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수출 성과 및 2022년 전망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전 세계 상품 교역액은 전년 대비 8.3% 줄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년 세계 교역액 증가율을 8.1%로 추정했다. 지난 2년여 대유행 기간에 반은 감소, 나머지 반은 그 폭만큼 다시 증가해 결국 세계 교역 수준이 제자리로 돌아온 셈이다. 대외 교역 비중이 큰 우리나라 수출도 침체와 반등의 굴곡을 겪었다. 하지만 선진 경제권에서 침체 폭은 가장 얕은 반면에 반등세는 가장 빠르고 강했다. 코로나19로 세계 교역 환경이 급변하는 동안 우리 수출 산업에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2021년 수출 실적(통관기준 잠정치)은 6445억 달러로 전년 대비 25.8% 증가했다. 이는 2018년에 달성한 6049억 달러를 396억 달러 웃돌며 3년 만에 다시 갈아치운 역대 최대치 기록이다. 6445억 달러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738조 원으로 2022년 지출 예산 608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2021년 수출 증가율은 2010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기록인데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수출이 5.5%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를 고려하더라도 놀라운 반등이다. 2021년 수입액도 최초로 6000억 달러를 넘어 수출과 수입을 합한 연간 무역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1조 2596억 달러에 이르렀다.
2021년 무역 1조 2596억 달러 사상 최대
이로써 2013년 이후 8년 동안 9위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의 무역 순위가 2021년에는 8위로 한 단계 도약하며 무역 강국으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전 세계에서 연간 무역액 1조 달러를 넘는 10개국 가운데 중계무역 기지인 네덜란드(4위)와 홍콩(6위)을 제외하면 사실상 무역 순위는 중국,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에 이어 우리나라가 6위다.
또 2021년 국가별 수출 순위에서 네덜란드와 홍콩을 빼면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보다 더 높은 세계 5위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특히 무역 10대국 가운데 수출이 수입보다 더 많아 흑자를 13년 연속 달성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4개국 뿐이다. 우리나라 수출은 1964년 1억 달러를 돌파한 뒤 57년 만에 6445배나 증가해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기록을 세웠다.
2021년 수출은 품목 구분 없이 고른 증가세를 보였다. 수출 상위 15대 품목이 모두 두 자릿수 대의 증가율을 기록한 가운데 반도체, 석유화학, 바이오·헬스, 2차전지 등 4개 품목은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수출 호조의 가장 큰 동력은 역시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에서 나왔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경제 확산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른 ICT 경기 호황을 타고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28.4% 증가한 1287억 달러를 기록했다.
반도체 월간 수출 실적은 12월까지 8개월 연속 100억 달러를 달성하며 2018년의 7개월 연속 100억 달러 기록을 경신했다. 반도체에서도 메모리 보다 부가가치가 더 높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제품의 수출 증가율이 더 커지며 수출 고도화가 이뤄졌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디스플레이 패널 수출도 3년 만에 반등했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전년 대비 19.0% 늘어난 247억 달러를 수출했다. 휴대전화 수출도 6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으며 컴퓨터 및 주변기기 수출은 연간 실적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174억 달러였다.
▶현대자동차 전기차 생산라인│한겨레
농수산식품 수출 사상 처음 100억 달러 돌파
제조업 강국으로서 위력은 중간재 수출에서도 발휘됐다.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국제 유가의 상승으로 2021년 우리나라 원유 수입액은 670억 달러로 전년 대비 50.7% 늘었다. 그러나 원유를 정제·배합·열분해·압축 등의 공정을 거쳐 생산한 석유 제품이나 석유화학 제품 수출은 더 많이 늘었다.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 등 석유화학 제품은 54.8% 증가한 551억 달러, 휘발유와 항공유 등 석유 제품은 57.9% 증가한 382억 달러를 수출했다.
일반기계는 세계 각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2018년에 이어 역대 2위의 수출 실적(531억 달러)을 기록했다. 철강 제품은 원자재와 원료 가격 급등에 따른 단가 상승이 반영되고 고급 철강재의 수요가 확대되면서 호황기였던 2011~2012년 이후 최대치인 364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에 큰 폭의 감소세를 기록한 자동차 수출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도 불구하고 단가가 높은 친환경차 중심으로 주요 수출 시장의 수요가 늘어 2021년 수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 이상인 465억 달러를 달성했다. 12월 기준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0.1%에서 2021년 19.9%로 높아졌다.
자동차 부품도 국외 공장의 생산 확대로 7년 만에 수출이 증가세로 돌아서 연간 200억 달러대 수출 시대에 다시 진입했다. 선박은 세계 해운 경기 호황에다 국내 조선업계가 경쟁력을 보유한 고부가치·친환경 선박의 건조·인도가 활발해지며 4년 만에 수출 반등에 성공했다.
