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녹차밭(봇재다원)
남파랑길 63코스 ‘보성군 벌교읍 한바퀴’
이즈음 전남 보성을 찾으면 한겨울 자연이 빚어낸 초록과 순백의 낭만을 함께 맛볼 수가 있다. 사방이 잿빛인 겨울 여행지에서 초록의 차밭이란 싱싱한 생동감을 전하기에 충분하다. 산비탈을 가득 메운 녹색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 위로 하얀 함박눈이라도 살포시 내려앉으면 눈 덮인 겨울 녹차 밭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 뿐인가? 여자만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와 짭짤한 겨울 별미 꼬막을 채취해오는 ‘뻘배’의 행렬은 장관이다.
따뜻한 녹차 한잔에 다양한 겨울 진미, 그리고 일출과 일몰 감상에 뜨끈한 해수탕까지. 이즈음 보성 여정에는 겨울여행의 진수가 가득하다. 마침 보성-벌교일원은 남파랑길 명품 걷기 코스도 품고 있다. 그중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을 따라 이어지는 남파랑길 63코스는 지역 문화기행의 묘미를 즐길만한 흡족한 여정이 펼쳐진다.
2020년 개통된 ‘남파랑길’은 ‘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한반도의 남쪽 해안을 아우른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해안을 따라 총 90개 코스 1470km의 걷기 여행길이 이어진다. 보성군이 포함된 구간은 순천시 별량면에서 고흥군 남양면까지 2개 코스(62∼63코스, 46km), 고흥군 대서면에서 장흥군 용산면까지 3개 코스(76∼78코스, 48km) 등 총 5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각 구간마다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걷기 동선의 효율과 여행의 묘미 등을 고려하자면 겨울철엔 벌교 한바퀴가 무난하다. 이 코스는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을 따라가는 문학기행길로 63코스(벌교 부용교~고흥군 남양면 팔영농협) 중 ‘부용교~대포포구’에 이르는 12km, 62코스(부용교~순천 화포) 중 ‘부용교~중도방죽’ 2km 구간을 추천한다.
▶중도방죽에 펼쳐진 갈대밭 길. 갯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고 운치 있는 일상탈출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를 따라 가는 길
‘부용교~대포포구’
벌교읍 일주 남파랑길의 시작점은 부용교 동쪽 로터리 앞이다. ‘벌교천 2길’ 도로 왼쪽 탐방로로 들어서면 먼저 벌교의 인물을 만난다. 민족종교 대종교의 중광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홍암 나철, 민족 음악가 채동선, 소설 <태백산맥> 저자 조정래 등을 소개하고 있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대화들이 걸린 안내판과 각진 아치형 구조물에는 당시 민초들의 애환과 절규가 담겨 있다. 미리내 다리에 걸린 ‘나, 벌교 살아요’란 큼지막한 문구는 다소 뜬금없지만 흥미롭다. 보성 토박이들은 벌교 사람들의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서 5분여를 걸으면 ‘소화다리’ 앞이다. 소화다리는 부용교의 옛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인 1931년 소화(昭和) 6년에 세워졌다해서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여순사건, 6·25전쟁의 참화 현장이다. 부질없는 좌우 이념 공방 속에 양민학살이 자행됐던 비극의 장소다.
부용교를 지나면 멀리 아치형 돌다리인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홍교는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세 칸의 무지개다리로 국내 홍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교(1737년 완공) 이전에는 뗏목다리(筏橋)를 놓았는데 벌교(筏橋)라는 지명도 이 다리에서 비롯됐다.
홍교를 건너서면 벌교리다. 홍교 중수비군과 민족음악가 채동선 선생의 생가를 지나면 ‘태백산맥 문학거리’가 나선다. ‘태백산맥 문학공원’에는 조정래 작가가 <태백산맥>을 집필하며 쓴 수첩, 달력, 인물 관계도, 의류 등 소품을 전시하고 있다. 태백산맥 문학공원 곁에 있는 소화의 집, 현부자집도 필수 방문 코스다. 중도들판을 굽어보며 소작농을 감시할 수 있도록 지었다는 현부자집은 한옥과 일본식 건축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가옥형태를 띠고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보성 구 벌교금융조합’을 지나 태백산맥 문학거리를 찬찬히 걷다보면 소설 속 토벌대장 임만수의 숙소로 묘사된 ‘남도여관’도 만난다. 보성여관이 그곳인데 여기에선 따뜻한 차 한 잔, 숙박도 가능하다.
지척에는 소설의 주요 배경 ‘술도가’가 있다. 정하섭의 본가로 하섭과 소화 간의 애절한 인연의 배경지이다. 벌교역을 거쳐 벌교시장을 지난다. 시장길 곳곳에는 꼬막 자루가 수북이 쌓여 있어 이곳이 벌교임을 다시금 실감케 한다.
벌교천변을 따라가다 만나는 경전선 철교도 빼놓을 수 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철다리’다. 우익 깡패 염상구가 벌교 주먹패 두목 자리를 놓고 담력을 겨뤘던 곳이다. 철교의 중앙에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를 겨뤘다.
