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전경│ ⓒAjay Suresh from New York, NY, USA·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대규모 미술품 기증에 따른 국립 융복합 뮤지엄 부지선정 작업이 가시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세계적 문화예술 명소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갖추게 됐다. 건축미와 빼어난 소장품,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갖춘 미술관은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넘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치는 시대가 됐다. 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국제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주요 미술관을 알아본다.
1959년 10월 21일 미국 뉴욕 맨해튼 89번가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전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희한하게 생긴 건물 앞에서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상 6층 규모 연 면적 7664㎡의 흰색 콘크리트 건물은 단숨에 세간의 화제가 됐다.
화제의 중심에는 건물의 형태와 독특한 내부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달팽이를 닮았다거나 거대한 소라 껍데기를 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설계자의 의도는 ‘지구라트’에서 비롯됐다. 지구라트는 기원전(BC) 2200~BC 500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건설된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의 성탑인데 여기서 영감을 받아 지구라트를 뒤집은 모양으로 건축하기로 한 것이다.
건물의 내부 구조는 더욱 거센 논쟁에 휘말렸다. 1층부터 6층까지 오로지 나선형 경사로만 있을 뿐 계단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의아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뒤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전까지 이런 미술관은 없었기에 호사가들 사이에 뜨거운 찬반 논쟁은 당연했다. 건축의 기본을 망각한 기이한 건물이다, 현대건축의 새 길을 개척한 독창적인 발상이 낳은 기념비적인 결과물이다, 미술관 건물로는 적합하지 않다, 작품 감상 방식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획기적인 시도다 등….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1950년대 말에 모습을 드러낸 이 건물은 건축에 예술성과 창조성의 옷을 입히는 현대건축의 시대를 여는 견인차이자 미술관 건물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모범이 됐다. 이 건물이 바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계단이 없는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실내 동선│ ⓒAlessandra Boccone·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기존 건축 개념 무너뜨린 파격적 설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계자로 건축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파악해 인간과 자연, 기술의 삼위일체를 강조한 미국의 천재 건축가다. 건축 자체를 생명체로 인식한 라이트가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 의뢰를 받은 것은 1943년, 그의 나이 76세 때였다. 의뢰자는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자인 솔로몬 구겐하임(1861~1949).
의뢰자의 주문 내용은 비구상회화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한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미술관을 영혼의 사원으로 표현한 솔로몬의 지극한 예술 사랑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일곱 차례의 설계변경 끝에 16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마침내 미술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정작 라이트는 자신의 건축 혼이 담긴 완성된 미술관을 보지 못했다. 미술관 개관 6개월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건축과 자연의 합일(合一)을 건축 철학으로 삼고 있던 라이트는 기존의 미술관 건축과 디자인 개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설계안을 구상했다. 지구라트를 본뜬 외관, 계단이 없는 실내 공간, 건물 내부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로툰다 형태의 구조, 천장에서 내부로 쏟아지는 자연광, 나선형 경사로로 이동하는 동선, 맨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방식, 기울어진 벽에 진열하는 방식 채택 등 건물 외관과 내부 디자인에서 기존의 전범(典範)과는 완전히 다른 혁신적인 시도를 한 것이다.
라이트의 건축관은 남달랐다. 건물은 왜 꼭 사각형이어야만 하는가, 건물 내부에 계단이 없으면 안 되는가, 작품 감상 동선을 위에서 아래로 설정해 관람이 끝나면 자연스레 출구로 나가는 방식이 효율적이지 않은가와 같은 ‘다르게 생각하기’와 ‘역발상’, 여기에 더해 건물 자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는 ‘인간과 건축의 조화로운 공존’을 평생의 건축 철학으로 신봉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탄생도 그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신념에서 비롯됐다.
