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해변의 일출. 겨울 동해는 장쾌한 파도와 탁 트인 수평선, 그리고 기운찬 일출이 압권이다. 해파랑길은 770km 전역이 멋진 일출 포인트가 된다.
해파랑길 39코스(강릉 남항진~사천진항)
겨울 동해는 장쾌한 파도와 탁 트인 수평선, 그리고 기운찬 일출이 압권이다. 거기에 곰치, 도루묵, 양미리 등 제철 미식거리도 풍성하니 발품이 아깝지 않을 여행지가 된다.
그중 강원도 강릉은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답게 탄탄한 기반시설(인프라)을 지닌 곳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고속철(KTX)이 운행되며 서울에서 두 시간, 뛰어난 접근성을 자랑한다. 더불어 강릉은 바다와 호수, 커피 그리고 낭만의 해송숲길 문화유산 등 인문적 요소까지 잘 어우러져 그야말로 흡족한 여정을 꾸릴 수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에도 ‘편안하고 청정한 여행지’라는 이미지로 더욱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강릉의 참맛 구경에는 ‘해파랑길 39코스’가 제격이다. 남항진 솔바람다리에서 출발해 사천진리해변공원까지 16.1㎞. 동해 바다와 나란히 걷는 노정마다 고장의 매력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해파랑 솔숲길
파도 소리 벗 삼아 솔숲 내음을 좇아서
남항진~안목~강문해변
해파랑길 39코스의 시작점은 남항진 솔바람다리다. 아치 형태의 다리는 남항진과 강릉항 사이를 흐르는 강릉남대천 기수지역을 가로지른다. 마침 다리 밑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낚시꾼들이 가자미 낚시를 즐기고 있었는데 거친 파도 탓인지 영 조과가 신통치 않다며 굳은 표정들이다.
다리를 건너자 강릉항이다. 항구는 적막했다. 날씨 탓에 울릉도행 쾌속선도 풍랑을 피해 정박 중이다. 수수한 포구와는 달리 그 곁엔 세련된 카페촌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자리매김한 안목해변 커피거리다. 겨울 바다와 커피는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근사한 외관의 커피숍에 들러 모닝커피의 여유를 즐겼다. 내부는 동해 바다를 감상할 수 있도록 자리를 계단 형식으로 꾸며놓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분위기를 즐기려는 친구, 연인들이 일찌감치 명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커피 맛이야 그리 특별하지 않았지만 저마다 말이 필요 없을 만큼의 행복을 누리는 표정들이다.
안목해변부터는 해파랑길 39코스의 백미, 해송숲길이 펼쳐진다. 푹신하게 깔린 갈색 솔잎 길을 지르밟고 파도 소리 벗 삼아 솔숲 내음을 좇아 걷는다. 여기에 거친 파도와 하얀 포말까지 마주하니 일상에 묵은 때가 다 씻기는 듯하다. 이 같은 세심(洗心)의 길은 3km가량 이어진다.
솔숲길은 호젓하다. 간간이 여행자를 마주칠 뿐인데 대체로 중년이나 연인이 많다. 건강한 내일을 챙기려는 발걸음들이다. 연인들은 주로 백사장을 거닐며 인생 샷에 도전한다.
청설모도 두어 차례 마주쳤다. 노는 물이 달라서일까? 산중 청설모에 비해 낯가림이 덜했다. 소나무 가지에 걸린 기다란 비닐 조각을 둘둘 말다가 다시 풀어 헤집기를 반복하던 녀석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잠시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장난질을 멈춘다.
청둥오리, 검둥오리 등 철새들의 안식처
강문~경포해변
강문 포구에 이르면 일출 명소로 알려진 솟대다리가 나선다. 물론 일출은 동해 어느 곳, 특히 해파랑길 39코스 전역이 전부 명당이다. 강문은 일출 말고도 횟집, 물회로 유명한 곳이다. 포구 주변의 한 물횟집에 들렀는데 마침 50여 년 전통의 노포였다. 대체로 가자미, 광어, 전복, 해삼이나 잡어물회 등을 찾게 되는데 오징어물회를 시켰다. 매콤·칼칼·달콤·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마치 막걸리식초를 넣은 듯 뒷맛이 깔끔하다. 주인에게 물었더니 과일 육수가 비법이라고 했다. 물론 시장이 반찬이기도 했다.
강문을 지나 진또배기 성황당을 거치면 상전벽해의 현장이 나타난다. 경포해변에는 씨마크호텔, 스카이베이호텔 등 특급 숙박시설이 들어서 있다. 동해안 대표 관광지로서 품격 있는 숙박 인프라를 갖춘 것에는 찬성이다. 하지만 경포해변은 백사장 모래 유실이 심각하다. 일련의 난개발 탓이다. 동해안 주요 해안이 겪고 있는 개발과 보존의 상충 현장이다.
