범을 알리고 축하하는 타종행사 | 창원특례시
4개 특례시 ‘도시경쟁력 향상’ 기대
4개 특례시는 누구보다 지역 실정을 잘 아는 시가 특례 권한을 확보해 독자적 자치행정을 펼쳐나가면 도시경쟁력 향상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용인시는 86개 기능, 383개 단위사무에 관한 법령이 개정되면 복잡한 행정절차가 개선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자율적 사업 계획을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특례시라는 도시브랜드로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도시경쟁력 향상에 따라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와 ‘경기용인 플랫폼시티 조성사업’ 등이 더욱 원활하게 추진되고, 첨단·관광·연구개발(R&D) 등 대규모 재정투자사업이나 국책사업 유치도 유리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용인시는 시민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고 특례시에 걸맞은 행정·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해 특례사무와 재정권한 등 실질적 특례 권한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1월 3일 용인시청에서 열린 용인특례시 출범식에서 백군기 용인시장은 “험난한 여정을 뚫고 특례시 출범이라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면서 “특례시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와 반도체산업의 전략적 육성으로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자족도시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창원 소방안전교부세 50% 증액
4개 특례시 가운데 유일하게 비수도권인 창원은 소방안전 부문에서 시의 권한이 커진 것을 반기고 있다. 창원시는 2010년 창원·마산·진해를 통합한 인센티브로 2012년부터 전국 기초자치단체로는 유일하게 소방사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소방·안전시설 확충 등에 쓰이는 소방안전교부세가 유사 규모의 광역단체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인구 30만 명 규모의 세종시보다 적었다.
2020년 12월 특례시 출범이 확정되고 20221년 11월 ‘소방안전교부세 교부기준 등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되며 창원시의 소방안전교부세 개선 요구가 반영됐다. 소방사무를 처리하는 인구 100만 명 이상 대도시의 노후·부족 소방장비 교체·보강 소요 금액을 산정할 때는 다른 광역시에 드는 금액 평균의 2분의 1을 가산하도록 하면서 2022년 소방안전교부세는 2021년 42억 2000만 원보다 절반 이상(50.2%) 증가한 63억 4000만 원(인건비 108억 원 별도)으로 책정됐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1월 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이양받은 권한은 소방안전교부세 증액, 사회복지급여 대도시 기준 적용, 항만시설 개발·운영권 등 일부에 국한돼 있지만 지방분권법 개정과 함께 3차 지방일괄이양법 추진, 특례시지원특별법 제정에 시정 역량을 집중해 광역시에 버금가는 권한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