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개막식 카운트 다운이었다. 10, 9, 8, 7, 6… 0을 향해 숫자를 거꾸로 세지 않았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24절기를 헤아렸다. 입춘, 봄에서 시작해 다시 봄으로 돌아왔다.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 돌고 도는 계절의 순환을 보여줬다. 중국을 포함해 동양인의 전통적인 시간 개념, 세계관이 이러하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은 문명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개념을 연구한다. 예컨대 서양의 시간은 직선적이다. 반면 동양은 순환한다. 불교에선 윤회를 말하지만 기독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벽화 ‘천지창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아담의 창조’처럼 신과 아담의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부터 인간의 시간은 시작된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종말을 향해간다.
이와 달리 여러 고대 문명은 우주 만물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절과 기후, 태양과 달, 별자리의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삶의 패턴이 결정됐다. 물론 시계가 발명되기 전까지 일이다. 시계의 발전과 보급을 계기로 근대적 시간 개념이 형성됐다. 시간이 표준화됐지만 인류는 오래전부터 하늘을 보고 시간을 감지했다. 낮엔 태양을, 밤엔 달을 시계로 삼았다. 태양으로 하루를, 달 모양으로 한 달을 헤아렸다.
밝은 달빛과 어두운 밤하늘의 조화
동양과 서양의 시간 개념이 다르듯 달을 대하는 과학자와 예술가의 태도도 차이가 있다. 과학자는 어떻게 하면 달에 갈 수 있을까 궁리하고 연구한다. 그들은 결국 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반면 예술가는 달을 보면서 노래하고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 우월을 따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성과 감성 모두 중요하다. 분명한 사실은 여전히 많은 예술가가 달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 백남준은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다”라고 말했다. 달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TV라는 것. 낭만적이고 기막힌 예술가의 시적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화가 조풍류의 그림에도 보름달이 둥실 떠있다. 온통 푸른빛이다. 밝은 보름 달빛과 어두운 밤하늘이 섞여 만들어낸 오묘한 빛깔이다. 먹(墨)으론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색채. ‘풍류 블루’라고도 불린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와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색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현대적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조풍류가 밤 풍경에 주목한 이유는 현재의 서울, 즉 도시화 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대낮처럼 환한 조명이 흘러넘치는 밤의 세상 말이다. 이 불빛 역시 ‘인왕제색도’와 비교할 만하다.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조풍류는 뼛속 깊이 예술가다. 예향 목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김순자 명창.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조풍류도 북 장단 실력이 웬만한 고수 못지않다. 흥에 겨우면 단가(短歌) ‘사철가’나 짧은소리 한 대목을 멋들어지게 뽑아내기도 한다. 개인전 시작 땐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북채를 잡기도 한다. 화가 친구들 못지않게 국악을 하는 지인들도 많다. 오죽하면 개명까지 했겠는가? ‘풍류(風流)!’. 사람인지라 세상사 근심 걱정 하나쯤 없겠냐마는 여하튼 이름처럼 놀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그림 좋아하며 즐겁게 사는 사람이 화가 조풍류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시와 자연
유달산과 다도해 풍경을 간직한 유년 시절 기억이 풍경작업의 모태가 됐다. 대학 졸업 후 계곡이 깊고 선명한 영월, 정선 일대 강원 산간지역 풍광을 먼저 그렸다. 이어서 산세가 부드러운 남녘, 남도 땅과 다도해를 거쳐 제주도 풍경까지 파고들었다. 그림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방황, 모색과 실험의 시기였다.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예술이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한 세월이 반평생 넘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때부터 서울을 둘러싼 산들이 눈에 들어왔다. 겸재 정선이 이룬 ‘진경산수’, 단원 김홍도 ‘풍속화’ 등 우리 옛 그림도 다시 공부했다. 인왕산을 비롯해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남산 등 서울을 둘러싼 산봉우리와 능선은 조풍류 그림에 배경처럼 등장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사에 아랑곳없이 산세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그 언저리까지 아파트와 우뚝 솟은 빌딩 숲이 빼곡히 들어섰을 뿐이다.
현대인이 만든 인위적 풍경이다. 도시와 자연이 어울린 21세기 서울의 얼굴이다. 2020년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때 처음 선보인 작품 ‘종묘’는 조풍류 작품 가운데 드물게 산과 도시 풍경이 아닌 그림이다. 주저하지 않고 이 작품을 조풍류 그림 중 으뜸으로 손꼽는다. 한 화면에 조선왕조 500년 영혼과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정체성이 깃든 명작이다. 그림은 옆으로 길다. 가로 크기가 거의 6m에 육박한다. 그 앞에 서면 수평적 미의식의 숭고함을 경험한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종묘 사진’에 버금가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배병우 사진엔 보름달이 없다. 조풍류 그림엔 보름달이 있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