새로운 수출 유망 산업으로 떠오른 바이오·헬스는 2021년에도 특수를 이어갔다. 2019년까지만 해도 80억 달러대 수출에 머문 바이오·헬스 수출은 2020년 전년 대비 55.9% 증가한 139억 달러, 2021년에도 16.9% 증가한 162억 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변이 확산에 따른 진단키트 수요 확대에 선진국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바이오시밀러(복제의약품)와 의료기기의 높은 품질 경쟁력이 수출 호조의 배경이다.
한류 확산과 온라인 수출 창구의 확대 등에 힘입어 농수산식품이나 화장품, 패션의류 등 소비재 수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농수산식품 2021년 수출은 전년 대비 15.1% 증가한 113억 달러로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100억 달러대에 들어섰다.
2022년 수출업계 전망도 비교적 밝아
2021년 수출 증가세의 또 다른 특징은 고른 시장 분포다. 수출 대상을 9대 지역으로 나눠보면 수출 감소 지역이 한 곳도 없다. 9대 주요 지역으로 수출이 모두 증가한 것은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중동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두 자릿수대 증가세를 나타냈으며 중국·미국·유럽연합(EU)·아세안 등 4대 시장에서는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수출 비중 25.3%를 차지하는 중국에서는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아세안 시장으로 수출은 중간재에서부터 최종 소비재까지 균형 있는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총액 1000억 달러 돌파를 사상 처음으로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소비 심리 개선과 연방 정부가 주도하는 인프라 투자 확대가 호재로 작용했다. 유럽에서는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 기조의 영향으로 한국산 전기차와 선박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진단키트를 포함한 바이오·헬스도 유럽 시장 수출 확대의 효자 품목이다.
정부는 2022년 수출 증가세는 전년 보다 둔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연간 수출액 7000억 달러 시대’를 새로운 이정표로 제시했다. 수출 동력을 유지해 2년 연속으로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내자는 의지다. 7000억 달러는 2021년 대비 9% 수출이 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전년도 높은 증가율에 따른 역 기저효과에다 대내외 여건을 고려하면 만만치 않은 목표다.
그렇다고 해서 이르지 못할 목표도 아니다. 2022년 수출업계의 전망도 비교적 밝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수출 기업 1260곳을 대상으로 분석한 ‘분기별 수출산업경기전망 조사’ 결과를 보면 수출경기전망지수(EBSI)가 2021년 4분기 106.0에서 2022년 1분기 115.1로 상승했다. 이 지수는 100을 웃돌면 앞으로 수출 활력이 더 나아질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향후 수출 환경을 평가하는 10개 항목들 가운데 ‘수출 상담’(116.8), ‘수출 계약’(112.8), ‘설비 가동률’(103.6) 등을 중심으로 낙관적인 전망에 무게가 더 실렸다. 주요 교역 대상국의 코로나19 사태 진정과 일상회복으로 수입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하방 위험 요인도 여럿 상존한다. 오미크론 변이 확산, 환율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 세계 공급망 병목 현상과 물류비 상승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흔들림 없는 무역 강국 입지 더욱 공고화
정부는 이런 우려를 제거하고 수출 동력 강화와 무역 기반 안정을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주요 업종별 공급망 안정을 위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급 대응 지원센터 중심으로 수출 유관기관, 업종별 협회 등이 협업해 국내외 공급망 동향을 상시 점검(모니터링)하는 분석센터를 신설한다.
공급망 재편 등 통상 이슈에 대해 기존 법령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강하는 입법 작업에도 착수한다. 대외무역법상 ‘무역’의 범위를 서비스·디지털 영역까지 확장해 새로운 무역 체계를 정립하고 환경이나 노동 등과 관련된 새로운 통상 규범 논의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또 상반기 중 10대 수출 유망 품목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R&D) 예산을 1조 2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2021년보다 약 5조 원 증가한 261조 원 규모의 무역금융을 편성해 집행한다. 소상공인과 내수 위주의 중소기업 1800개의 수출 기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지방 소재 기업 950곳을 따로 선정해 해외시장 진출 등을 지원한다.
2월부터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맞춰 국내 기업의 협정 활용과 시장 진출 기회 확대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RCEP 가입국 14개국 내 협정 해외활용센터를 총 12개로 확충해 원산지 정보 제공, 통관 절차, 컨설팅, 마케팅 등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아울러 RCEP과 연계한 한류 마케팅과 전자상거래를 활용하기 위해 ‘동남아시장 무역·투자 확대 전략'을 2022년 상반기 안에 마련하기로 했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정부는 2022년 수출 총력 지원과 빈틈없는 공급망 관리로 경제의 완전한 정상화를 뒷받침할 것”이라며 “민관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고 전방위로 협력해 흔들림 없는 무역 강국 입지를 더욱 공고히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