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헌이 2월 9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포효하고 있다.│연합
쇼트트랙 남자 1500m 황대헌 우리나라 첫 금메달
우리나라 쇼트트랙 대표팀이 남자 1000m 준결승 편파판정 설움을 털고 제 실력을 완벽하게 보여줬다. 우리나라는 2월 9일 황대헌(23·강원도청)이 1500m 금메달을 따내며 쇼트트랙 강국임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황대헌은 ‘평창 막내’에서 ‘베이징 에이스’로 완벽하게 돌아왔다.
황대헌은 이날 중국 베이징 서우두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2분 09초 219를 기록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 선수단 첫 금메달이다.
빙판 위의 우리나라는 강했다. 앞서 2월 7일 충격의 페널티 탈락과 부상까지 겪으며 흔들릴 법도 했지만 더욱 강해져서 돌아온 듯 보였다. 2월 8일 열린 훈련에서 취재진과 만나 “앞으로 경기가 더 있지 않나. 더 잘 먹고 잘 잤다”(황대헌) “지난 일이니까 다 털어버렸다”(이준서)고 말하던 여유에는 어떤 과장도 없었다. 그야말로 실력으로 한국 쇼트트랙의 저력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특히 이날 우리나라는 1500m 준준결승에 나선 황대헌, 이준서(22·한국체대), 박장혁(24·스포츠토토)이 모두 결승에 오르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준서는 5위(2분 09초 622), 박장혁이 7위(2분 10초 176)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은 남자 1500m에 3명이 출전했지만 아무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우리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인 건 뛰어난 실력에 기반한 강한 정신력 덕분이다. 전날 훈련에 나선 황대헌은 “결과는 아쉽지만 어찌 됐든 계속 이 벽을 두들겨서 돌파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 이날 작전에 대해선 “판정은 심판의 몫이다. 깨끗하게 했지만 깨끗하지 못했으니 그런 판정을 받았을 거다. 그래서 한 수 배웠다”라며 “더 깔끔하게 아무도 나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황대헌은 결승에서 마지막 8바퀴 내내 1위를 달리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앞서 열린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중국 선수 두 명을 멋지게 추월하고도 페널티 판정으로 실격했던 황대헌은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아무도 손 못 대는 깔끔한 전략 세웠다”
황대헌은 “1000m 경기도 깔끔한 경기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더 깔끔한 경기를 준비했다. 깔끔한 경기 중에 가장 깔끔하게 경기를 하는 것을 전략으로 세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과가 어떻게 되든 계속 벽을 두드렸다. 절실하게 벽을 두드리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황대헌이 두드린 벽은 단순히 편파 판정만이 아니었다. 황대헌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불운에 시달렸다. 그는 당시 남자 1500m 결승에서 넘어지며 메달을 놓쳤고 1000m 준준결승에서도 넘어지며 실격했다. 당시 남자 500m에서 ‘깜짝’ 은메달을 목에 걸긴 했지만 자신의 주 종목(1000m) 등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 기회를 모두 놓쳤던 셈이다.
이번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도 어려움이 많았다. 중학생 때부터 겪어온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그를 괴롭혔고 코로나19로 한 시즌을 사실상 통째로 날렸다. 더욱이 쇼트트랙 대표팀은 대회 직전 각종 어려움까지 겪었다.
모든 굴곡에도 불구하고 황대헌은 그저 자신과 싸움에만 집중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인터뷰 때 “나는 남들과 비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냥 나 자신을 이기는 목표를 세운다.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모두가 황대헌이 마주한 외부적인 벽에 주목할 때도 그는 자기 자신의 한계라는 벽과 싸우고 있었던 셈이다. 그가 모든 변수에도 불구하고 끝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이유다.
“쇼트트랙 얘기가 나오면 항상 제가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향해 그는 다시금 스케이트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차준환이 2월 10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오페라 ‘투란도트’의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고 있다.│연합
남자 피겨 차준환 사상 첫 올림픽 톱5
차준환(21·고려대)이 우리나라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올림픽 도전 역사를 새로 썼다. 차준환은 2월 10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프리프로그램에서 182.87점을 받았다. 앞서 쇼트프로그램에서 기술점수(TES) 54.30점, 예술점수(PCS) 45.21점, 총점 99.51점을 기록해 29명의 출전 선수 중 전체 4위를 기록했던 차준환은 쇼트와 프리를 합쳐 282.38점을 기록하며 전체 5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피겨 남자 싱글 선수가 올림픽에서 5위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최고 기록은 차준환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15위다. 차준환은 주니어 때부터 우리나라 남자 피겨 역사를 바꿔왔다. 우리나라 남녀 통틀어 공식 대회에서 쿼드러플 점프를 처음 성공했고 주니어 세계신기록까지 작성했다. 2016~2017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남자 피겨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땄고 시니어 데뷔 이후에는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메달을 딴 최초의 우리나라 남자 피겨 선수가 되기도 했다.
경기 후 차준환은 “만족할만한 경기였다. 첫 번째 점프에서 실수가 났는데 연습에서 완벽했던 점프라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남은 점프를 잘 소화했기 때문에 즐겁게 했다. 올림픽인만큼 경기하는 순간순간을 세세하게 기억하려 한 것 같은데 그런 목표는 이룬 거 같다”고 말했다.
남자 빙속 김민석, 평창 이어 1500m 또 동메달
앞서 ‘빙속 괴물’ 김민석(23·성남시청)이 우리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사했다. 김민석은 2월 8일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1분 44초 24로 동메달을 따냈다. 김민석은 평창 대회에 이어 올림픽 두 대회 연속 메달을 획득했다. 김민석은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주인공이 됐다.
김민석은 경기 뒤 방송 인터뷰에서 “챔피언을 향해 열심히 준비했다. 긴장을 많이 했지만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편 데 만족한다. 우리 선수단의 첫 메달을 내가 딸 줄은 몰랐다. 나의 메달이 다른 선수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