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산책로에서 마주한 해파랑길 1코스 전경
부산 ‘해파랑길 1코스’
국내 여행지 중 가장 무난한 곳을 추천하자면 선뜻 부산을 꼽을 수 있겠다. 낭만의 바다와 미식거리 등 콘텐츠의 매력성이며 인프라, 접근성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몸이 절로 움츠러드는 겨울철에도 부산은 어깨를 펴고 다닐만해서 1~2월 여정을 꾸리기에도 적당하다. 그래서 일상이 갑갑한 경우라면 훌쩍 고속열차(KTX)에 몸을 싣고 부산 앞바다로 향할 것을 권한다.
마침 부산은 코리아둘레길 중 ‘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그중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이기대~광안리~해운대~미포에 이르는 해파랑길 1코스는 부산의 매력을 고루 갖춘 곳이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의 해안길을 걷다가 21세기 부산의 마천루를 만나는 등 그야말로 자연과 첨단 발전상을 아우르는 환상의 하모니가 펼쳐진다. 특히 이기대해안길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여유를 부리고 싶은 공간이 사방에 널려 있어 따스한 부산 햇살 아래 망중한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약 750㎞에 이르는데 그 시작점 1코스부터가 걷고 싶은 욕구를 샘솟게 한다. 오륙도해맞이공원~동생말~광안리~해운대~미포에 이르는 약 18km의 구간에는 해안절경을 따라가는 숲길과 마천루 아래 요트가 정박한 이국적 풍광 그리고 젊음이 넘치는 해변 등 변화무쌍한 전경이 펼쳐진다. 쉬엄쉬엄 7~8시간, 한나절이 꼬박 걸리지만 발품이 아깝지 않을 여정을 실컷 누릴 수 있다.
▶수영 마리나
자연을 걸으며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보자
오륙도해맞이공원~동생말
입춘(2월 4일)의 부산 날씨는 절기 값을 했다. ‘정말 날씨 좋다’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밝고 따스한 햇살이 일품이다. 바람도 봄소식을 담았다. 날카로운 서울 바람과는 달리 차갑지만 시원하고 부드러운 청량감이 길손을 반긴다.
해파랑길 1코스의 출발지인 부산 남구 오륙도해맞이공원 관광안내소. 해파랑 출발 전초기지답게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친절한 안내와 다양한 소개 팸플릿. 이만하면 됐다 싶을 구성이다. 그간 코리아둘레길 몇 군데를 가봤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인 만큼 인프라가 미흡했다.
해파랑길 관광안내소 강정화 안내원은 “설 연휴에 많은 분들이 다녀갔는데 이렇게들 와주니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그는 “이기대라는 명칭이 단순 전설이 아닌 역사적 고증을 통해 얻게 된 지명”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해파랑길 1코스는 시작부터가 산길이다. 경사도 꽤 가파르다. 하지만 경치가 좋다보니 힘든걸 잊게 해준다. 계단을 거푸 오르다 뒤돌아보면 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공원에는 식물 군락지도 잘 조성해 뒀다. 모처럼 마주친 겨울 유채밭도 반가웠다. 봄이 되면 노란꽃사태가 바닷바람에 일렁일 테다.
경치로 따지자면 여정 중 이기대자연공원 산책로가 압권이다. 오륙도해맞이공원~농바위~어울마당~동생말에 이르는 3.95㎞ 코스는 해안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명품길이다. 데크길과 구름다리, 깎아지른 듯 한 바윗길, 숲과 바다를 잇는 흙길이 쉼 없이 이어지며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파도에 밀려오는 몽돌 구르는 소리는 묵은 스트레스도 싹 가시게 해준다. 숨이 차고 등에 땀이 꼽꼽하게 밸 정도가 되니 멀리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해운대의 마천루가 시야에 들어 온다.
이기대의 유래는 임진왜란 시절로 올라간다. 왜군들은 수영성을 함락시키고 경치 좋은 이곳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이때 두 명의 기생이 왜장에게 술을 잔뜩 권하고 술 취한 왜장과 함께 바닷물에 떨어져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수영의 두 기생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해서 이곳을 이기대(二妓臺)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갈맷길로도 불리는 이기대해안산책로에는 건강을 챙기려는 부산시민은 물론 외지 순례객들이 즐겨 찾는다. 갯바위 마다 망중한을 즐기는 낚시꾼이며 간간히 해초를 채취하는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쉬엄쉬엄 두어 시간을 걸으니 어느덧 어울마당, 동생말이다. 오는 동안 표지판, 안심화장실 등이 잘 갖춰져 있다.
