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수 처리장의 열 교환기 위에서 김상호 공장장(오른쪽)과 성복경 부장이 폐열 회수 설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 업체 성림유화 실천 사례
소각로에서 폐기물을 태울 때 엄청난 양의 열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폐기물 처리 업체는 이 열에너지로 생산한 증기와 온수를 지역개발공사와 여러 에너지 회사에 판매한다. 지역난방이나 열을 필요로하는 다른 사업장에 공급돼 값비싼 원유나 가스 등 연료를 절감하고 온실가스 감축 효과도 있다.
그러나 모든 열이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180℃ 이상의 온도와 일정 이상의 압력 등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판매나 이용이 가능하다.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열은 그대로 버려지기 십상이다.
폐기물 처리 업체인 성림유화의 성복경 시설운영팀 부장은 버려지는 폐열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폐수 처리 시설을 떠올렸다. 성림유화는 산업체에서 위탁받은 폐수를 증발·농축 공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증발·농축 공법은 폐수를 끓여 순수한 물과 오염물질 등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감압 장치를 이용해 100℃가 아니라 60℃만 돼도 증발시킬 수 있다. 하지만 상온의 폐수를 60℃ 이상으로 끓이려면 상당한 양의 열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안산 지역개발공사 등에 판매할 수 있는 증기를 여기에 이용했다.
성복경 부장은 온도와 압력이 부족해 버려진 폐열을 활용해 폐수의 온도를 어느 정도 올린 뒤 기존처럼 가열하는 방안을 고민했다. 마침 환경부에서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을 공모했다. 이 사업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할당업체가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검증된 설비를 도입하면 설치비를 일부 지원하는 사업이다.
성복경 부장은 “우리가 고안한 폐열 회수 설비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검증된 설비는 아니었지만 환경부에서 검증된 설비 말고도 개발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제안해달라고 해서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에 문의했다”고 했다. 한국환경공단이 의뢰한 기관에서 성림유화에 와서 현장을 확인한 뒤 탄소중립설비로 지원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2020년 폐열 회수 설비인 ‘열 교환기’를 폐수 처리장에 설치했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에 위치한 성림유화 전경
정부 지원으로 폐열 회수 설비 설치
1월 18일 경기도 안산시 시화공단에 있는 성림유화 폐수 처리장 위에 올라가 열 교환기의 뚜껑을 열자 영하의 날씨에도 김이 올라왔다. 상온 상태의 폐수를 버려진 폐열을 이용해 50℃ 가까이 예열하고 있었다.
김상호 성림유화 공장장은 겨울에는 폐수의 온도가 20℃ 정도 되는데, 여기서 폐열을 이용해 50℃ 정도까지 미리 데워놓으면 판매용 증기로 본격적으로 끓일 때 온도를 10℃만 더 올리면 되기 때문에 20℃에서 60℃ 이상으로 바로 끓일 때보다 열에너지를 적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림유화가 2020년부터 폐열 회수 설비를 실제로 가동한 결과 기존보다 온실가스를 10% 이상 감축한 걸로 추산하고 있다. 김상호 공장장은 2021년 한 해 동안 약 3만 톤의 폐수를 처리하면서 폐열을 활용해 4000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한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권은 1톤당 3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에 연간 1억 2000만 원의 경제적 효과를 본 셈이다. 온실가스 배출권과 별개로 연간 6000만 원 정도의 증기를 더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2021년 한 해 동안 성림유화가 얻은 전체 경제적 효과는 1억 8000만 원에 달한다.
폐열 회수 설비를 설치하는 데 총 공사비가 2억 5000만 원이 들어갔지만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에 따라 성림유화는 정부에서 50%의 지원금을 받았다. 김상호 공장장은 “설비 설치 비용에 대한 감가상각이 2년이면 끝나 투자금 회수가 굉장히 빠른 편”이라며 “업체는 설비 설치 비용이 반값으로 줄어들어 좋고 국가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절약할 수 있어서 좋은 지원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김상호 공장장이 2020년 정부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으로 설치한 폐열회수 설비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성복경 부장이 2015년 정부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으로 구형 공기압축기에 설치한 외장형 인터버의 장점을 설명하고 있다.
