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키아프 아트서울> 포스터
2021년 문화예술 시장에서 가장 뜨거웠던 분야 중 하나는 미술시장이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불리는 젊은 층들이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 연간 거래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서울과 부산 등에서 대규모로 개최된 아트페어에는 미술품을 구매하려는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게다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집한 최고 수준의 미술품·문화재 2만 3000점이 국가에 기증돼 미술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국보 제129호인 금동보살입상, 국보 제216호인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유영국, 이중섭, 유강열, 장욱진, 이응노, 박수근, 변관식, 권진규 등 우리나라 대표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이건희 컬렉션’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몰려들면서 국보급 문화재와 세계적인 걸작에 이목이 쏠렸다.
미술계에서는 2021년 모든 지표에서 정점을 찍은 한 해를 보냈지만 2022년에도 변함없이 미술시장이 호황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충동 소비’ 경향도 있지만 미술품 구매나 감상이 비대면 시대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21 아트부산> 전시회│아트부산
국내 미술시장 규모 1조 원 넘길 듯
2021년 국내 미술시장은 연간 거래액 9200억 원(업계 추산)을 넘겼다. 직간접적인 미술 관련 거래액을 모은 숫자로 2020년 대비 2.8배의 수직 성장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미술시장의 규모가 사상 최초로 1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표면적으로 드러난 각종 지표가 미술시장의 호황을 대변한다. 2021년 이우환, 구사마 야요이, 김환기 등 톱 3의 낙찰총액은 각 362억 원, 334억 원, 208억 원이었다, ‘물방울의 화가’ 김창열의 유작 한 점이 10억 원이 넘게 거래되기도 했다.
2021년 열린 아트페어의 매출액이 미술시장의 열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2021년 5월에 열린 아트부산이 350억 원, 10월에 열린 키아프서울이 650억 원어치의 그림을 팔아 국내 아트페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젊은 층들의 공동구매 현상이 뚜렷했다. 이들은 미술품을 소유의 개념보다는 ‘아트테크’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으며 온라인을 통한 참여도 활발하다.
2021년 미술시장에 불어닥친 새로운 경향 중 하나는 디지털아트와 가상 자산을 접목한 NFT(대체불가 토큰)와 3차원 가상세계 메타버스의 등장이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가 미술품 NFT시장에 진출했고 네이버의 메타버스 제페토에서 개관한 전시에는 누적 수치 20만 명이 다녀갔다. 최대 미술품 경매시장인 크리스티는 2021년 100개 이상의 NFT 거래를 통해 약 1억 5000만 달러(약 1800억 원)의 판매 총액을 거뒀다. 소더비 역시 NFT가 약 1억 달러(1200억 원)를 차지했다. 국내에서도 NFT와 메타버스에 대한 젊은 층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서 시장도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NFT와 메타버스 미술시장이 100배 이상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작가 비플이 NFT(대체불가토큰) 기술로 제작한 디지털그림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6930만 달러(약 800억 원)에 낙찰되었다.│크리스티 누리집
아시아 미술시장 중심지 홍콩서 서울로
그렇다면 미술시장에 젊은 층들이 대거 유입된 이유는 뭘까? 소위 MZ세대 수집가(컬렉터)들은 인스타그램 등 누리소통망(SNS)과 네이버 카페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소유보다는 취향을 존중하면서 공부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그 이면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인 알엠(RM)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작가 윤형근의 열성 팬인 알엠은 국내외 굵직한 전시는 모두 찾아다닐 정도로 적극적인 미술애호가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전시회의 관람객 수가 달라졌다. 특히 20대 여성 관객들은 알엠이 다녀간 전시회를 찾고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에 관심을 보인다. 우국원은 물론이고 문형태, 김선우 같은 젊은 작가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엠 외에도 지드래곤이나 저스틴 비버 등 팬덤(열성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들이 미술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미술시장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인 나이키가 미국 작가 카우스와 협업하고 루이비통이 중국 작가 자오자오 협업해 상업적인 결과물을 선보인 것도 젊은 세대들의 미술에 관한 관심을 반영한 결과다.
폭발적인 미술시장의 호황으로 생긴 변화도 있다. 오랫동안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홍콩이었지만 최근에는 서울로 옮겨오고 있다.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홍콩의 미술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로 세계 미술시장이 서울을 주목하고 있다.
2022년에는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열린다. 9월 2일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아트서울이 열리는 기간 동안 서울 코엑스 전관에서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지점을 둔 세계적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은 서울에 아시아 지점을 개관하기도 했다.
미술계에서는 K-팝 등 세계적인 관심이 드높아진 시기에 우리 미술에 대한 관심 또한 폭발적으로 높아지고 있어서 2022년이야말로 K-아트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도 좋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