해변 찻길을 건너면 경포호수다. 해파랑길 39코스는 경포호반을 아우르고 있다. 겨울철 호수는 청둥오리, 가창오리, 검둥오리 등 철새들의 안식처다. 호수 가운데 돌섬은 철새들의 배설물로 하얀 설산을 이루고 있다. 경포호수길에는 경포대와 정자들, 오죽헌, 선교장, 허균·허난설헌 남매의 자취도 찾을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나선 여행객에게는 필수 방문 코스가 된다. 경포호수를 돌고 나오면(약 4km, 1시간 소요) 다시 경포해변을 만나 사근진해변으로 향한다.
▶요즘 사천진항 포구에서는 양미리 그물 떼기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이번 겨울 들어 작황이 나빴는데 12월 하순부터 만선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안목해변 커피 조형물은 기념사진의 단골 코스다
한적했던 포구는 이제 상전벽해의 길로
경포~사근진~순긋~사천진리해변~사천항
경포에서 1.2km를 올라오니 조그만 해변 마을이 나타난다. 옛집을 개조한 민박, 펜션촌으로 개발 이전 포구의 느낌을 지닌 사근진해변이다.
사근진해수욕장에는 해중공원 전망대와 함께 명물이 하나 더 있다. ‘컬러 테트라포드’다. 흔히 방파제 보호 용도의 테트라포드는 칙칙한 시멘트, 무채색 일색이다. 하지만 사근진해변은 다르다. 파랑, 노랑, 붉은색 등 다채롭다. 고정관념을 깨뜨린 신선한 변신이 경쾌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근진에서 자전거길을 따라 0.6km를 올라가면 순긋해변이 나온다. 오토캠핑장이 들어선 작은 포구다. 전기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달려온 두 여학생. 한 학기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고자 동해를 찾은 새내기 여대생들은 벌써 치유가 다 된 모습이다.
제법 걸었다. 등에 땀이 꼽꼽하게 배고 배낭의 무게도 실감케 되는 시간이다. 해안 부대 옆 솔숲에는 묘지가 이어져 있다. 주로 연고를 잃은 묵은 묘지가 많았는데 마치 해파랑길 39코스의 부도처럼 다가왔다.
사천진리해변 주변은 해랑길 39코스 중에서도 솔숲이 잘 발달된 곳이다. 효자 박수량지려 비각을 지나 하평교를 건너니 해파랑길 39코스 종착지 사천항이다. 서핑 강습, 캠핑장, 물회마을 이정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적했던 포구는 이제 상전벽해의 길을 걷고 있다. 물회거리에는 요트 계류장, 포구 주변에는 고층아파트도 들어서는 중이다. 요즘 포구에는 양미리 하역 작업이 한창이다. 이번 겨울 들어 조황이 나빴는데 12월 하순부터 만선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부두에 수북이 양미리 그물을 부려놓고 그물 떼기 작업이 한창이다. 먼저 작업을 마친 고깃배들은 포구에서 양미리를 팔고 있는데 1만 원이면 두 두름(40마리)이나 살 수 있다. 5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직접 양미리 조업·판매를 하고 있다는 만복수산 대표는 “코로나 때미래 50년 중 제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이번 겨울 양미리를 맛나게 소비하는 것도 상생의 실천임을 일깨우는 현장이다.
여행메모
가는 길
대중교통
*서울에서 KTX, 고속버스, 시외버스 등으로 강릉을 찾을 수 있다.
*택시 강릉역~안목항 15분 소요(8700원), 사천진항~강릉역 20여 분 소요(1만 4600원), 사천해변~안목항 25분 소요(1만 7000원), (설렘콜 1811-6060, 솔향콜 1588-8234)
*버스 강릉버스정보시스템(http://bis.gn.go.kr) 참조
승용차
*주소 남항진해변(강원 강릉시 남항진동 1-4), 사천진해변공원(강원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2-10)
*해파랑길 39코스 이동 경로(강릉바우길 5구간과 유사함) 남항진해변 솔바람다리~안목항~송정해변~강문해변~경포대~경포해변 중앙광장~사근진해변~순긋해변~사천진해변공원~사천항(총 16.1km, 쉬엄쉬엄 6~7시간 소요, 난이도는 쉬운 편)
뭘 먹을까?
*커피 안목해변에서 마시는 따뜻한 모닝커피가 일상 탈출의 여유를 더한다.
*물회 강릉에서는 강문과 사천진항이 물회로 유명하다. 오징어물회 1만 8000원, 광어물회 1만 5000원
*초당순두부 초당동에 두부 식당이 여럿 있다. 순두부백반 9000원, 얼큰황태순두부 1만 원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한반도관광 활성화,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