인버터·공기압축기 20~30% 효율↑
성림유화는 2020년 전에도 정부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을 이용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경제적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현재 성림유화에는 모두 세 대의 소각로가 있는데 각 소각로에는 두 대의 공기압축기(에어 콤프레셔)가 연결돼 있다. 한 대는 구형 공기압축기고 다른 한 대는 2015년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을 받아 설치한 인버터형 공기압축기다.
김상호 공장장은 “폐기물 처리 업체는 압축 공기를 많이 쓸 수밖에 없다. 폐수를 옮길 때도 압축 공기를 사용하고 소각로에 약품을 뿌려줄 때도 사용한다. 압축 공기를 만드는 공기압축기를 가동하는 데 상당한 전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구형 공기압축기는 생산한 압축 공기가 얼마나 사용됐고 잔여량이 얼마나 남았는지 상관없이 계속 가동하는 방식이다. 반면 인버터형 공기압축기는 압축 공기의 사용량에 연동해서 가동 여부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산한 압축 공기가 80% 이상 남아 있으면 가동을 멈추고 잔여량이 30% 이하로 내려가면 다시 가동하게끔 설정이 가능하다. 소각로가 하루 12시간 가동될 때 구형 공기압축기는 12시간 내내 압축 공기를 생산해야 하지만 인버터형 공기압축기는 8시간이나 9시간만 가동해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전력 소모량이 줄어든다.
성림유화는 2015년 환경부의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 때 인버터형 공기압축기와 함께 외장형 인터버를 기존 구형 공기압축기에 연결했다. 구형 공기압축기도 인버터형 공기압축기와 같은 방식으로 전력 소모량을 줄인 것이다. 성복경 부장은 “전력량은 여러 변수가 많아 계산이 쉽지 않지만 20~30% 정도 효율이 향상된 것 같다. 인버터를 설치한 뒤 공장의 전체 전기료가 확실히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업체들에 매년 배출권을 할당하고 업체는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많으면 배출권을 구매하고 이보다 적으면 판매하는 제도로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배출량이 많은 폐기물 처리 업체는 배출권을 사들이느라 부담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성림유화는 평소에도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김상호 공장장은 “온실가스 부분은 회사 차원에서 굉장히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잘하는 업체가 있다고 하면 직접 가서 보고 우리 회사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며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던 게 이번에 환경부의 도움을 받아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글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탄소중립설비 지원 정부 예산 341% 늘어
환경부는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2015년부터 탄소중립설비 지원사업을 시작해 2021년까지 7년 동안 중소·중견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등 104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할당업체를 대상으로 144개 사업에 모두 325억 원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인버터·공기압축기 등의 공정설비 교체, 연료전환, 폐열회수설비 설치 등으로 연간 약 11만 톤의 온실가스가 감축된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 지원사업에는 탄소중립 선언,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등 최근 국내외 기후변화 대응 동향을 반영해 2021년 222억 원보다 341% 늘린 979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배출권 할당업체의 부담 완화를 위해 중소기업에 한해 국고보조율을 50%에서 70%로 상향하고 대기업을 포함한 모든 할당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상생프로그램을 새로 마련했다.
2022년 지원사업은 온실가스 감축설비 지원사업과 저탄소 청정연료 전환사업으로 구분된다. 온실가스 감축설비 지원사업(879억 원)은 할당업체가 재생에너지설비, 폐열회수설비, 인버터, 고효율 기기, 탄소 포집, 불소 저감설비 등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검증된 설비를 도입할 경우 60억 원 한도 내에서 설치비(50∼70%)를 지원한다.
2022년부터는 상생프로그램을 통해 감축 여력이 없는 할당업체(대기업 포함)가 국고 지원을 받아 중소·중견기업에 감축 설비를 설치하는 경우 해당 중소·중견기업에서 발생한 감축량을 할당업체의 감축 실적으로 인정한다.
저탄소 청정연료 전환사업(100억 원)은 산업단지에 열을 공급하는 할당업체가 유연탄 연료를 바이오매스,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저탄소 연료로 전환할 경우 설비 교체 비용의 50%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배출권거래제 할당업체는 공모 기간인 7월 29일까지 상시로 사업을 신청할 수 있다. 최종 지원대상 업체는 종합 검토 및 평가를 거쳐 선정될 예정이다.
이병화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은 “온실가스 감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할당업체를 위해 2022년 예산을 대폭 증액해 편성했다”라며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실시하는 이번 지원사업 공모에 많은 기업이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