▶멀리 오륙도가 보이는 미포해변
▶해리단길
광활한 해안길 따라 첨단과 젊음을 마주하다
광안리~미포
이기대공원을 지나면 도심 해안 길이 시작된다. 용호만 유람선 선착장에는 요트 두어 대와 부경대학교 실습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남천동과 센텀시티를 잇는 웅장한 광안대교 밑을 지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 이어진다. 바닥화가 그려져 있는 구간은 운치가 있다. 지친 발걸음을 경쾌하게 해준다. 삼익아파트는 광안리 주변의 오래된 터줏대감 같은 건물인데 광안대교 야경 취재의 추억이 있던 곳이다. 예전에는 이 일대의 상징격이었으나 이제는 작은 성냥갑처럼 다가온다. 여기도 곧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광안리 해변은 평일임에도 젊음이 넘쳐난다. 마치 딴 세상처럼 젊은 청춘들이 겨울 해변의 낭만을 즐기고 있다. 걷다보니 뜬금없는 장소에 커다란 바위들이 놓여있다. 태풍 레이삭과 함께 떠밀려 온 것들이다. 민락수변로 데크길을 지나면 이국적 풍광이 펼쳐진다. 수영만 요트 마리나에 정박한 요트들이 주변 마린시티 고층 빌딩숲과 어우러져 근사하다.
마린시티 주변에는 ‘해운대 영화의 거리’가 꾸며져 있다. 800m 거리에 아이 키높이의 울타리를 따라 길을 조성했다. 영화 <친구>, <해운대>, <범죄와의 전쟁> 등 해운대 배경의 영화 포스터, 캐릭터 등을 벽화로 그렸다.
동백섬 안으로 해파랑길이 이어진다. 동백공원 누리마루 전망대 옆에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곳 경치에 감탄해서 새겼다는 해운대 석각이 자리하고 있다. 섬을 가로질러 가는 숲길은 소나무, 동백나무가 밀생하고 있다. 이기대 코스를 닮은 해안데크길 청동인어상은 일출 사진 명소다.
완만한 백사장이 부챗살을 그리며 눈앞에 펼쳐진다. 해운대 해수욕장이다. 이곳 또한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모래사장에 세워진 다양한 조형물은 인증샷 포토존이다.
천천히 걸어보니 상전벽해를 이룬 해운대의 오늘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해도 파라다이스호텔이 해운대 한편을 가득 메운 큼지막한 건물이었다. 이제는 100층 빌딩이 해운대를 압도하고 있다. 난개발? 글로벌 인프라의 필요성? 전부 맞는 말이다. 이제는 슬기로운 이용과 관리, 대처가 과제다. 특히 기후위기 상황에서 해수면 상승에 따른 해변 시설물 조성은 늘 조심스럽게 고려해야 한다. 해변 끝자락에는 엘시티가 버티고 서있다. 해파랑길 1코스도 이곳에서 끝이 난다. 미포다. 여유롭게 8시간, 한나절이 걸렸다. 흔히들 6시간 코스라고들 하는데 조금 무리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이틀에 나눠(첫날=오륙도해맞이공원~광안리/이튿날=광안리~해운대-미포) 걷기를 권한다. 그래야 물리지 않는다. 길과 전투를, 정복을 하러 나선 발걸음이 아니지 않는가? 지역의 자연과 풍미를 함께 느끼며 고장의 문화를 향유하는 여정, 몸과 맘이 편안한 여행을 즐기는 게 슬기로운 여행법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
*KTX 서울 기준 2시간 30분 소요, 서두르면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부산역~오륙도해맞이공원
*시내버스(27번, 50분~1시간 소요), *택시(30분 소요, 1만 3000원).
*미포~부산역
*지하철 미포항에서 부산 지하철 2호선 중동역까지 약 1㎞(도보 20분) 거리. 중동역~부산역까지 23개역(서면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탄다)
*택시(50분 소요, 2만 3000~2만 5000원)
*해파랑길 1코스 경로(17.8km/ 6~8시간 소요) 오륙도해맞이공원~(4.7km)·동생말~(3.1km)·광안리 해변~(7.6km)·동백섬~(2.4km)·미포/ 오륙도 해파랑길 관광안내소(051-607-6395)
▶돼지국밥
▶해운대암소갈비
뭘 먹을까?
*돼지국밥
부산의 대표적인 미식거리다. 부산역에 내려 든든하게 국밥을 챙겨 먹고 걷기여행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이북식 맑은 국물, 김해식 뽀얀 국물 등 육수를 우리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고기, 순대, 내장 등을 따로 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부산역 인근에 국밥집이 많다. 8000원.
*대구탕
해운대는 대구탕도 유명하다. 큼지막한 국그릇에 담겨 나오는 뜨끈한 대구탕이 먹을만 하다. 달맞이고개와 미포에 자리한 속씨원한대구탕 등 전문점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1만 2000원
*복국
부산의 또다른 미식거리로는 복국을 꼽을 수 있다. 할매복국, 금수복국, 초원복국 등 해운대 주변에 복국집이 많다. 복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중간급이 2만 원선.
*해운대갈비
해운대는 갈비도 유명하다. 해운대 암소갈비가 유명한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김해 우시장 소값이 제일 비쌌다. 따라서 근동의 한우 농가들은 제값을 받기 위해 좋은 소를 다투어 김해로 보냈다. 그러다보니 인근 부산 등지에 좋은 한우가 공급됐고, 지금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부산 토박이들의 설명이다. 갈비 4만 6000~5만 2000원(1인분 180g기준)
*해리단길
요즘 부산에서 뜨는 젊음의 거리다. 옛해운대역에서 해변쪽으로 맛집, 타로점집 등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활기를 띠고 있다. 떡볶이, 어묵, 커피 등 젊은이 취향의 음식점도 즐비하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한반도관광 활성화,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