▶자연 채광이 되도록 설계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천장│ ⓒSérgio Valle Duarte·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
경사진 벽에 미술품을 걸기에는 문제가 있다거나 각층의 층고가 낮아 대형작품의 전시에 걸림돌이 되며 내부 구조가 너무 도드라져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는 등의 합리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인데다 주옥같은 현대미술 소장품으로 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1992년 미술관 바로 뒤쪽에 10층 규모의 장방형으로 된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는 전설적인 광산재벌 마이어 구겐하임(1828~1905)의 4남 솔로몬 구겐하임이다. 마이어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1847년 미국에 정착해 콜로라도 은광 개발에 성공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이다. 8남 3녀를 둔 마이어의 넷째 아들인 솔로몬은 엄청난 상속재산을 자선사업에 투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면서 1920년경부터 미술품 수집에 매달렸다.
늘어난 소장품을 관리하기 위한 자체 미술관의 필요에 따라 1937년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1939년 뉴욕시 맨해튼 54번가에 비구상회화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미술관을 건립했다. 비구상회화미술관은 1952년 현재의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개칭됐다.
솔로몬과 구겐하임 미술관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독일 출신의 여류 추상화가인 힐라 리베이(1890~1967)가 그 주인공이다. 솔로몬은 1926년 리베이를 처음 만나 컬렉션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았다. 1930년 여름, 리베이는 오늘날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의 하이라이트로 인정받는 한 화가를 솔로몬에게 소개하는데 그가 바로 추상화의 시조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다.
음악의 시각화를 추구하며 훗날 ‘뜨거운 추상’의 거장으로 추앙받은 칸딘스키에게 매료된 솔로몬은 그의 작품을 무려 150점 넘게 사들였다. 솔로몬이 공들여 수집한 칸딘스키 그림은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대가를 알아본 그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칸딘스키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리베이는 구겐하임 재단의 초대 이사 겸 미술관 초대 관장을 맡아 1952년까지 관장직을 수행했다.
미술관 설계자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솔로몬도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을 보지 못했다. 솔로몬은 개관 10년 전인 1949년 8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랑데 운하 옆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Jean-Pierre Dalbéra from Paris, France·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아랍에미리트에도 2025년 개관 예정
구겐하임 미술관 하면 떠오르는 또 한 명의 이름이 있는데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이다. 페기는 솔로몬의 조카딸로 아버지 벤저민 구겐하임(1865~1912)이 솔로몬의 동생이다. 사업가로 활동하던 벤저민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사고 때 사망했다.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만난 뒤 현대미술에 눈을 뜬 페기는 갤러리 운영자 겸 수집가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미술계의 큰손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1940년대 뉴욕에서 자신이 경영했던 미술관의 잡역부를 발굴해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육성한 일화는 지금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바로 잭슨 폴록(1912~1956)이다.
페기는 2차 세계대전 후 베네치아 그랑데 운하 옆 유서 깊은 18세기 저택으로 이주해 30여 년을 살다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저택에 소장한 피카소,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 칸딘스키, 잭슨 폴락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은 일명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으로 불리는데 현재의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베를린과 스페인 빌바오에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으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도 2025년 개관 예정으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구성 Ⅷ’, 캔버스에 유화, 140×201cm, 1923,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추상회화 역사 완성한 칸딘스키 컬렉션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품은 20세기 비구상·추상 계열 작품이 중심으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피카소, 특히 그의 초창기 작품과 콘스탄틴 브랑쿠시, 파울 클레, 몬드리안, 마르크 샤갈, 후안 미로, 프란츠 마르크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솔로몬을 도와 14년 동안 관장으로 구겐하임을 이끌었던 리베이의 공이 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구겐하임 컬렉션의 백미는 칸딘스키 컬렉션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칸딘스키 그림은 규모가 방대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추상회화의 역사다. 점, 선, 면, 그리고 색채와 같은 최소단위의 조형 요소만으로 무한한 감동과 울림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점은 칸딘스키 최대의 미술사적 업적이다.
칸딘스키에게 미술은 형태의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었다. 음악을 그림으로 환원시킨 화가 칸딘스키의 대표작 ‘구성 Ⅷ’(1923년)을 보면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음악적 율동과 리듬감이 느껴진다.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_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