벌교천변을 따라 갈대와 갯벌의 향연이 이어진다. 잠깐 논길을 걷는 것 빼고는 대부분 갯벌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데 그 풍광이 순천만 갈대밭 못지않다. 길은 벌교읍 장좌리로, 벌교대교밑을 지나 영등리, 장암리를 차례로 만나며 목가적 풍광의 포구를 품은 대포리로 이어진다. 여기까지가 보성군이다. 벌교읍에서는 12km 두어 시간 남짓 걸린다. 여기서 고흥쪽으로 발길을 한 시간 반가량 더 옮기면 남양면 망주리, 남파랑길 63코스 종점이 나온다.
▶해질녁 여자만 뻘배의 귀환 행렬
갯바람 맞으며 여유롭고 운치 있는 일상탈출
‘부용교~중도방죽’
벌교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중도방죽이다. 벌교천과 갯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중도방죽은 일제강점기 ‘중도’라는 일본인이 우리 양민을 동원해서 쌓은 둑이다. 바닷물을 막고 농토를 일궜다. 보성 토박이들은 벌교읍에서 오리 남짓 거리라고 소개하는데 폭 2m 가량의 둑길은 남파랑 62코스의 일부 구간이다. 62코스는 순천 경계인 화포까지 이어진다. 중도방죽은 입구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제법 긴 나무다리가 있고 그 아래로 갈대밭에 싸인 S자형 탐방길이 이어진다. 벌교대교 아래 선수까지 3.8km의 방죽이 이어지는데 갯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고 운치 있는 일상탈출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이 무렵 보성의 보고 즐길 거리
*겨울차밭
‘녹차 수도’ 보성은 이름값이라도 하듯 사방에 차밭이 일궈져 있다. 보성읍과 율포 바닷가를 잇는 고갯길인 봇재 부근에는 동양다원, 대한다원 등 수십만 평에 이르는 차밭이 장관을 이룬다. 그중 경관으로 치자면 대한다원이 으뜸이다. 활성산(465m) 구릉지에 자리한 매머드급 규모(99만㎡)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장대한 삼나무 숲 진입로가 인상적이다. 차 이랑이 유려한 기하학적 곡선을 그리며 산마루를 향하고 그 주위에 늘어선 삼나무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겨울철에는 이색 설국을 마주할 수 있다.
*‘보성의 강남’ 회천
율포해변을 둘러싼 회천지역은 보성 토박이들 사이 ‘보성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이다. 주변에 콘도, 율포해수탕, 회센터, 카페, 음식점 등 각종 레저, 편의 시설이 성업 중이다. 길이 1.2km, 너비 60m의 너른 백사장을 품은 율포해변에는 솔숲 낭만의 거리, 텐트촌, 다양한 포토존이 설치돼 있어 젊은이들의 ‘인생 샷’ 명소로도 통한다. 특히 율포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어 보성 여행 시 하룻밤 머무르는 장소로 제격이다. 해수녹차탕은 걷기 길에서 쌓인 피로와 추위를 풀어내기에도 좋다.
여행메모
가는 길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IC~29번국도 화순-능주 지나 40분쯤 달리면 보성군.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보성역까지 무궁화호 하루 한차례 운행. KTX를 이용할 수 있는 순천~보성-벌교, 광주송정역~보성-벌교(각 하루 4회 운행). 보성역(061-852-7788)
*버스 고속버스 서울강남고속터미널~보성터미널(1일 1회, 5시간 소요) 시외버스 보성터미널~광주터미널(1일 14회 운행), 보성터미널~순천터미널(1일 22회 운행)
*택시 대포리~벌교(1만 원)
▶꼬막 정식
▶우럭 막회
뭘 먹을까?
*꼬막 보성에는 녹돈, 양탕, 낙지, 꼬막 등 미식거리가 풍성하다. 그중 겨울철 별미로는 꼬막이 으뜸이다. 요즘 보성(벌교)에는 꼬막 시즌이 열렸다. 꼬막은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이듬해 4~5월까지가 제철인데 산란 후 살이 통통하게 차오르는 겨울철에 가장 맛이 있다. 벌교 읍내에는 홍도회관 등 꼬막요리전문집이 여러 곳 있다. 이들 전문식당에서 꼬막정식을 주문하면 통꼬막, 양념꼬막, 꼬막탕, 꼬막회무침, 꼬막전 등 다섯 가지 꼬막 요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다. 정식 1만 7000원. 참꼬막 데침은 5만 원(1kg)
*회 회천에는 보성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우럭 막회(갯마을 횟집)가 유명하다. 고소한 소스로 버무려낸 야채와 막회를 생김에 싸먹는다. 한접시 6만 원(4인분)
*아침식사 율포에는 통장어탕을 곧잘 끓이는 집(일억조 횟집)이 있다. 구수한 시래기와 싱싱한 장어살, 얼큰한 국물맛의 궁합이 풍미 있다. 1만 원(1인분).
*커피 한 잔 회천 모던 카페는 여행자와 토박이들 사이 커피 맛집으로 통하는 곳이다. 녹차수도 보성에 갔을지라도 겨울바닷가에서 따스한 커피향이 그리울 때 찾는 집이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한반도관광 활성화,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